'시선 강간' 기준은 애매? 'ㅇㅈ'은 답을 안다

인간을 물건 취급하는 태도, 물화(物化)

등록 2016.08.08 11:20수정 2016.08.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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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체라고 있다. 누리꾼들이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청소년들의 말투를 지칭하며 생긴 신조어다. 급식체 중에 'ㅇㅈ(인정)'이라는 용어도 있다. 상대방과 동의를 주고받을 때 'ㅇㅈ하는 부분?(이 부분 인정해?)' 'ㅇㅇㅈ!(어 인정!)'과 같이 쓰이는 용어다.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2030도 요즘 'ㅇㅈ'을 갈구한다.

한국기자협회 307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경향신문>의 '부들부들 청년' 시리즈(☞관련 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헬조선의 대안으로 '인정'을 꼽는 경향이 있었다.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부터 수긍하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잠정적 진리를 받아들인 채 대화를 해야만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지혜다.

요즘 여성들이 종종 주장하는 '시선 강간(마치 강간하듯 상대를 음란하게 보는 행동)' 문제를 풀 실마리도 이런 류의 '인정'과 관련이 깊다. '시선 강간'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는 고민해볼 만하다.

인간을 물건 취급하는 태도, 물화(物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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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화>(악셀 호네트 / 나남 / 2006 / 9000원) ⓒ 나남

'시선 강간' 문제를 다루려면 우선 알아야할 내용이 있다. 프랑크푸르트대 사회연구소장 악셀 호네트의 주저 <인정투쟁>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 혹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은 종종 사회적 무시, 억압을 겪고 '울분'을 느끼면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데 그것이 때때로 사회를 발전시키기도 한다.

물론 갈등 상황에서 사람들이 언제나 의견 일치를 이루는 건 아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것과 상대방이 인정받고 싶은 건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갈등을 풀 '최소한의 기준'은 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상호주관적 인정'이라 부를 수 있다면(<인정투쟁> 참조), 갈등에 '앞서' 사회인이라면 모두가 수긍부터 해야하는 것을 '기본적 인정'으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화> 참조). 바로 이 기본적 인정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호네트의 다른 책인 <물화>에 따르면 기본적 인정이란 내가 잘못 파악한 맥락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시인하는 심리다. 그래서 '주의력이 결핍되지 않도록 원래의 맥락에 마음을 쓰는 심리'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하나 생각해보자. 당신이 취직을 해서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고 하자.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사무실 풍경은 순간적으로 '덩어리처럼' 다가온다.


그 풍경을 당신이 곧바로 이성/감정/의지적 측면으로 따로따로 접근해 상황을 부각시키는 건 '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시간이 지나고 좀 익숙해져야 가능하다. 가령 '내 자리가 저기군(이성)' '저 선배님은 무서워(감정)' '나를 믿고 뽑아준 회사니 성실하게 일하는 게 마땅하다(의지)' 등과 같이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들이 접하는 상황을 이렇게 2차적인 '가공'을 하며 한 측면을 부각시키면, 나머지 맥락들이 배경으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사태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결손이 생기면서 부적절한 판단을 내릴 위험도 늘어난다. 그래서 원래의 맥락에 충분히 마음을 써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정'을 해야하는 것이다. 호네트는 사람들이 원래의 맥락에 대한 주의력 결핍에 빠지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물화(物化)'라는 현상을 예로 든다. 물화는 '이성'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할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타인 또는 자신을 마치 물건처럼 대하는 태도다.

자위기구랑 섹스 수익률 비교에, 시선 강간까지... 이런 게 '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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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물화 현상의 한 단면. ⓒ 개그 모아 갈무리


이 경우 사람들은 서로를 감정, 의지적 측면이 결핍된 채 마주하며 오직 계산적인 태도로 접근하기도 한다. 위 사진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이다. 여성과 자위기구를 나란히 비교하며 수익률을 계산할 정도로 물화 현상에 매몰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시선 강간' 역시 물화 현상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시선 강간'이란 말이 부당하다는 반론들도 있다. 주요 반론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첫째는 상대의 시선을 보고 내가 느낀 불쾌감과 상대의 실제 의도가 일치하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람의 감정은 주관적이므로 바라보는 의도는 다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 지적은 본질을 벗어난다. 왜냐하면 호네트가 지적하듯 인정이 이성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상대의 '실제 의도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눈을 그렇게 뜨는 게 적절한지(맥락)에 대한 지혜'를 갖는 것이다.

우리 사회인들은 서로 의도를 파악할 때 태도를 보고 '해석'하지 직접 머릿속에 들어가 '실제' 의도를 확인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잘 안다. 눈치의 존재가 이를 증명한다.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눈을 그 따위로 떴다'는 것이다. 의도란 언제나 해석된 의도이지, 실제 의도가 아니다. 둘째 반론은 그럼 부적절한/적절한 시선의 기준이 뭐냐는 것이다. 그런 보편적인 기준이 있을 리 만무하다. 각각의 상황은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추상적인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일종의 맥락에 대한 주의력 결핍이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남성이 취할 수 있었던 행동들을 '비교'하며 최적의 답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밤에 엘레베이터에 낯선 여성과 우연히 함께 탄 남성은 다음 중 어떤 표정을 짓는 게 가장 적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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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쉬운 문제'에서는 직관이 개입해도 좋을 것이다. ⓒ 심슨/포켓몬 스틸컷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의 소중함

셋째 반론은 우리는 누구나 타인을 물건 취급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다. 물론 남녀 연예인이 섹시 콘셉트를 스스로 내세우고 팬들은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두고 서로를 '물건' 취급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상대방이 인격체라는 무의식적인 지각의 끈까지 놓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 상황에서 필요한 만큼의 주의력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연예인 사진에 성희롱 악플을 남긴다면 '물화'로 볼 수 있다.

마지막은 아무리 그래도 '시선 강간'이라는 말은 좀 심하지 않냐는 반론이다. '강간'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큰 책임을 상징하므로 남성의 반론 기회를 차단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반론'이란 것도 이성·감정·의지가 나눠지기 이전에 근본적인 차원의 '인정'이라는 심리 상태에 근거해야 한다. 혹시 자신이 맥락 상 부적절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는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부터 가져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결국 인정이란 어떤 상황의 맥락, 상대방의 존재를 우선 '있는 그대로' 시인하는 것이다. 호네트는 이성만이 극단적으로 부각됐을 때 발생하는 '물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우리는 감정이나 의지가 지나쳐 생기는 '혐오'나 자신의 직관에 대한 '맹신'도 고민해볼 수 있다. 서로의 존재를 우선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어렵지만 우리의 인간성이 결핍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지켜야할 태도는 아닐까.
#시선 강간 #성적대상화 #여성혐오 #급식체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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