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게 배우는, 관계 맺기 기술

[리뷰] 나카지마 요시미치 <비사교적 사교성>

등록 2016.08.08 15:50수정 2016.08.0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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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하이데거의 말을 들어,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본인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어난 이후에는 다르다. 우리는 우리 의지대로 삶을 '선택'하며 살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모든 것을 단념하고 유령처럼" 살든, "근사한 가능성을 품고" 살든, 어차피 "당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전부 당신 손에 달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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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바다출판사

이 책 <비사교적 사교성>은 1948년생 괴짜 철학자가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서툰 젊은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책은 그리 무겁지 않다. 철학책이라기 보단 에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책에서 저자는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위악스럽게, 또 때론 가볍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는다.


'비사교적 사교성'이란, 칸트의 표현이다. 문명 상태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살게 된다. 이때 인간의 사교성과 비사교성 모두 발휘된다.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성질'(사교성)과 '자신을 개별화하는(고립시키는) 성질' (비사교성) 둘 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완전히 혼자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타인과 함께 있으면 불쾌"한 존재가 된다.  

그러니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서 성공이란, 인간의 이 두 성질을 얼마나 조화롭게 운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칸트는 이를 꽤 잘 운용한 듯 보인다. 칸트는 본인의 두드러진 비사교성을 꿋꿋이 지켜나간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본능이 요구하는 사교성을 배격하지도 않았다. 혈연관계, 친구관계, 애정관계를 혐오했던 칸트는 '가까운 사람'을 철저히 경계했다. 이런 관계들이 인간에게서 이성과 영혼의 자율성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래서 같은 쾨니히스베르크에 사는 형제자매와도 연락을 끊었고, 그 어떤 철학자와도 친구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칸트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냈는데, 이들은 주로 '철학과는 연이 없는' 공무원이나 상인같은 '남자들'이었다.

예순 세살 무렵 자기 집을 갖게 된 칸트는 매일 사람들을 초대했고, 이들과 열정적으로 대화했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제멋대로' 사람들을 모조리 싹 돌려보냈다. 칸트는 "1분이라도 제 뜻에 반해 타인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았"고, 칸트에게 "타인은 그저 소파나 쿠션처럼 그의 생활을 쾌적하게 해 주는 '설비'일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칸트의 이런 관계 맺기를 저자가 소개한 이유는 하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칸트의 태도에서 하나쯤은 배워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사람들이 타인과 수월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의 근원엔 모든 이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이 부질없는 욕구가 관계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래서 저자가 제안하는 건 아래와 같은 태도다.

"이른바 만인에 대한 '사교성'을 지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는 사람을 갖는 것, 바꿔 말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나를 신뢰하고, 이해하는 사람.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서 힘을 얻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이런 사람 앞에서 우리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안달하는 대신, 자유롭게 '제멋대로' 굴 수 있다. 괴짜 철학자는 이런 단 하나의 유대만으로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비사교적 사교성> (나카지마 요시미치/바다출판사/2016년 06월 13일/1만2천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비사교적 사교성 - 의존하지 않지만 고립되지도 않게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심정명 옮김,
바다출판사, 2016


#비사교적 사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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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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