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의 시설은 왠만한 대학 캠퍼스에 못지 않다.
이영섭
40대 초중반, 서울 강북에 4억 내외의 25평 아파트 보유,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맞벌이,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할 것 같던 이 부부는 왜 모험을 선택한 것일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동안 엄청난 사교육비를 견뎌내고, 그때쯤이면 얼마나 올라있을지 상상도 안 되는 대학 등록금을 또 4년간 감당하더라도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리란 기대감이 별로 없어요. 설사 취직을 한다 해도 지금보다 고용안정성이 나아졌으리란 보장도 없고요.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가 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는 캐나다 본교와 동일한 학력을 인정해주는 국제학교 졸업장이라고 생각해요.그 졸업장을 발판 삼아 국내가 아닌 외국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회사에 취직하는 게 유일한 탈출구라고 봐요. 국제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캐나다에 이민 가 살고 있는 언니에게 아이를 보낼 생각이에요. 그때 우리 부부에게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면 대학등록금 문제로 좌절하게 될 수도 있죠. 등록금 문제는 국내에 있든 외국에 나가든 마찬가지니 어쩔 수 없어요. 어쨌든 이 쪽이 더 생존 확률이 높은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이 부부는 국제학교의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짜놓은 상태였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내년에는 권고사직이든 명예퇴직이든 저희 부부 중 퇴직금이 더 많은 쪽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제주에 내려가 학교에 보낼 거예요. 서울에 남은 사람은 정말 죄송스럽게도 부모님 댁에 신세를 지면서 버는 돈 대부분을 제주로 보낼 거고요. 제주로 내려간 사람도 아르바이트든 자영업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겠죠. 졸업 때까지 부족한 돈은 서울 아파트를 팔고 제주 빌라를 분양 받으면서 남은 차액과 퇴직금으로 버텨보려 해요. 남들에게는 무모한 행동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저희 부부는 알고 있어요. 타고난 금수저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직하고, 평범하게 결혼해봐야 안정적인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요. 저희 부부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주 잘 알지요."국가의 교육정책과 일자리 정책에 대해 불신을 갖는 이런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유학과 이민, 혹은 전국 각지의 국제학교를 통한 해외 진출을 노리는 학생들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예전에는 상류층을 위한 특권으로만 여겨지던 해외유학과 국제학교에 이제는 평범한 중산층까지 도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중산층들이 기존에 누리던 여러가지 혜택을 포기하고, 연봉과 집, 모든 것을 다운사이징하고, 그것도 모자라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넣으면서까지 아이를 해외로 보내려는 것은 결코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선 C씨의 말처럼 평범하게 살아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부모들이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