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넉넉한 시간, 여유있게 밥을 먹고 있나요? 아니라면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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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얽힌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 작년 여름,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지인의 여동생이 독일인 남편 그리고 딸과 함께 내가 살고 있는 일지암에 찾아왔다. 그 가족은 밝고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다소의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부인은 말했다. 차를 마시면서 말을 들어보니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독일인은 예의와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문화에 익숙하다. 그것이 사회 질서에는 좋은데 서로의 감정 교감에는 장애가 된다. 머리는 냉철하고 몸짓은 엄정한데 가슴이 허전하다. 그래서 부인은 인간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덕목이 '정情'이라고 생각하고, 이해관계와 규칙을 넘어 소소한 배려와 친절을 나누며 살고자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런데 이런 정을 남편과 독일인들은 매우 낯설어하고 때로는 불편해 한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독일인 남편은 정의 개념이 잡히지 않는 눈치였다.
다음 날, 두륜산을 등산하고 일지암 건너편에 있는 진불암에 들렀다. 그 날은 마침 칠월칠석이어서 시골 할머니들이 많이 오셨다. 진불암 주지스님은 반갑게 맞이하며 "밥 먹고 가라"고 방으로 안내했다. 할머니들이 우리 일행을 보고 밥상을 차려 주었다. 외국인과 예쁜 딸을 보고 좋아하며 이것저것 밥상에 얹는다.
독일인 남편과 딸은 특히 냉미역국이 맛있는지 잘 먹었다. 할머니들은 자기들끼리 밥을 먹으면서 이쪽 밥상에 반찬이 떨어지면 다시 가져다주었다. 미역국도 한 그릇 듬뿍 가져다주었다. 후식으로 수박과 참외도 푸짐하게 내왔다. 시원하고 상큼한 매실차도 나왔다.
얼핏 곁눈으로 보니 독일인 남편의 표정이 다소 복잡하다. 상대방 식사량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막 퍼주는 이 상황이 생경한 모양이다. 다 먹고 마당에 나왔는데, 어느 할머니 보살님이 떡과 과일을 잔뜩 안겨준다.
몇 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소년 정주영이 받은 밥과 떡은 무엇이라도 '먹이고자' 하는 인심과 인정이었다. 그 날 밤 내가 독일인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 진불암에서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건넨 밥이 바로 '정'이라고. 사람의 자존감을 높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튼튼하게 이어주는 것에 진심과 사랑이 담긴 밥 이상의 것이 있을까 싶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명대사를 기억하시는지? 북한군 장교가 재미있고 화목하게 지내는 두메산골 사람들을 신기해하며 촌장에게 묻는다. "영감님! 대체 이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뭡네까?" 촌장이 답한다. "뭘 자꾸 많이 멕이는 것이제."
볼 일이 있어 서울에 가는데 아침 출근 시간대에 편의점 한 편에 서서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먹는 청년들을 보면 심란하다. 씁쓸하고 애처로운 마음이 스며온다. 밥은 곧 평등이고 존엄이고 즐거움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밥은 여럿이 먹어야 하고 넉넉한 시간에 여유롭게 먹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밥 먹는 행위가 밥을 벌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내려앉았다. 구의역에서 세상을 떠난 젊은 청년이 남기고 간 컵라면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이라는 말의 출현이 몹시도 우울하다. '밥'의 존엄성을 위하여 우리 시대의 '법'은 어떤 길을 찾아야 하는가? 밥과 법이 사이가 좋은 날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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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밥이 낯선 독일인 남편과 정주영의 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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