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무관생도들> 표지<마지막 무관생도>들은 대한제국 무관학교의 마지막 생도 45명의 실제 행적을 바탕으로 소설적 상상력을 덧입혀 그들의 생애를 되살려낸 소설이다.
푸른사상
작가는 이들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생도들의 행적을 좇아, 무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료조사에 매달렸다. 그 결과 일본 국립공문서관 등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미공개 자료들을 대거 발굴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사료를 통해 드러난 그들의 흔적들을 조각조각 모으기 시작했다.
소설이지만 실존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썼고, 그들의 구체적인 행적 역시 사료에 드러난 실제 행적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그럼에도 메워지지 않는 간극은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풀어냈다. 사실(Fact)과 소설(Fiction)이 결합된 완벽한 팩션인 셈이다.
소설은 무관학교 동기이자 일본 육사 26기 동기인 이응준과 홍사익, 지석규(지청천)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무관학교 선배 김광서(김경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무관학교 폐교 후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건너올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요코하마의 한 술집에 모여 '피의 맹세'를 한다.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독립전쟁에 나서겠노라고.
그러나 이들 중 실제로 맹세를 지킨 이는 김광서와 지석규 뿐이었다. 1919년 3.1 혁명이 일어나자 기회를 엿보던 김광서와 지석규는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로 간다. 하지만 이응준은 조선군사령관 우쓰노미야의 노회한 술책에 말려 끝내 망명을 포기한다. 홍사익 역시 눈 앞에 펼쳐진 출세가도를 외면하지 못했다.
부끄러움을 잊어가는 그들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다. 작가는 이응준과 홍사익으로 대변되는 친일군인들이 왜 탈출을 포기하고 일본의 통치에 협력하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실제 행적을 바탕으로 심리 변화를 그려냈다.
요코하마에서의 맹세와 지석규의 존재는 그들에게 사실상 족쇄와도 같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조국을 배반했다는 죄책감, 독립군 지도자가 된 동기 지석규에 대한 미안함 등 그들은 일본군복을 입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슴 한 구석을 비수처럼 찌르던 그들의 부끄러움은 무뎌질 대로 무뎌진다.
동기의 변절을 끝까지 믿고 싶지 않았던 지석규는 이미 '일본군 육군 중장'이 된 홍사익에게 두 번이나 밀사를 보내 탈출을 종용하지만, 권력의 맛에 도취된 그에게 요코하마의 맹세는 '철 없는 시절의 객기'일 뿐이었다.
'나는 요코하마에서 피를 섞어 마시며 맹세했다. 내 조국, 내 동포를 생각하면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독립전쟁의 승산은 없다. 일본은 내 어깨에 장군 계급장을 달아줬으니 충성해야 한다. 다시는 이 문제로 고심하지 않겠다. 하늘이 벌을 내려도 할 수 없다.' - p.407
욕망 앞에 조국을 배반한 마지막 무관생도들이응준, 홍사익 외에도 때가 되면 독립전선으로 나가겠노라 다짐했던 생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결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는 그날까지도 일본의 군복을 입은 채 일본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거나, 퇴역해 군사교관 등으로 일하며 일본의 통치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학도병으로 나갈 것을 권유하며 동포들을 사지로 내모는 적극적 친일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도 예외는 있었다. 생도 시절, 힘을 길러 독립전선에 나가 일본과 싸우겠노라 다짐한 조철호는 국내에서 조선소년군(훗날 보이스카우트)을 창설하고 민족혼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독립운동에 나선 그의 마지막은 불행했다. 고문으로 미약해진 심신이 병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독립운동에 나섰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동기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마지막 무관생도들. 그들은 모두 일본군, 만주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죽은 동기 앞에서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인간의 맹세가 욕망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해보이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안됐지만 허울뿐인 애국심과 착각 속에서 산 사람들이지요. 조선은 독립할 힘도 없고 그걸 해봤자 옛날처럼 형편없는 나라로 전락할 거예요. 일본과 합병 안 했다고 생각해봐요.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뭘 했겠어요? 우리가 뭐가 됐겠어요?'- p.394
창군 작업을 주도한 일본군 출신들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독립전쟁에 뛰어든 이들과, 끝내 조국을 마음에서 지워버린 이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으로 해방을 맞이한 홍사익은 결국 전범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맹세를 저버리고 조국을 배반한 대가였다. 이응준을 비롯한 변절자들 역시 같은 신세에 처해질 것임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반도 남쪽에서 미군정이 실시되며 일본군 출신 조선인들이 대거 기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친일군인들은 재빠르게 일본군복을 벗고 '조선임시군사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미군정에 협력하기 시작했다. 엊그제까지 일본군 대좌의 군복을 입고 있었던 이응준 역시 창군 작업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식민 통치를 받은 나라들은 독립전쟁을 한 사람들을 중용하고 과거 청산을 그들에게 맡기는 게 상례였다. 식민 종주국의 관리와 장교를 지낸 부역자들은 응당한 처벌을 하고, 죄가 없는 자라도 재교육을 시켜 등용하는 게 순리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한 통치를 점령지 통치로 여긴 탓이었다. 혹독한 처벌을 각오하고 있던 친일파 마지막 무관생도들에게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그 정점에 이응준이 서 있었다.' - p.450
해방 조국에서 일본군 출신들이 실권을 장악해가는 동안, 이역만리 중국 땅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던 애국지사들은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미군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임정요인과 광복군 대원들에게 개인 자격으로 들어올 것을 요구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광복군 총사령 지석규 역시 '개선장군'이 아닌 초로의 노인이 되어 쓸쓸히 고국으로 귀환했다. 그는 이응준을 비롯한 일본군 출신들이 창군 작업을 주도하는 것을 보며 밤마다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