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손만 잡으면 장갑은 한 짝만 있어도..."

[그림책 읽는 아버지] 이모토 요코 <장갑보다 따뜻하네>

등록 2016.08.22 14:40수정 2016.08.2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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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날을 떠올립니다. 바람이 차서 코도 몸도 귀도 꽁꽁 얼어붙으려 하던 날입니다. 아이랑 함께 나들이를 나오는데 아이가 추워하겠구나 싶어서 손을 잡습니다. 나는 겨울에도 장갑을 거의 안 낍니다. 장갑을 안 끼고 주머니에만 넣던 손을 빼어 아이 손을 잡는데, 아이가 문득 말합니다. "아버지 손 따뜻하네? 좋아."

바지 주머니에서 내 손이 따스한 기운을 얻은 듯합니다. 그런데 바깥 찬바람은 아이 손을 감싼 내 손을 후려칩니다. 아이하고 자리를 바꾸어 다른 손을 잡습니다. "어, 이 손도 따뜻하네? 손은 주머니에 넣으면 따뜻해?" "주머니에 넣어도 따뜻하고, 서로 잡아 주어도 따뜻하지."


장갑을 낄 때뿐 아니라 서로 맞잡을 적에도 손이 따뜻하다고 깨달은 아이는 제 작은 손으로 커다란 아버지 손을 감싸 주려 합니다. "얘야, 그리하지 않아도 돼. 아버지는 괜찮아." "그렇지만 아버지 손은 바람을 맞잖아. 내가 따뜻하게 해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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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북극곰


"언니가 장갑 한 짝을 주었어요. "와! 따뜻하다!" 하지만 다른 손은 여전히 시렸어요." (5쪽)

이모토 요코님 그림책 <장갑보다 따뜻하네>(북극곰, 2016)를 읽습니다. 겨울이 아닌 한여름에 나온 이 그림책을 보면서 문득 겨울날 어느 한때를 그립니다. 이 여름이 지나면 찾아올 겨울을 헤아리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날 몸을 웅크리면 외려 더 춥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추운 겨울날 서로 손을 맞잡으면 뜻밖에 몹시 따뜻하구나 하고 느끼곤 해요.

어릴 적에 장갑이란 거의 없이 동무들하고 뛰놀다가 문득 서로 손을 잡을 적에 '사람 손이 이처럼 따뜻하네' 고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어머니하고 저잣마실을 다녀올 적에 어머니가 겨울에 손을 잡아 주면 '어른 손은 이렇게 따뜻하구나' 하고도 느꼈지만, 내 작은 손을 바깥에서 감싸 쥔 어머니 손은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네 하고도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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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북극곰


"장갑보다 따뜻하네요!" 언니는 미미의 손을 더 꼭 잡았어요. 그러자 미미의 손은 더 따뜻해졌어요. "와! 언니랑 나랑 손을 잡으니까 장갑은 한 짝만 있으면 되네?" (10쪽)

그림책 <장갑보다 따뜻하네>는 '겨울에 장갑을 끼면 손을 따뜻이 감싸'지만, 장갑이 없어도 '손과 손이 서로 마주 잡으면서 고이 보듬을' 적에 얼마나 따뜻한 살림이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줍니다.

먼저 언니가 동생 손을 잡아 주지요. 동생은 할머니 손을 잡아 주어요. 그러고 나서 수많은 동무를 하나씩 마음속으로 그려요. 열이고 스물이고 동무들이 '장갑이 없어'도 서로 손을 맞잡고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걷는 모습을 그려요.

"미미는 언니에게 물었어요. '그럼 여우랑 너구리랑 고양이랑 손을 잡아도 장갑은 한 짝만 있으면 되는 거야?'" (18쪽)

"그럼 아주 아주 많아도 서로 손만 잡으면 장갑은 한 짝만 있으면 되는 거지?"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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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북극곰


서로 손을 잡으며 추위를 말끔히 잊습니다. 추운 겨울날 서로 손을 맞잡으면서 추위가 아닌 기쁨을 누립니다. 추위는 어느새 사라져요. 찬바람은 어느새 떨쳐요. 마주 잡은 손처럼 얼굴을 마주 보면서 웃어요. 얼굴은 웃음이 가득하고,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요.

이렇게 서로 손을 따스이 맞잡으면서 걷는 마음 그대로,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을 따사롭게 바라봅니다.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요. 내가 어려우면 이웃한테서 스스럼없이 도움을 받아요. 내가 이웃을 돕고, 이웃이 나를 도와요. 서로 아끼고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돌보고 서로 보살펴요.

어린이로 자란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고 보살핌을 받았어요. 어버이로 두 아이를 돌보는 나는 우리 아이들을 새로운 어버이가 되어 사랑을 물려주고 기쁨을 이어주어요. 아마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이녁이 어릴 적에는 이녁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으셨겠지요?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새롭게 어른이 되어 어버이 자리에 서면 기쁜 웃음으로 사랑을 물려줄 테고요. 한여름에 헤아리는 한겨울 이야기로 마음을 시원하고 넉넉하면서 '즐거운 따스함'으로 가다듬습니다.
덧붙이는 글 <장갑보다 따뜻하네>
(이모토 요코 글·그림 / 강해령 옮김 / 북극곰 펴냄 / 2016.7.19. / 15000원)

장갑보다 따뜻하네

이모토 요코 글.그림, 강해령 옮김,
북극곰, 2016


#장갑보다 따뜻하네 #이모토 요코 #그림책 #사랑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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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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