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겨울 심학산 아래 부대에서 근무할 때 소대원들과 함께 (앞열 왼쪽서 두번째 기자, 세째열 왼쪽 첫번째 임영규 상병)
박도
양반의 고장편지봉투에는 '1969. 9. 18. 안동 와룡' 우체국 소인도 뚜렷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 부고장이 가짜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다. 곧장 작업 중인 임 상병을 부르려다가 참았다. 그날 오후 일과를 모두 다 끝내고 내무반으로 돌아온 임 상병을 내 방으로 조용히 불렀다.
"임 상병, 정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나?""그런가 봅니더. 그 함자가 정말 제 장인어른 맞습니더.""그럼 좋다. 근데 안동은 양반 고장이지?""그라믄요. 양반 고장 하믄 조선 팔도에서 우리 안동만한 곳은 없을 깁니더.""그런데 그런 양반 고장에서는 사람이 죽기도 전에도 부고장을 보내나?""어데요. 그런 법은 없지요.""그런데, 임 상병 처갓집이 그랬는데.""네에!? 그럴 리가!""자, 여기를 보라고. 이 부고장에 장인 돌아가신 날은 9월 20일이요, 발인 날은 9월 22일로 돼 있지.""맞네요.""그런데, 이 봉투 우표 위에 안동 와룡우체국 소인 날짜는 9월 18일이잖아.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이 부고장을 우체국에서 부친 게 아냐?""네에!?""군대에 오면 '마누라 빼놓고는 다 죽인다'고 하더니….""…."임 상병은 그제야 고개를 팍 숙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더라"아이가 몇 살인가?""큰놈은 아들인데 세 살이고, 첫 휴가 가서 만든 둘째는 가시난데 아직 얼굴도 못 봤십니더. 마누라 편지에 이제 막 기어 다닌다고 합디더. 아마 마누라가 추석을 앞두고 그랬나 봅니더." "그렇게 남편이 보고 싶으면 여기로 면회 오라고 하지 그랬어. 여기로 온다면 내 이틀 정도는 특박을 시켜 줄 테다.""우리 안동군 와룡면은 반촌이라서 여자들이 남편 군부대로 면회 가는 일은 없습니더. 그라고 마누라가 암만 오고 잡아도 시부모에 시할매까지 있는데, 우째 신랑 면회 간다고 남사스럽게 나설 겁니껴?"나는 그 자리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편지 봉투와 부고장에 불을 붙였다.
"임 상병, 이 부고장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다. 앞으로 소대원들의 머리 부지런히 깎아주고 성실히 근무하면 내 포상 휴가 상신이 내려올 때 임 상병을 선착으로 보내주겠다.""소대장님! 정말 잘못 했습니더. 용서해 주이소.""걱정 말어. 이미 부고장 태워버렸잖아.""고맙습니다. 소대장님, 나중에 제대한 후 지 고향으로 꼭 한번 놀러 오이소. 안동군 와룡면사무소 앞에 와서 이발하는 임영규라 카면 다 알 거라얘." "알았다. 그만 가 봐.""공격! 돌아가겠습니더."그날 밤, 내무반에서 킬킬거리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다.
"임 영감님, 좋다가 말았습니다. 근데 어째 군대는 그렇게 늦게 왔습니까?""호적도 고쳐 보고, 이리저리 피해도 안 되니까 가로 늦게 안 왔나.""쇼를 하려면 좀 잘하지 그랬습니까?""마누라도 우표 위에 찍힌 날짜까지는 생각 못했을 기라. 나도 그게 탈 날 줄은 몰랐는데….""근데 소대장님은 어째 알았을까요?""귀신 곡할 노릇이다. 야, 소대장이 말이야 '안동 양반 동네는 초상도 안 났는데도 부고장 보내느냐'는 그 말에는 가시개질(가위질, 곧 이발사)하는 사람 치고 말 못하는 사람 없다카지마는 마, 내 더 이상 할 말이 없더라."임 상병의 그 말에 내무반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2화부인의 면회석식 후 중대 연병장에서 야간 근무자 군장검사를 하려고 집합을 시키고 있는데 위병소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소대 조 이병 부인이 생후 6개월이 된 아들을 업고 면회를 왔다고 했다. 조 이병은 첫 아들을 낳은 지 한 달 만에 입영통지서를 받고 입대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나는 조 이병을 그날 야간근무자 명단에서 빼고 대신 잔류병에서 그 자리를 보충한 후 그들 부부를 소대 전용 면회장으로 쓰고 있는 이장 댁으로 보냈다. 그는 부인의 면회 덕분에 하룻밤 특박(특별외박)이었다.
전방 말단 소총소대의 병사들에겐 외출 외박이 거의 없었다. 같은 의무복무지만 전후방의 근무 여건은 천양지차였다. 전방 말단소총소대 병사들에게는 오직 일 년에 한 차례 있는 정기휴가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한창 성욕이 왕성한 젊은 나이에 쏟을 대상이 없어 그들은 입으로 모두 발산했다. 약삭 빠른 녀석들은 '절간에서도 새우젓 얻어 먹는다'는 속담처럼, 여자가 매우 귀한 전방에서도 수완 좋게 해결하는 몇몇 소대원들도 있었다. 간혹 부대 언저리를 배회하는 아가씨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같은 소대 내무반에서 같은 여성과 잠자리를 가진 일까지 생기는 웃지 못 할 일들도 벌어진곤 했다.
조 이병 부인은 한창 신혼시절, 남편이 갑작스레 입대하자 얼마나 그리웠으면 이 전방까지 찾아왔을까? 멀리서 바라보니 조 이병 부인은 부끄러움 탓인지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위병소 대기실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 이병이 A급 새 옷으로 갈아입고 위병소로 나가자 연병장에 모인 녀석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부러움에 찬 표정으로 한 마디씩 뱉었다.
"조 이병은 좋겠네.""밤새도록 근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