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더 이상은 못 간다!"
양학용
고통과 희열이 반복되는 동안 선두와 후미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진다. 그 누구도 스스로의 페이스에 발걸음을 맞추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극한의 고개를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얼마나 걸었을까. 신기루처럼 멀게만 보이던 설산 머리가 코앞으로 다가서면서 산비탈의 기울기는 45도를 넘어 날카롭게 곧추섰다. 따라서 길은 뱀처럼 구불구불 돌며 천천히 고도를 높이며 나아갔다.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선두 4인방 아이들(예인, 남수, 정민, 민아)이 45도가 넘는 산비탈을 직선으로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당나귀가 만들어놓은 길이었다. 3일 후. 우리들이 트레킹을 마치고 레로 돌아갔을 때에 여러 국적의 여행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떠도는 소문 하나가 있었으니, 요약하자면, 한국에서 온 어린 청소년들이 당나귀길(Donkey Road)을 타고 '꼰제-라'(Konzke-La) 정상에 오르고도 멀쩡했다더라, 하는 이야기였다. 하하.
반면 후미에서는 진실과 아라가 고산증이 점점 더 심해짐에 따라 주저앉고 걷기를 반복하면서 가이드 지미와 함께 까마득한 점이 되어갔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 역시 고통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오직 반복적인 내 숨소리만 위안이 되던 순간에, 마침내 해발 4900미터 '꼰제-라'(Konzke-La)에 마지막 발걸음을 올려놓았다.
얼굴을 향해 강하고 거침없는 바람이 불어왔고, 룽가(티베트불교의 경전이 적힌 깃발)가 춤을 추었다. 푸른 빙하가 반사시킨 태양빛이 내 눈을 멀게 하려는 듯 작심하고 달려들었으며, 발아래 작은 돌무덤에서는 야크들의 머리뼈가 통째로 굴러다녔다. 낯설었다. 그리고 황홀했다. 팔을 벌리고 오페라의 배우가 된 양 360도를 돌아보았다.
오늘 하루 내가 걸어온 길들이 까마득하게 나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그 길들이 마치 나의 인생에서 내가 지금껏 걸어온 삶의 궤적들인 것처럼 느껴져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가쁜 호흡은 목젖까지 차오르고 천근만근이던 발걸음을 하나씩 옮겨서 하늘아래 이곳까지 올랐듯이, 내 삶도 그렇다면. 혹은 그럴 수 있다면. 이런 감상들에 빠져보아도 부끄럽지 않을 시간. 그 시간을 벗겨내고 맞은 편 길에서 당나귀 떼와 몰이꾼들이 올라왔다.
등에 진 짐이 가벼운 걸로 보아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이다. 룽가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는 우리들이 올라왔던 그 길로 내려선다. 일러두자면, '꼰제-라'에서의 '라La'는 고개라는 뜻이다. 문득, '라La'의 의미가 그 옛날 순례자들과 상인들이 당나귀를 벗 삼아 넘어섰던 삶의 고통과 희열의 시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꼰제 라에서 정호의 다운자켓 '광고 찍기' 놀이.
양학용

▲ 아~ 히말라야, 꼰제 라 고개에 올라서서.
양학용
바람이 찼다. 우리들은 패딩 잠바를 깨내 입었다. 고산에서는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법이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었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새처럼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아오르려고 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이루어놓은 결과를 즐기고 있었던 셈이다. 난 그들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 속 그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고, 내 사진은 그들에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가장 높은 패스(Pass)를 넘는 날이다. 생각했던 대로 정말 힘들었다. 오르막 길, 오르막 길, 또 오르막 길 ㅠ. 정말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힘든 것도 다 사라졌다. 내가 지금까지 본 경치 가운데 가장 멋진 경치였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정호)30분쯤 후에 진실과 아라가 가이드 지미와 함께 우리들 중에서는 마지막으로 '꼰제-라'에 올라섰다. 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울었다. 펑펑. 그들은 눈물이 범벅인 채로 휴대용 산소통으로 입을 막고 산소를 마셨다. 한참 동안 산소를 보충한 후, 그들이 세상에 내어놓은 첫 말들이 우리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삼촌, 임용고시요... 한~방이면 합격할 것 같아요.""뭐? 임용? 한방?"우리들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길에서 몇 번이고 죽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서웠다고 했다. 그래서란다. 이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발 4900미터 고개에서 산소의 흡입 끝에 뱉어낸 그날의 다짐처럼 지금 그들은 한 방에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제주도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 꼰제 라에서 산소 마시기.
양학용
'숨이 부족해서 깊게 숨 쉬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 순간 너무 무서웠다. 무서움에 눈물이 났고, 울면 호흡이 더 힘들어졌다. 결국 뒤쳐졌고 가이드와 헬퍼가 함께 산행했다. 같이 있어도 혼자 힘든 기분이랄까. 혼자만의 외로운 산행 같았고 갑자기 서글픔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높고 험한 돌길을 오르면서 또 그 마지막 숨을 쉬는 느낌을 받았다. 서러움과 힘듦이 다 몰려와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내 옆에 함께 가는 사람이 없다는 서글픔. 나만 이렇게 숨 쉬기 힘들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풍경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헬퍼에게 내 짐을 맡겨야 하는 상황들. 그 모든 상황이 다 힘들었다. 그때 가이드가 내 맘을 알았는지 두려워하지 말라며 우리들이 너와 함께 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 후로 가이드를 의지하며 다시 힘을 내어 걸을 수 있었다. 그때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눈 덮인 산과 여러 산맥들이 이어진 절벽들을 재빨리 눈에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고산 증세가 심해지고 속은 울렁거리고 머리도 아파왔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이 길이 언제 끝날까만 생각했다. 마침내 정상을 찍었을 때의 기쁨. 해냈다는 기쁨.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길이 끝났다는 기쁨. 내 호흡으로 올라왔다는 성취의 기쁨. 너무 행복했다. 아라와 나는 '우리가 어떻게 올라왔을까' 이야기하며 산소를 마셨다. 정상에서의 기쁨을 만끽했다. 4900미터 높이에서 본 히말라야의 장관은 너무나도 멋졌고 내려다보는 그 자체가 황홀했다. 내 생애 최고의 극한 체험이지 않을까. 이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어떤 것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진실)'오늘 4900미터를 올랐다. 무려 1200미터? 1300미터? 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어떻게 올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걷고, 또 걷고, 그러다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고. 이걸 수십 번 반복. 처음으로 산소를 마셨다. 가이드의 도움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막바지에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토할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났다. 그때 상황에서는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그냥 가고 싶다...... 라는 것 뿐. 정상에 올랐을 땐, 아...... 그때 기분은...... 말로 할 수가 없다. 내년이면 임용이지만 걱정되지 않는다. 그냥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아라) 여행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 타인과 타인의 문화를 만나는 일이다. 하지만, 여행은 때론 나를 만나는 일이다. 지금껏 세상에 꺼내놓지 못했던 내 안의 욕망과 만나는 일이다. 내 안에 존재해 왔지만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나의 또 다른 삶을 살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이 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또 하나의 삶을 다 살아낸 것처럼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 이 높은 곳에도... 꽃
양학용
그날 나는 '의문' 하나를 풀었다. 한 번의 '여행학교'를 끝낼 때마다, 아내와 나는 다시는 이 고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는 사이 어느새 마음속에서는 다음 여행학교를 가늠하고 있다. 도대체 여행학교의 그 무엇이 우리 부부를 밀어가는 걸까? 그 어떤 힘이.
그러니까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호흡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미칠 것처럼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또 다시 그들이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 그냥 멈춰 포기해버려도 그만일 것을 또 한 걸음 더 내딛게 하는 그 힘이 아이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본디 자신이 더 강하고 더 멋지고 더 아름답다는 것. 말하자면 그것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들 안의 자신을 알아가는 이 시간들이 아내와 나를 여행학교란 이름으로 지금도 길 위에 서 있게 하는 까닭인 셈이다.
숨다(Sumda) 캠핑장까지는 고개 너머 가파르게 3시간을 더 내려가야 했다. 캠핑장은 '천공의 성'마냥 하늘에 떠있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고고했고, 또 아름다웠다. 먼저 도착해있던 고교 3학년인 문중은 배낭을 옆에 벗어두고서 넋이 나간 듯 앉아있었다. 풍경에 취한 것인지 고산증에 취한 것인지 구별해내기가 어려웠다. 다만 앉은 폼이 제법 여행자의 향기를 또렷이 드러내고 있었다.

▲ 숨막히게 아름다운 숨다 캠핑장.
양학용

▲ 숨막히게 아름다운 숨다 캠핑장 2.
양학용
나는 우선 다람쥐 4인방을 찾았다. 그들 가운데 중학교 2학년 동갑내기인 정민이와 남수는 몸에 탈이 났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어지럽다고 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런 법이다. 객기를 부리며 젊음을 만끽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한다. 반면 민아와 예인은 시종일관 튼튼하다. 이 텐트 저 텐트를 들락거리며 아직 남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힘들어 죽을 것처럼 산소까지 마셨던 아라는 기적처럼 되살아나서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트레킹을 떠나 가장 힘들었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생애 최고의 극한 상황들이 잰걸음으로 우리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제일 높은 산을 넘고 와서 몸이 무리했는지 머리가 띵하다. 너무 아파서 잠이 온다. 오늘은 낙오자가 4명이 생겼다. 이제 내가 왜 아픈지 알겠다. 너무 무리하면서 100미터를 쭉 올라왔기 때문이다. 내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무사히 트레킹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 벌써 3일이 지나갔다. 그냥 아프다. 내 친구 정민이도 아프단다. 안수아저씨가 준 노트, 아빠가 준 가방, 엄마가 준 볼펜, 형이 준 목걸이. 가족이 준 물건으로 잘 버틸 것이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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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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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 '중도 포기'... "엄마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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