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직원이 내놓은 명함. 홍콩 등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진 않았다.
라이언엔폭스
- 장씨 일행이 조사 보고서에 만족했는가."(헛웃음을 지으며) 실망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히려 나에게 '제대로 조사했나', '아마 이들 재산은 이것보다 100배 이상 더 있을 것'이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모든 정보를 다 알아내기란 쉽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미국 내 파트너들로부터 최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 그리고 또 다른 기업인의 금융정보를 요청했다고 하던데."H 그룹의 조 아무개 회장 관련이었다. 이번엔 아예 조 회장의 미국 대형 금융회사의 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계좌 거래 내역과 잔고 등을 조사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A국가에서 받은 정보 사례 등의 이야기를 해가면서, 해당 금융회사에서 직접 발급한 서류로 주거나, 아니면 금융정보 조회 화면을 카메라로 찍어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 국내법에 어긋나는 불법이다."
- 앞선 대한항공 조씨 일가 조사도 비슷한 것 아닌가."그렇지 않다. 조씨 부부 재산 정보의 경우 금융계좌 전체 잔액을 조사해서, 일반적인 수준으로 금액 정보를 알아보는 것은 미국 안에서도 가능하다. 그런데 특정 금융회사의 특정 계좌 거래 내역이나 잔액 등을 조사하거나, 촬영하는 것은 미국 내 금융정보와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장씨 일행에 계속 이야기를 했고, 의뢰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대표는 "결국 양쪽의 입장 차이때문에 두 번째 계약은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나 역시 미국 내 파트너들과의 신뢰가 크게 손상되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장씨 일행이 국세청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또 업무의 특성상 의뢰인에 대한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도 관행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장씨 스스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노출하면서 국세청 직원이라는 신분이 드러났다.
- 국세청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어떻게 했나."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정부기관이 민간기업을 앞세워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장씨가 앞서 맺은 계약 자체가 '제 3자' 명의로, 사실상 허위계약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다. 이 자체도 사문서 위조가 될 수 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 국세청은 해외에 자체 정보요원을 두고 있는데, 왜 굳이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 국내 민간업체를 이용하는 걸까."사실 나도 궁금하다. 아무래도 해외쪽에서의 정보 수집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고, 장씨 등도 나에게 여러 차례 '힘들다'고 했다. 또 한편으론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거액을 들여가며 무리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이것이 미국에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우리쪽에게도 탈법적인 요구를 끊임없이 해왔다. 단순히 역외탈세 성과를 올리기 위한 것으로 보기엔 여러 의구심이 들긴했다."
- 국세청에선 '역외탈세 조사를 위한 통상적이고 정당한 정보수집 활동'이라고 한다."도대체 무엇이 '통상적이고 정당한 것'이라는 건가. 차라리 장씨 일행이 처음부터 국세청 직원이라는 소속을 밝히고, 떳떳하게 조사를 요청했으면 오히려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재벌 일가들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 등에 대해선 단호하게 나서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기관이 민간기업을 앞세워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지 않나."
김 대표는 지난 11일 장씨를 만나, 국세청의 공식적인 사과 요구 등을 담은 회사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국세청의 사과와 함께 관련 당사자에 대한 감사 등을 요구했지만, 아직 그쪽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세청, "정상적인 정보수집 활동... 특수활동비에서 정당한 집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