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돈키호테

[퇴직 후 걸은 산티아고] 스무번째날, 스물한번째날 비야르 데 마사리페 23Km, 아스트로가 30Km

등록 2016.09.15 15:00수정 2016.09.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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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일찍 출발하기로 한다. 아침 6시 30분 식사를 간단히 하고 출발한다. 순례길 코스가 레온 대성당을 지나는데 어제 미리 둘러 보아 길이 눈에 익는다. 성당에 도착하니 청소차가 성당 광장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다.

좁은 골목을 지나 순례길을 걷는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순례길을 벗어났다. 건물 2층에서 아주머니가 우리를 부르며 길을 가르켜 준다. 손을 흔들며 "그라시아스" 인사하고 다시 걷는다. 순례길 가에는 오래된 유적들이 자주 보인다.


레온 시내를 벗어나는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 시내를 벗어나 초원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를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초원길을 걷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두 길 다 14Km 정도 마을이 없는 길이다. 우린 왼쪽 길로 들어섰다.

초원길은 노란 고들빼기꽃이 핀 아름다운 길이다. 그런데 같은 그림의 길이 끝없이 펼쳐지니 별로 감동이 없다. 2시간 정도 걷다가 배낭을 내려 놓고 초콜릿 등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쉰다. 순례객의 대부분이 오른쪽 길로 갔는지 우리 둘만 걷는다.  언덕을 오르고 평원을 걸으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a  아침 레온 대성당

아침 레온 대성당 ⓒ 이홍로


a  레온 풍경

레온 풍경 ⓒ 이홍로


a  멀리 레온 시내

멀리 레온 시내 ⓒ 이홍로


a  초원 지대를 걷는 순례자

초원 지대를 걷는 순례자 ⓒ 이홍로


a  마사리페 마을의 순례자 그림

마사리페 마을의 순례자 그림 ⓒ 이홍로


a  마사리페 마을의 성당과 백로의 집

마사리페 마을의 성당과 백로의 집 ⓒ 이홍로


a  마사리페 마을의 성당

마사리페 마을의 성당 ⓒ 이홍로


a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 맞은편의 알베르게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 맞은편의 알베르게 ⓒ 이홍로


a  마사리페 마을 풍경

마사리페 마을 풍경 ⓒ 이홍로


오후 1시에 비야르 데 마사리페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 입구 오른쪽에 잔디밭이 아름다운 알베르게가 보인다. 이 곳을 지나 마을 안에 있는 바르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더 걸을 것인지 이 마을에서 묵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마을을 지나 13Km 를 걸어야 다음 마을 오르비고가 있다. 친구와 나는 이 마을에서 쉬기로 하고 마당에 잔디밭이 있는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샤워를 하고 빨래까지 널은 후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앉으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일기도 쓰고 음악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걷는 속도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고, 갈림길에서 나뉘기도 할 것이다.


시에스타 시간이 끝나는 오후 5시에 마을 산책을 나선다. 마트에서 내일 먹을 간식도 사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 본다. 오래된 성당의 종탑에는 백로들이 집을 짓고 산다. 지금까지 걸으며 보니 성당의 종탑에는 대부분 백로들의 집이 있었다.

저녁은 알베르게 식당에서 다 같이 먹는다. 풍성하고 맛있는 요리이다. 우리 앞에는 에스파냐 할머니 여섯 분이 식사를 한다. 이 분들은 카미노 전 구간을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차림으로 몇 구간을 걷는다고 한다. 말은 서로 통하지 않아도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만 보아도 즐겁다. 친구는 저녁 식사 후 어제 밤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스물한번째날, 최고의 아침 식사를 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배낭을 정리하고 밖에 나오니 동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다. 카메라를 메고 잠시 마을을 산책한다. 6시 30분부터 아침식사 시간이다. 식당에 내려 가니 구운 빵, 도너츠, 시리얼, 우유, 커피 등 진수 성찬이다. 요즘 이렇게 맛있는 아침을 먹어 보지 못하였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출발한다. 오늘은 아스트로가까지 30Km를 걸을 계획이다.

작은 마을은 어제 다 돌아 보았기 때문에 눈에 익는다. 같은 풍경이라도 어제 저녁의 풍경과 아침 풍경은 다르다. 마을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 길을 걷는다. 한참을 걷다가 도로를 벗어나 밀밭을 건너 비포장도로를 걷는다. 배낭을 내려 놓고 잠시 쉬는데 길 옆에는 아침 이슬을 먹금은 쇠뜨기 풀이 아름답다. 뒤에 따라 오던 커플 순례자도 우리 곁에 쉬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a  마사리페 마을에서의 여명

마사리페 마을에서의 여명 ⓒ 이홍로


a  마사리페 마을의 성당

마사리페 마을의 성당 ⓒ 이홍로


a  순례길가의 쇠뜨기가 이슬을 머금고 있다.

순례길가의 쇠뜨기가 이슬을 머금고 있다. ⓒ 이홍로


a  순례길에서 만난 탑

순례길에서 만난 탑 ⓒ 이홍로


a  오르비고 다리

오르비고 다리 ⓒ 이홍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소설의 영감을 받았다는 오르비고 다리

순례길 옆에는 빨간 양귀비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수로 위의 낡은 다리 위에서 에스파냐 여인이 혼자 쉬고 있다. 우리도 쉬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서로 마음을 열고 대하기 때문에 대화도 자연스럽고 사진을 같이 찍는 것도 꺼려하지 않는다. 

수로를 지나 한 시간 정도 걸어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 오브리고 강을 건너는 다리가 오르비고 다리인데 아주 유명한 다리이다. 오르비고 다리는 스페인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중세 다리의 하나로 13세기 로마 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다리는 로마 시대 다리 위에 증축되었다고 한다.

이 다리를 구성하는 수십 개의 아치들을 통해 다리를 건너는데, 사람들이 '명예의 통로'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1434년에 마상창술 시합이 이곳에서 개최되었는데 레온 출신의 귀족 돈 수에로 데 키뇨네스는 아름다운 귀부인에게 모욕을 당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후 이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기사들과 맞서 싸워 이 다리를 지켜내고, 회복된 자신의 명예에 대해 감사하며 이를 전하러 산티아고에 갔는데 이를 기념하여 이 다리를 '명예의 통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다리는 기사도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세르반테스에게 <돈키호테>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다리 아래에는 지금도 마상경기를 한다. 축제가 있는지 다리 위와 마을에는 온통 깃발이 걸려 있다.

우린 마을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바로 옆에서는 대형 트럭에 장비를 싣고 와서 축제 준비를 한다. 한참을 쉬고 일어나 다시 길을 걷는다. 오르비고 마을을 벗어나니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지만 거리가 조금 짧다. 오른쪽은 거리는 좀 길지만 자연스러운 길 같다. 친구가 짧은 길로 가자고 한다. 

a  오르비고 마을

오르비고 마을 ⓒ 이홍로


a  오르비고 마을 풍경

오르비고 마을 풍경 ⓒ 이홍로


a  하얀꽃밭

하얀꽃밭 ⓒ 이홍로


a  끝없는 초원길

끝없는 초원길 ⓒ 이홍로


a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 이홍로


a  아스트로가 시내 입구

아스트로가 시내 입구 ⓒ 이홍로


a  아스트로가 시내 풍경

아스트로가 시내 풍경 ⓒ 이홍로


a  아스트로가 시내 풍경

아스트로가 시내 풍경 ⓒ 이홍로


a  아스트로가 시내 풍경

아스트로가 시내 풍경 ⓒ 이홍로


a  알베르게 앞의 순례자 동상

알베르게 앞의 순례자 동상 ⓒ 이홍로


전망 좋은 알베르게에서 쉬다

뜨거운 태양 아래 쉴 곳도 없는 길을 걷는다.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풍경도 평범하여 카메라를 꺼낼 필요도 없다. 오른쪽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그 길을 선택하였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까? 그 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거야.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이 생각 났다.

작은 숲을 돌아 서니 왼쪽에 하얀 꽃이 핀 넓은 밭이 있다. 언덕을 오르다가 쉬고 있는데 에스파냐 노인들 셋이서 우리를 앞서 간다. 언덕을 올라 도로를 건너 넓은 초원 위를 걷는다. 오르비고에서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언덕까지 20Km를 이렇게 걸었다. 이 십자가 언덕에서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이 만난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니 오늘의 목적지 아스트로가 시내가 보인다. 언덕을 내려 가니 산 후스토 데 라 베가스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니 기운이 난다. 마을을 지나니 바로 강이 흐른다. 투에르토 강이다. 다리를 건너고 철길을 넘어 아스트로가에 도착하였다. 

힘겹게 언덕을 올라서니 세르비아스 데 마리아 알베르게가 나온다. 친구와 나는 이 알베르게에 묵기로 하였다. 접수대 옆에 앉아 있던 한국인 아저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한다. 침대가 164개나 있는 큰 알베르게이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4인이 이용하는 방인데 우리가 걸어온 길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방이다.

샤워를 하고 시내에 나가 내일 먹을 간식과 저녁 거리를 준비하였다. 오늘 너무 힘들었다며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하고 쌀과 양파, 마늘, 삼겹살, 상추를 구입하였다. 식당은 사람들이 많아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식당에서 한국 청년들을 만났다. 한 청년은 하루에 40Km를 걸었다고 한다. 젊음이 부럽다. 우린 30Km 걷고 힘들어 하는데. 여자 청년은 다리가 너무 아파 한 구간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시내 산책을 나섰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아스트로가는 꽤 큰 도시이고 아름다운 성당도 몇 군데 있다. 산책을 마치고 침대에서 일기를 쓴다. 카톡을 열어 보니 친구 부친 별세 소식이 있다. 카톡으로 조의를 표하고, 다른 친구에게 부의금 전달을 부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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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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