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빈소 찾은 김제동방송인 김제동이 지난달 26일 새벽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가 마련된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강제부검을 막기 위해 밤샘농성중인 시민,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우성
철 지난 과거 방송 내용을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도 우습지만 김제동씨의 발언이 군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백 의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백 의원의 주장은 '이단공단(以短攻短)'(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백 의원은 김제동씨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기 이전에 군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온갖 추문에 대한 입장부터 밝혀야 옳다. 그는 국방부 차관 출신으로 방산비리와 군 지휘관의 성추문, 군 폭력 등의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명예를 끔찍하게도 중요시 여긴다면서도, 정작 우리 군의 방산비리, 군납비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제동씨가 언급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통영함·소요함 납품 비리, 불량방탄복 납품 비리,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개발 비리, 해군 해상헬기 '와일드캣' 도입 비리,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비리, 육군 대전차 무기 '현궁' 납품 비리, 잠수함 인수평가 관련 비리, 고속함·호위함 사업 비리, 군 피류복 납품 비리, 군 침대 교체사업 의혹 등 방산비리와 군납비리 의혹은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이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군 내의 구타사고와 군 지휘관 및 간부들의 낯뜨거운 성추문은 또 어떤가.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군의 명예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실질적인 주범이라 할 것이다. 백 의원은 오랫동안 국방과 안보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해 왔고, 지난 2013년 3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국방부 차관을 지내왔던 인물이다. 군 내부의 비리 의혹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백 의원이 과거 방송 내용을 문제 삼아 김제동씨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시키겠다니 시쳇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백 의원이 뜬금없이 김제동씨를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국정감사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야당의 특검 요구와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등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넘어야 할 지뢰밭이 널려있는 상황에서 국면을 흔들겠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동안 정부 정책에 소신 발언을 해왔던 김제동씨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김제동씨는 집권여당과 보수세력에 의해 '종북좌파' 연예인으로 찍혀있는 대표적 소셜테이너다.
연예인이 웃자고 한 철 지난 이야기에 대한민국 군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며 거품 물고 달려드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시민의 반응은 한겨울 시베리아처럼 냉담하다. 북한 핵 문제와 사드 배치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급박한 안보 위기는 물론이고 방산비리와 군납비리, 군 지휘관의 성추문과 전근대적인 병영문화가 만들어낸 군의 총제적 문제를 면밀히 되짚어 봐야 할 국방위 국정감사에 웃지 못할 촌극이 연출되고 있는 탓이다.
반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될지도 모르는 김제동씨를 향해선 시민들의 격려와 지지, 성원이 잇따르고 있다. 정치권력의 외압에도 정부 여당의 잘못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용기와 소신,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 왔던 따뜻한 인성에 대한 경외의 표현일 것이다.
타협과 굴종, 자기합리화가 만연한 시대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려는 이 작은 사내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이 있다. 건강한 사회공동체를 갈망하는 진지한 고민이 오늘의 그를 만들어 낸 것이리라. 그와 같은 고민을 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공감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보편적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바뀌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