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 건설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신갈나무. 이런 나무들이 주변에 빽빽했을 것이다.
정수근
생태자연도 1등급지에 임도를 닦은 대구 달성군바로 대구 달성군이 비슬산에 닦고 있는 임도(임업경영과 산림을 보호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한 구조와 규격을 갖추고 산림내 또는 산림에 연결하여 시설하는 차도) 공사 현장에서 본 나무들의 종류다. 녹지자연도 8~9등급에 해당할 정도로 다양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즐비한 산이었다. 이런 비슬산에 대구 달성군은 1200그루의 이상의 나무를 베어내고 계곡을 메우면서 임도를 건설하고 있다.
이에 대구환경운동연합이 달성군의 임도 공사에 문제 제기(관련 기사 :
대구의 보물 비슬산, 이렇게 망가뜨려야 합니까)를 했고, 지난 주말(15~16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명평화아시아의 회원 20여 명이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김종원 교수와 함께 가창 정대에서 화원 본리리로 넘어가는 임도 공사 현장으로 비슬산 생태기행을 나섰다.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가 당단풍나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정수근
달성군이 내세우는 임도 개설의 목적은 (1) 산화방지 및 산림작업의 능률화 (2) 임업경영 개선을 위한 기반조성 (3) 임업소득의 증대 (4) 농림업의 균형발전과 균형적인 지역개발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등이다.
그러나 임도는 산화방지 효과보다는 산화확대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열기(바람)의 통로로 기여해 산불의 피해를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임업경영 개선과 임업소득 증대라지만 이것도 현재의 임업이 아니라 "장래에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라는 게 달성군의 주장이다.
즉 현재 당장 시급한 필요에 의한 것도 아닌데 임도를 건설해서 생태적으로 가치 있는 숲을 헤친 꼴이 되는 셈이다. 위에 열거된 무수한 나무들이 베어졌을 것이고, 계곡 또한 망가져 흐른다.
▲계곡을 따라 임도를 닦고 있고, 그 때문에 계곡의 형태가 교란당하면서 급류가 흐르고 있다.
정수근
"이곳은 반딧불이가 충분히 살았을 계곡입니다. 이렇게 계곡을 건드려 놓으면 더 이상 반딧불이가 살 수가 없습니다." 김종원 교수의 설명이다. 반딧불이가 살 정도의 건강한 계곡 또한 임도 건설로 망가져 급류가 흐르는 위태롭고 위험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비슬산 고유종 베어내고, 일본 특산종 나무를...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나타난다. 숲을 뭉개고 임도를 닦은 바로 그 가장자리로 다시 나무를 심어둔 것. 이것이 이른바 달성군 관계자들이 이야기하는 전국 제1의 임도의 모습이다(달성군 관계자들이 대구환경연합 사무실로 찾아와서 임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자리에서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생태적 임도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나무의 모습을 본 김종원 교수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뒤이어 김종원 교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새로 심어둔 이 관목은 황매화이고, 저 나무는 편백나무로 둘다 일본특산종들입니다. 비슬산 고유종 베어내고 일본 특산종 나무를 심다니, 도대체 누가 이따위 공사를 벌인단 말인가요?"
▲비슬산에 심겨진 일본특산종 편백나무. 김종원 교수 뒤로 편백나무가 보인다.
정수근
▲임도 건설을 위해 수많은 나무를 베어내고 다시 나무를 심어, 생태적 임도를 만들겠다는 달성군.
정수근
결국 오랫동안 비슬산에 자생하던 종을 모두 베어내고 그 자리에 일본특산종 나무들을 심는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이 산의 가치나 특징과는 전혀 상관없이 시행업체의 형편에 맞게 식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애초에 필요도 없는 길을 깊은 산에다 내고, 그러면서 비슬산 고유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그 옆으로 다시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그것이 가장 우수한 임도가 되는 걸까. 달성군은 정녕 그렇게 믿고 있단 말인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나무 한 그루에 몇십만 원은 들 텐데... ""이것은 임도가 아니라 차량 통행을 위한 도로다. 이 나무 한 그루 심는데 몇십만 원은 들 것이다. 수백 그루는 될 것인데 그렇다면 이 돈이 다 얼마인가."
▲임도를 따라 계속해서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이 예산은 또 얼마인가?
정수근
이날 생태기행에 함께한 생명평화아시아의 성상희 변호사의 일갈이다.
"독일의 흑림지대에도 임도가 발달했다. 그러나 그곳은 평지 비슷한 지형이기 때문에 길만 닦으면 된다. 산지를 훼손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해서 환경친화적으로 나무를 생산한다. 태풍도 없다. 그래서 산지의 물패임 현상도 없다. 그리고 그곳은 해양성 온대기후라 숲이 늘 축축하다. 산불이 날 가능성도 없다. 그런데 이런 독일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경제림이 없어 목재 생산도 없다. 산불진화용이라 하지만 임도는 도리어 바람길 역할을 해서 산불을 더 확대시킬 뿐이다."김종원 교수의 설명이다. 그의 설명대로 우리나라는 아직 경제림이 없다. 그래서 임업을 위한다는 명분을 얻기 힘이 든다. 오죽하면 달성군이 장래에 있을 임산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달까.
▲수직으로 깍여서 위태로운 임도와 시멘트 포장길. 이것을 생태적 임도가 부르는가?
정수근
▲시멘트길로 변한 임도. 이곳에 무슨 생태적 고려가 있는가?
정수근
대구시민의 산 비슬산, 함부로 손대지 마라"비슬산은 대구의 남쪽으로 열려있는 산이다. 남향집에서 늘 보이는 산. 그래서 대구 사람들에겐 중요한 산이다."김종원 교수의 설명대로 대구사람들이 집에서 내다보면 보이는 비슬산. 어쩌면 대구사람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산인 비슬산이 합당한 이유도 없는 임도 건설 때문에 그 숲이 망가져가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임도란 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긴 우산 크기만한 넓이의 신갈나무가 베어졌다. 녹지자연도 9등급의 숲이 모조리 베어진 것이다.
정수근
물론 임도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임도인지, 임도를 닦아도 좋을 숲인지 먼저 그 타당성 조사부터 신중해야 한다. 쪼개기사업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피할 일이 아니라, 정당하게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서 그 임도사업으로 인해서 환경에 지나친 영향이 없는지를 명확히 한 후 공사를 해도 늦지 않다. 자연은 한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군은 지금 절반 정도 놓인 임도와 연결해서 나머지 반대편 본리리로 넘어가는 임도공사를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원래 계획된 노선이 아닌 대안노선을 잡아 임도를 이으려 하고 있다.
달성군은 쪼개기 사업에 대한 해명에서 '예산이 없어서 임도 구간을 나누어서 공사를 한다'고 했는데, 쪼개기 사업을 벌일 정도로 예산이 없다면서 굳이 새 예산을 뽑아서 별 필요도 없는 임도공사를 다시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뭔가. 이 상황을 어느 시민이 이해할 수 있을까.
▲오른쪽 위치도에서 푸른색의 구간은 공사가 진행된 구간이고, 붉은색 구간은 임도건설에서 살아남은 계곡이다. 달성군은 전 구간이 임도구간이지만, 두 구간으로 나눈 이른바 쪼개기사업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피해갔다.
정수근
이쯤에서 중단하는 것이 옳다. 애초에 잘못 계획된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행정의 몽니일 뿐 어디에도 도움이 안 된다. 이번 임도공사를 교훈 삼아 부디 함부로 나무를 베고 산을 깎고 시멘트를 바르는, 철지난 토건공사식 임도건설이 종식되길 희망해본다.
한편, 이번 임도공사로 훼손될 위기에 처했던 나머지 반대편 계곡은 환경단체의 문제제기에 의해서 온전히 살아남았다. 무책임한 임도 건설에 문제제기한 이들의 작은 승리다. 일행은 살아남은 계곡으로 하산하면서 비슬산의 깊은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
[바로잡습니다] |
(사)한국조경사회 대구경북시도회는 "비슬산 임도사업은 달성군에서 산림사업으로 발주, 산림관련 전문가가 설계하여 산림조합에서 시행한 사업으로 조경업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라고 밝혀왔습니다.
달성군 산림조합도 "별도로 조경업체에서 나무를 구입한 것은 아니며, 산림조합에서 식재한 게 맞다"라고 확인했습니다.
이에 따라 기사에서 조경업체 관련성을 지적한 대목을 삭제합니다. (사)한국조경사회 대구경북시도회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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