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은 부검에 반대하나?"
경찰은 모두 아는 걸 왜 또 물어봤나

대법원은 이미 답 내렸는데... 백남기 농민 부검하려는 경찰의 명분 쌓기

등록 2016.10.23 19:21수정 2016.10.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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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은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아가 '협의를 진행했고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들었다'라는 명분을 쌓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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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유가족측과 이야기 나누는 종로서장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이 23일 오전 경찰 물대포에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 강제부검 영잡집행 협의를 위해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유가족 대리인측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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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의사 밝히는 종로서장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시신 부검영장을 집행하러 온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이 23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철수의사를 밝히고 있다. ⓒ 남소연


경찰은 시민들에게 막혔다. 23일 오전 10시, 고 백남기 농민의 부검 영장 강제집행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들이닥친 경찰은 3시간 20분 만에 현장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이날 경찰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여럿 남겼다. 장례식장 진입이 어려워진 경찰은 백남기 투쟁본부 측과 협의를 하기로 했는데, 이때부터 "유족을 꼭 만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협의 장소로 건물 내부를 주장하다가, "유족이 나온다면" 건물 밖 천막도 상관없다고 할 정도였다.

앞서 유족측은 "경찰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꾸준히 말해왔다. 유족측은 그동안 경찰의 6차례 협의 요청에 모두 같은 답을 내놨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백도라지씨는 "한 번 생각해보라.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경찰을 직접 만나고 싶겠나"라고 말했다.

경찰, 유족에게 '공식적인' 반대 입장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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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백남기투쟁본부와 협의 경찰이 고 백남기씨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압수수색검증영장) 집행을 시도한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왼쪽 두번째)과 백남기투쟁본부 관계자들이 협의를 하고 있다. 경찰은 유족의 부검 반대 의사를 존중해 이날 영장을 집행하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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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23일 오전 10시 고 백남기 농민의 부검 영장 집행을 진행하기로 한 가운데,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장례식장 지하에서 몸에 쇠사슬을 두른 채 진입로를 지키고 있다. ⓒ 소중한


결국 유족들이 참석하지 않은 채 이날 투쟁본부측과 경찰은 장례식장 건물 외부 천막에서 협의했다. 하지만 강제로 영장을 집행하려는 경찰과 부검을 반대하는 투쟁본부 사이에 접점이 생길 리 만무했다.

천막 협의를 마친 후 경찰은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불러 모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경찰은 또 한 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겼다.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은 "오늘 유족측에서 정확하게 (부검에) 반대하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하면 오늘은 강제집행을 안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저 의아했다. "유족측이 부검에 반대한다"는 걸 경찰만 몰랐던 걸까. 이날 왜 경찰은 유족을 만나야 했고, 유족으로부터 무려 '공식적인' 부검 반대 입장 표명을 들어야 했을까.


법원은 지난달 28일 검경의 부검 영장 청구에 '조건부 영장 발부'라는 답을 내렸다. 유족들의 합의를 거쳐야 부검을 할 수 있다는 제한 사항을 담은 내용이었다. 이 영장의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지난 국정감사를 통해 어느 정도 답이 나왔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조건부 영장의) 제한사항은 의무조항이니 지켜져야 한다"라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에,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입장"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대법원이 "경찰이 유족과의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영장 집행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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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장례식장 나서는 종로서장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의 시신 부검영장을 집행하러 온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이 23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철수의사를 밝힌뒤 자리를 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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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씨 부검 영장 강제 집행 위해 23일 오전 10시께 서울대병원 도착한 종로 경찰서 관계자들과 백남기 투쟁본부측이 대치하고 있다. ⓒ 소중한


대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집행기관인 경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날 경찰이 그렇게 유족들을 만나려고 한 것도, 유족들에게 '공식적인' 부검 반대 뜻을 들으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은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아가 '협의를 진행했고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들었다'라는 명분을 쌓아가는 중이다. 아마 경찰이 오늘처럼 그냥 철수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들은 오늘 쌓은 명분을 강제집행의 구실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경찰의 협의 요청에,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는 "유족과 협의했다는 명분을 쌓는 꼼수인 거 안다. 절대 만나지 않겠다. 더 이상 가족들을 괴롭히지 말고 쓸데없는 시도를 중단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검 영장의 집행효력은 오는 25일까지 이어진다. 이틀 남았다.
#백남기 #종로서 #홍완선 #부검 #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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