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의 명성황후 생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갑작스레 민중의 분노에 맞닥뜨렸으니,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대국민 사과'라도 해서 위기를 모면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시민군의 힘으로 9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흥선대원군 이하응. 며느리와 민씨 가문이 자기 아들 고종을 도와 자신을 권좌에서 밀어낸 일로 인해 가슴 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그는 이참에 며느리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달아난 뒤라 죽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날 대원군은 며느리를 죽였다. 상징적으로 그렇게 했다. 며느리의 국상을 선포해버린 것이다. 왕비가 죽은 것 같기는 하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왕비의 귀환을 차단하고자 아예 사망선고를 했다.
사망선고가 이루어진 뒤였으니, 누구든 왕비를 은밀하게 죽인다 해도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런 긴박함 속에서 왕비는 충주 은신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공포심은 극에 달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때였다. 은신처에 불쑥 들어온 불청객이 있었다. 낯선 무녀였다. 그로부터 12년간 왕비의 단짝이 될 무녀 진령군(眞靈君)이었다. 그 무녀가 그렇게 깜짝 등장을 했다. 작년부터 금년 초까지 KBS에서 방영된 <장사의 신-객주 2015>에도 진령군(김민정 분)이 등장했다. 왜 진령군으로 불렸는지는 뒤에서 밝히도록 하겠다.
환궁 날짜 맞춘 진령군, 왕비의 신임 얻다
진령군에 관한 이야기는 구한말 역사학자인 황현의 <매천야록>에 자세히 나온다. 구한말의 정치비화를 다룬 이 책에 따르면, 관우를 모신다는 이 무녀는 그 누구의 소개도 없이 은신처에 불쑥 들어왔다. 그러더니 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중전께서 이곳에 계신다고 신령님께서 계시해주셨습니다"였다.
시민군을 피해 충주까지 도망한 왕비의 입장에서는 은신처 주변의 주민들도 무서웠을 것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추진한 시장개방(이른바 개화)으로 인해 백성들이 경제적 위협을 느꼈고 그런 분위기가 하급 군인들에 대한 부당대우 문제와 맞물려 임오군란이란 민중 봉기로 이어졌다. 때문에 왕비는 일반 백성들이 한없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웬 무녀가 은신처에 들이닥쳤으니, 왕비는 순간적으로 공포심에 떨었을 것이다. 그런 직후에 무녀가 신령님을 운운했으니, 공포심은 의아함과 혼란으로 변했을 터. 공포심이 걷히자 왕비는 자신이 환궁할 수 있겠는지, 환궁한다면 언제가 될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무녀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8월 초하루에 환궁하실 것이니, 준비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해 음력 8월 초하루는 양력 9월 12일이었다. 9월 12일이면 환궁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날은 7월 24일 이후의 어느 날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환궁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권력을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된 왕비가 불과 50일 이내에 환궁하여 권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꽤 과감하고 자신만만하게 예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