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0일 오후(현지시간) 페루 리마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한·페루 비즈니스 포럼에 앞서 정호성 비서관의 보고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세월호 특조위는 단 한 번도 '대통령의 7시간'이라는 표현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수반으로서의 품격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정부 대응의 적정성 조사는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 국가안보실 간 참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지시와 보고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이면 될 일이었다.
이미 청와대는 법원에 4·16 참사 당시의 서면보고 내용을 제출한 바 있는데 이를 공개하면 세간의 의혹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세월호 특조위 3차 청문회에서 나온 주요 요지다.
그러나 이렇게 존재하는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증인과 참고인을 통한 조사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실의 비서관(10월 30일에 경질됨)이다.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아래 국정조사 특위)는 2014년 7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에서 제1부속실의 정호성 비서관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데 끝내 실패했다. 여당이 김기춘 비서실장까지는 합의해줘도 정호성 비서관만큼은 합의 불가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이었던 필자의 시각에서는 김기춘 실장은 몰라도 정호성 비서관은 '세월호의 7시간'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증인이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인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어떤 '업무'를 하고 있었는지 알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정부 대응 적정성을 조사하는 데 정호성 비서관을 조사선상에 올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또한 이번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과 관련해서도 정호성 비서관의 이름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는 선(線)과 비선(秘線)의 '연결고리'라고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 통치의 가장 비밀스럽고 은밀한 부분을 알 수 있는 가장 최측근 인사다.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진실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비정상화의 정상화, 첫 단추는 '세월호'이번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이 가져올 파문이 워낙 전방위적이라 어디서부터 메스를 가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일단은 가장 시급한 국가지도체계의 개편과 안정이라는 과제를 해결한 이후,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세월호 특검 의결'로 무너진 국가 신뢰를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30일 오후 8시 현재 포털검색어 상위에는 '세월호 7시간'이 떠 있다.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7시간뿐만이 아니다. 당초 늦어도 10월말에 완료된다던 세월호 인양은 연내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으며, 중요한 증거인 세월호 선체마저도 절단되어 인양될 형편에 처해있다. '기술적 차원'이라는 인양추진단의 뜻에 따라 선체가 절단되어 인양된다면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은 영구 미제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또한 세월호 특조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배제하는 대신 특검도입을 약속했던 애초의 여야합의가 여당에 의해 단칼에 잘려버려, 특조위가 국회에 제출한 '특별검사 수사를 위한 국회 의결 요청 사유서'는 현재 사(死)문서화된 실정이다. 세월호 특검 실시는 지극히 정상화해야 하는 사안들로서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이 사안들이 부디 최순실씨에게도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비참한 바람을 가져본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관으로서,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스스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하루하루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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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前 광주광역시 메시지기획 팀장
前 국회 정무위원장실 선임비서관
前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선체처리 팀장
前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1과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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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오른 '세월호 7시간', 국가 회복의 첫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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