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헤 대통령이 지난 4일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청와대
지난 2000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정부와 기업, 개인 등이 발표한 89건의 사과문을 분석한 김영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부가 사과문을 발표 할 때 '초월전략'을 가장 많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초월전략은 사과를 할 때 '국민을 위해 일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즉, 국민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부각함으로써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다. 대통령 등 권위자의 이 같은 전략은 체면의식과 관련이 깊다. 체면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적 특징 중 하나로 권위자가 남에게 사과를 회피하기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다. 박 대통령이 발표한 두 차례의 담화문(사과문)에도 이 같은 전략이 확인됐다. '초월전략'이 담긴 박 대통령의 담화문을 살펴봤다.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2016-10-25, 1차 담화문)""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2016-11-04, 2차 담화문)"박 대통령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자신과 정부의 체면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담화내용은 갈등 해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과문 이후 불거진 싸늘한 여론과 야당의 비판적 목소리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희생양 만들기', '입지 강화'로 돌파구 마련하기도 위기가 발생했을 때 책임자는 종종 '개인적 일탈'로 규정한다. 책임을 본인이 지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전략으로 일종의 '희생양 만들기'다. 위기를 개인화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다음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특정 개인의 사건으로 치부했고 본인은 그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먼저 이번 최순실 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2016-11-04, 1차 담화문)"'입지 강화'전략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情)'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당사자가 이전의 선행을 드러냄으로써 선처를 호소하는 방법이다. 또 본질과 다른 사건을 말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지도 포함된다. 하지만 자칫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혹은 책임을 축소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으며 사과의 진실성을 의심 받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대표적이다.
"저로써는 조금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2016-10-25, 1차 담화문)""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외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2016-11-04, 2차 담화문)""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과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2016-11-04, 2차 담화문)"담화문에 담겨진 박 대통령의 사과전략은 크게 '초월전략'과 '희생양 만들기', '입지강화'로 나타났다. 대부분 체면, 정에 의존한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사과전략에 대해 "인정(人情)에 약한 한국인의 문화적인 특징이 반영됐다"며 "동정표현, 애매모호함 등으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러한 사과방식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발견된다. "예전에는 잘 했잖아~ 이번만 봐줘" 라거나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야 미안해"는 등의 표현이다. 친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지만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그렇지 않다.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진 사과는 오히려 사태를 더욱 키울 뿐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박 대통령은 사건의 책임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과문에 진실성과 순수성이 의심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문에 국민들은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있으며,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총 책임자로서 합당한 처벌을 받길 원한다.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 한다. 진솔한 사과와 명확한 대책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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