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정권 희롱하던 신돈, 시조로 풍자한 젊은이

[서평]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등록 2016.11.08 09:17수정 2016.11.08 09:17
1
원고료로 응원
시대도 다르고 수단과 방법도 다릅니다. 하지만 이루고자 목적하는 바는 같습니다. 요즘 세상, SNS를 통해 전해지는 패러디물들은 혀끝을 톡 쏘는 탄산수 같은 풍자입니다. 들불처럼 훅훅 번지고 있는 촛불은 속마음까지 훤히 드러낸 국민적 저항입니다.

그 옛날, 600여 년 전 고려 말 공민왕 때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려 말 공민왕(1330∼1374) 시절, 신돈이라고 하는 요사스러운 승려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일개 승려인 신돈이 고려 말 정권을 좌지우지했습니다. 왕과 신하들이 모일 때, 신돈은 공민왕과 같은 위치에 앉아 신하들로부터 하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왕도 가지고 놀 정도였습니다. 불의를 참지 못한 사람들이 신돈을 죽이려 했지만 미리 낌새를 챈 공민왕이 신돈을 피신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거했습니다. 신돈을 제거하려는 사람들이 역으로 제거 당하자 신돈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신하와 만백성이 죽어지내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시조로 읊던 풍자는 숭늉처럼 깊고 은근한 것이었습니다. 촛불처럼 당장 환하게 드러나는 저항이 아니라 잿불처럼 은근히 열기를 더해가는 꾸준한 저항이었습니다.

중얼중얼 읊어 새기는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a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 글쓴이 임형선 / 펴낸곳 채륜 / 2016년 10월 15일 / 값 18,000원 ⓒ 채륜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글쓴이 임형선, 펴낸곳 채륜)에서는 중얼중얼 읊어도 좋고, 달달 외워가며 새겨도 좋을 고시조, 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독서를 통해 접했던 이런 고시조와 저런 고시조에 배어있는 역사적 배경과 문학적 요소까지를 두루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있었습니다. 정치도 있었고 자연과 풍경을 즐기는 풍류도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으니 사랑을 읊은 시조가 있었고, 정치를 풍자하는 시조, 풍류를 읊은 한량 같은 시조도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황진이 하면 떠오르는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정몽주 하면 떠오르는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사육신인 성삼문이 읊은 '이 몸이 주거가셔 무엇이 될꼬 하니' 등 30여 편의 고시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려 말 정권을 뒤흔든 신돈


구름이 무심 無心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이셔 임의任意 단니며셔
구태야 광명光明한 날빗츨 따라가며 덥나니 - 153쪽.

공민왕 때, 25살이던 이존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돈의 패행을 보다 못한 이존오는 상소를 올리다 결국 벼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위 시조는 이존오가 벼슬에서 물러나며 잘못된 현실을 한탄하며 읊은 시조입니다. 이 시조를 풀어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먹구름이 아무 생각 없이 떠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 말이다.
②하늘 한가운데 떠 있으면서, 제멋대로(임의로) 흘러 다니면서
③일부러 밝은 햇빛(광명한 날빛)을 따라다니며, 그 밝은 빛을 덮고 가려 어둡게 하는구나. 이 세상을 어둡게 하는구나.

여기서 먹구름은 간신배 신돈을 가리키고, 밝은 햇빛은 평화로운 고려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사스럽기만 하던 신돈도 결국에는 역모죄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600여 년 전 읊은 시조이지만 신돈을 가리키던 먹구름을 최순실로, 고려를 가리키던 햇살을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햇살쯤으로 해석하면 시공을 초월해 현실을 풍자하는 닮은 꼴 시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중얼중얼 읊은 고시조는 세상만사를 에두르는 문학적 수사이고, 고시조 속에 담겨 있는 뜻은 시공을 초월하는 현실적 풍자이고 수사니 사랑도 정치도, 자연과 풍경 또한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씨줄과 날줄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 글쓴이 임형선 / 펴낸곳 채륜 / 2016년 10월 15일 / 값 18,000원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임형선 지음,
채륜서, 2016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임형선 #채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AD

AD

AD

인기기사

  1. 1 "과제 개떡같이 내지 마라" "빵점"... 모욕당한 교사들
  2. 2 한국 언론의 타락 보여주는 세 가지 사건
  3. 3 한국 상황 떠오르는 장면들... 이 영화가 그저 허구일까
  4. 4 'MBC 1위, 조선 꼴찌'... 세계적 보고서, 한글로 볼 수 없는 이유
  5. 5 "왜 답변을 안 해요""권익위 폐업?"...'김건희 무혐의' 후폭풍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