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분다. 김장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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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 년 사이에 주위 친구들뿐만 아니라 이웃의 연세가 있는 어른들도 몇십 년 동안 해온 김치를 사다 먹거나 이제는 절임 배추를 쓰겠다고 하는 추세다. 김치를 먹는 양이 줄기도 했고, 배추를 절이는 힘든 과정들에서 나오는 몸살, 스트레스 같은 것들로부터 벗어나 편리함을 택한다고 했다. 물론 절임 배추 쪽이 돈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더 이상 일련의 과정에서 오는 것들을 돈으로 환산해 보면 오히려 더 낫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남편한테 슬쩍 물어보며 생각을 떠보기도 했다. 김장은 한 50포기는 해야 한다. 우리 가족, 시댁 어르신들과도 나눠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정을 못 내리고 고민을 하는데 남편의 타박이 들려온 것이다.
'김장 따위라니, 1년 내내 식탁에서 빠지지 않고 올라 오고, 식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도 김치인데 그렇게 밖에 얘기 못할까.' 마음 같아서는 다 그만두자고 소리치고 싶은 걸 참고 안방에 와서 TV를 틀었다.
같이 생각해봐야 할 것들에도 시선을 돌려야겠다
뉴스가 흘러 나왔다. 요새 뉴스는 그동안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마저 혀를 차고, 개탄에 빠지게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개인 비리가 넘쳐나고, 최고 권력자를 둘러싼 세력가들의 행태도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믿을 수 없는 부패한 소식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다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촛불 하나 켜고 광장으로 나가 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친한 이웃인지, 우리만의 해바라기인지, 결코 모른 채 할 수도 없는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예기치 못한 결과에 대책을 마련하고, 국내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한다며 연일 특종을 내고 있었다.
이런 일들을 두고 '김장', 그것도 절임배추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결정을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의 구석구석 돌아가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사태들을 얘기할 수 있는 아내가 남편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구 어딘가에 밥 한 끼를 먹을 돈이 없어 굶어 죽는 기아 난민의 사진을 보고 눈물 흘린 적이 있다. 연탄 한 장 아쉬워 추운 겨울 꽁꽁 언 손을 비벼가며 이불을 덮고 있는 가난한 쪽방 아이들을 보고 밤 잠을 설친 적도 많다. 비싼 가방을 욕심내다가 독거노인들을 위한 기부 모금함에 돈을 넣은 내 손은 오래전에 멈춰 있다.
김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만든 김치찜이 최고라며 엄지척 하는 아이들, 적당히 신 김치로 김치전를 부치고 남편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준비하는 행복을 놓칠 수 없다. 아마 며칠 뒤 나는 밤새 절인 배추를 뒤적 거릴 것이다. 배추 사이사이 양념을 빠지지 않고 바르려고 애를 쓰겠지. 하지만 같이 생각해야 할 것들, 정치·경제 따위 그리고 수많은 손길과 눈길 따위가 필요한 곳도 찾아봐야 겠다.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만 바람에 흔들거리겠지. 그러고 나면 따뜻한 눈이 춥고 앙상한 것들을 덮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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