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분노, "박근혜는 퇴진하라!"12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노동자, 농민,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민
그렇지만 경찰이 온전히 변했다고 보긴 어렵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일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살수차를 올해도 버젓이 도로 위에 대기시켰다. 경찰이 재단한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언제든 강경 진압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이날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한 대회에 참가해 "오늘 경찰이 전국의 물대포를 서울로 불러들였다는데, 과연 제정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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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북측 광장이 열리고 청와대 남쪽 율곡로와 사직로 집회가 가능하게 된 것도, 법원이 조건 통보 집행 정지 가처분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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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경찰은 이 구간을 '교통 통행 장애'를 들어 일부 제한하려고 했다. 지난해 총궐기 때도 경찰은 "광화문 광장 이북 지역에서의 대규모 집회 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금지 기조를 유지하고 차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뿐 아니라, 경찰은 지난 13일 새벽 4시께 경복궁역 입구 인도 위까지 방패를 밀어붙이며 남은 집회 참석자를 대상으로 진압을 시작했다. "고지한 집회 시간이 지났으니, 강제 해산을 시작하겠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온 뒤 시작된 진압이었다.
앞뒤로 다가오는 경찰력 사이, 도로 위 시민들은 촛불을 하나씩 쥐고 앉아 누군가의 통기타 연주를 듣거나 쉰 목소리로 "박근혜는 퇴진하라"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청와대 방향으로 일부 시위대가 차벽을 두드리거나 구호를 외치고 있기는 했지만, 눈에 띌 만한 과격 상황은 없었다.
당시 대치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해 앰뷸런스가 오고갔다. 경찰과 마찰을 빚은 23명의 시민이 현장에서 연행되기도 했다. 지난해 26명이 연행된 것과 비교하면 연행자 수도 큰 차이가 없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용혜인(26)씨는 "판례에 따르면 신고 되지 않은 집회라도 평화 집회는 해산 명령을 강제할 수 없다고 돼 있다"면서 "시간이 늦었고, 최대한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작과 끝이 같지 않은 경찰의 집회 대응 방식은 '성숙해진 경찰 의식'이라는 평가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집회 관리 지침은 그대로... 달라진 건 없다"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칭을 가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상황이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물대포를 쓰지 않은 게 경찰이 '안 쓰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런 (지침 수정) 작업은 하나도 안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박 의원은 "집회 관리 지침부터 바꿔야 한다, 그런 것이 (시민을 위한다는) 진심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일시적 변화일 뿐, 집회 참가 시민을 위한 경찰의 진정한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한선범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언론국장도 14일 "경찰이 여전히 집회 시민을 길들이려고 시도하는 것은 변함없다"면서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게 아니라, 길들이고 (그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고, 그 본질은 (작년과)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국장은 "다만, 사고가 나면 안 되니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살짝 바뀌었는데도 아주 많이 바뀐 것 같은 그런 상황이 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하루 이틀 보는 사이 아니잖아~ 여기 다 친구잖아.""이제 집에 갑시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어요." 13일 새벽 경찰이 강제 해산을 진행하던 도중, 마이크를 든 한 지휘관이 저항하는 시민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다그침 대신 이웃집 아저씨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의 회유였다. 다시 목소리를 날카롭게 벼린 지휘관은 의경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멀리서 "권력의 개가 되니 좋냐"고 외쳤다. 일사불란한 진압이 시작됐고, 인도 위에 있던 시민들은 차도로, 차도에 있던 시민들은 집회 장소 밖으로 밀려났다. 용씨의 말대로 "지켜보는 시민도, 언론도 딱히 없는" 가운데였다.
진짜 '시민의 편'이 됐다면 경찰 스스로 그은 '여기까지'의 금을 지키려 애쓰는 대신,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공권력이 먼저 실현해야 한다. 좁게는 살인 도구가 될 수 있는 '살수차 지침'을 폐기하는 것부터, 넓게는 최소한의 제한 안에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까지. 일시적인 선량과 달콤한 회유 대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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