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현 정권과 닮았다. 유례없는 기근과 홍경래의 난을 겪으면서 순조의 왕권은 약화된다. 반란이 일어날까 두려운 순조는 국정을 장인 김조순에게 맡긴다. 드라마 속 김조순은 백성들의 곤궁에도 아랑곳 않고 세금으로 안동 김씨 가문의 배를 불린다. 역사에서 세도정치는 순조 때를 시작으로 60년 가까이 지속되며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 모습은 수백 년이 흐른 오늘날 유사하게 재현되는 듯하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측근에게 모든 걸 의탁한 대통령, 수년간 지속된 불황에도 국민의 혈세로 자기 배 불리는데 몰두해 온 비선실세 최순실. 지금 상황이 TV 드라마와 다른 게 있다면 민주주의를 가장한 세도정치였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의 지난 4년은 왕조시대 세도정치와 다름없다. 21세기판 매관매직, 부정부패, 민생고'가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옛날처럼 내놓고 할 순 없으니 은밀하게 권세를 부리며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질렀을 뿐이다. 더구나 밀실권력 휘두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왕조시대보다 더 못하다. 최순실은 어떠한 공직도 없다.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등 어떤 분야 전문가도 아니다. 사이비 교주의 딸이자 한낱 무속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사지샵 대표, 헬스트레이너 등 자격도 안 되는 사람들을 재단 대표이사, 청와대 행정관으로 앉히고 대북정책과 정부 인사에 관여했다. 무속인에게 국정을 맡기고 세금을 바친 국민의 허탈감과 분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역사와 달리 드라마는 효명세자의 세도정치 개혁으로 끝이 난다. 백성과 힘을 합쳐 안동 김씨 일파의 부정부패를 축출하고 백성 중심의 새 시대를 연다. 드라마와 같은 효명세자의 개혁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현 정권은 세도정치의 명맥을 끊지 못한 당시의 역사를 되풀이할 것 같다. 연일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국선언과 시위에도 변화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최순실 늑장 소환, 청와대 압수수색 거부, 일방통행 개각은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마지막 바람마저 무너뜨린다.
드라마에서 권력을 경계하고 백성들 눈높이에서 민생을 살핀 효명세자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됐다. 구르미 백성을, 달빛은 군주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은 '구르미 버린 달빛'이다. 바닥으로 추락한 지지율. 부정부패를 인정하지도 변하려고도 않는 모습에 국민은 일말의 믿음마저 놓았다. 국민은 대통령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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