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아 교수(주)스트레스 & 여가 부대표이자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홍성아 교수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건
누구보다도 소방관을 사랑한다는 홍성아 교수. 그녀가 움직이면 주변은 금세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다. 굳었던 소방관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스며들고 지친 마음은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일반인들이 평생 한번 목격할만한 사건·사고에 매일 노출되는 소방관은 여러 가지로 만성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대표적이며, 불면증, 식사 거르기, 교대근무로 인한 불규칙적인 생활패턴과 가족관계의 문제도 생겨난다.
처음 소방관이 되면 선배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현장에서는 절대 웃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아파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농담하거나 웃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면 소방관의 삶도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시민들이 기대하는 '영웅'이나 '슈퍼맨'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더 강해져야 한다고 되뇌며 그냥 참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하지만 소방관도 사람이다. 인내를 넘어서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소방관도 생긴다. 해마다 순직하는 소방관 숫자보다 자살을 선택하는 소방관의 숫자가 많다는 통계가 이를 대변해 준다.
소방관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예방하는 일에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홍성아 교수다. 지난 11월 28일, 그녀를 만나 소방관 힐링 프로젝트를 포함한 미래계획도 들어보았다.
- 처음 소방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내가 먼저 소방에 노크했다. 평소 소방관이 여러 재난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재능을 통해 그들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 소방관을 위한 부드럽고 재미있는 '스트레스 관리프로그램'을 소방방재청에 제안하게 됐다. 다행히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소방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처음 만난 분들이 바로 2008년 발생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대원들이다."
- 소방이라는 분야가 생소해서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평소 소방관을 존경했지만 업무적으로 자세히 모르는 부분들이 많아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서재에서 새벽4시까지 소방에 대해 공부하는 날도 많았다. 현장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안산소방서 백석소방안전센터에서 1박 2일 소방차 동승체험을 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 소방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하던데."소방을 알아가면서 두 가지 이유로 운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자고 있는 시간에도 출동하는 소방관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그들의 노고를 잘 몰랐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 젊은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소방관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누나 같은 존재'로 불린다. 기분이 어떤가?"누나라고 불러주니 젊어진 느낌이 들어서 너무 감사하다. (웃음) 사실 소방관은 나에게 힐링 같은 존재다. 소방을 만나면서부터 내 까칠한 성격이 마치 사포에 잘 연마된 것처럼 다듬어져서 오히려 소방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소방관이 매일같이 받는 스트레스가 어떤 문제점들을 유발한다고 보는가? "거시적으로는 소방관의 삶의 질을 무너뜨린다고 본다.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 가정, 사회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넘어갈 수 있는 소지가 높다. 특히 교대근무로 인한 불규칙한 스케줄과 형편없는 식습관은 암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원인이 된다.
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부부간의 갈등과 아동학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불안한 가정은 소방관 안전사고를 포함해서 소방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소방력 약화는 결국 우리사회의 조직붕괴를 초래한다."
-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소방관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철저히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권해주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소방관 자신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서 지금 내 안에 존재하는 스트레스를 간파할 수 있고,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자신의 반응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을 읽어낸 다음에라야 비로소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동안 일선에서 수없이 많은 소방관을 상담했다고 알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2012년 일산 플라스틱 공장 화재사고에서 순직했던 고 김형성 소방관의 동료였던 화재조사관 4명을 상담했던 일이다. 동료를 잃은 사고에 대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같은 내용의 사건보고와 언론 대응을 한 달 동안 반복해야 했던 그들은 다른 동료들에 비해 사건충격지수가 가장 높았던 그룹이다. '너무 괴로워 미치겠다'고 호소하는 그들과 진행했던 특별 상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소방관의 힐링을 위해서라면 전국 어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