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에 참가한 유동인구 계산법을 개발한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김시연
"촛불집회 유동인구는 새로운 현상이에요. 바로 '소심한 시민들' 때문에 100만 촛불도 가능했던 거죠."
100만 촛불은 과학자도 춤추게 만든다. 촛불집회 사상 처음 100만 군중을 돌파한 지난 11월 12일 광화문 3차 범국민행동을 계기로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댄 것이다. SNS(소셜네트워크)로 소통해온 몇몇 과학자들이 집단지성을 발휘, '100만 촛불' 숫자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가 하면, 군중들이 안전하게 대피하는 방법까지 만들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연구에 매진하는 게 덕목인 과학계에선 보기 드문 일이었다(관련기사:
"촛불 숫자=경찰 추산 4배" '촛불 방정식' 나왔다).
촛불집회 유동인구를 계산하는 '촛불 방정식'을 만든 원병묵(42)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를 지난 1일 경기도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제 막 논문 수정본 두 편을 마무리한 원 교수는 한결 홀가분해 보였지만 지난달만 해도 미국 출장 다녀오랴, '촛불 방정식' 만들랴 정신없이 움직였다.
100만 촛불 민심, '샤이 과학자'를 집단지성으로 이끌다 평소 세상물정 모르던 '소심한(샤이) 과학자'를 일깨운 건 '소심한(샤이) 시민들'이었다. 지난달 12일 3차 촛불집회 당시 가족들과 서울광장을 처음 찾았다는 원 교수는 1시간 남짓 머물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무수히 목격했다.
"그날 새벽 의문이 들었어요. 촛불 참가자수를 주최 측은 100만, 경찰은 26만이라고 하는데 왜 그럴까? 경찰은 페르미 추정법을 이용해 면적과 밀도만으로 고정인구를 계산하는데 물리학에도 콘서트장 밀집도를 계산하는 비슷한 접근법이 있어요. 저는 이번 촛불 집회는 고정인구보다 유동인구가 더 많을 수 있다고 봤어요. 저처럼 그동안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소심한 일반 시민들이 많이 참여했기 때문이죠."원 교수 전공은 신소재공학 가운데서도 연성물질물리다. 금속처럼 딱딱한 고체가 아닌 액체(유체) 같은 연성물질을 다룬다. 촛불 군중을 하나의 물체로 본다면, '고정인구'는 고체고 '유동인구'는 유체다. 유동인구의 흐름 역시 원 교수의 전공 분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촛불의 제1법칙] "고정인구보다 유동인구가 더 많다"원병묵 교수는 지난달 13일 이같은 과학적 가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 사람이 집회 장소에 머문 시간이 2시간 정도라고 가정하면, 6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 3명(유동인구)까지 머물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이 추산하는 동시간 최대 인원(콘서트장 밀집도 기준으로는 약 34만 명)의 3배인 100만 명까지 모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원 교수 글은 300회 넘게 공유되면서 퍼졌고, 언론도 100만과 26만의 차이를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로 보도했다(관련기사:
[오마이팩트] 광화문 촛불 100만, 경찰 계산법은 틀렸다?).
불쏘시개였다. 뒤이어 김상욱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도 경찰 추산법을 근거로 광화문 촛불 집회 면적을 10만 제곱미터 정도로 보고, 원 교수의 유동인구 가설을 받아들여 경찰 추산 26만 명보다 2배 이상 많은 인원이 참여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가 기름을 부었다. 컴퓨터 분석 전문가인 박 교수는 '천문학에서는 밤하늘의 별도 센다'는 성언창 소백산천문대장 아이디어를 받아, 촛불 숫자를 세는 '캔들카운터'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지난달 12일 광화문 촛불 집회 사진 속 촛불 밀도를 측정한 박 교수는 유동인구를 빼더라도 광화문 일대 15만 제곱미터 면적에 최대 50만~70만 명까지 모일 수 있다고 22일 추정했다. 이 글도 페이스북에서 1000회 넘게 공유되면서 더 많은 입소문을 탔다.
"박 교수님은 실제로 숫자를 헤아려 본 거죠. 제가 한 바퀴 굴렸다면 박 교수님은 열 바퀴 굴린 효과일 정도로 이슈를 폭발시켰어요. 남은 건 유동인구를 어떻게 계산할까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