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후 첫 주말집회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후 첫 주말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촛불집회가 10월부터 12월까지 두 달 동안 열렸는데 그 시작과 끝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라며 "이런 사건을 가능하게 한 이유가 있고, 이것이 지속성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대사건'이라고 불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8년 전 촛불집회는 '대사건'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라며 "반면 이번 촛불집회는 히스토리 모멘트(history moment), 즉 역사적 전환기를 상상하게 하는 대사건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먼저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고도 헌정 중단 위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이것(헌정 중단 위기)이 사회적 대혼란을 동반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굉장히 평화롭게 수용됐다. 그동안 통치자들이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정운영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한다'고 얘기해왔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굉장히 특이한 경험"은 더 있었다. 그는 "민주화처럼 체제 변동을 가져오는 변화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사람이 원하는 결과를 상당히 성취하는 경험을 갖게 됐다"라며 "앞선 2008년 촛불은 불만 표출로 기능했지만 이번에는 시민들이 열정과 의지를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정한 정치적 성과를 나누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 수 있지만 그것이 촛불집회의 끝은 아니다. 촛불을 든 사람이 광장을 떠난다고 해서 그것이 촛불집회의 끝은 아니다. 그래서 대사건이다.""5% 대 95%의 싸움이었다"박 학교장이 "대사건"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촛불집회가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집권연합 안에서 벌어진 내부갈등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그의 1차적 진단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 중요한 자원을 우월한 위치에서 공유하는 파워블록(power bloc), 집권연합, 권력연합이 있다. 그런데 그 집권연합 안에서 박근혜 대통령, 친박(친박근혜)과 그들을 뺀 나머지 다른 보수가 갈등했다. 과거에는 '조중동'이 촛불집회를 경시하거나 비판하고, 여당도 집회를 반대하는 양상이었다. 그래서 보통 촛불집회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 여야의 갈등을 동반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만 빼고 나머지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5% 대 95%의 싸움이었다."그는 "이것은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보수 대 진보' 혹은 '여당 대 야당' 등의 갈등 구도가 아니라 "국가와 시민 사이의 갈등" 같은 갈등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어 그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라며 촛불집회가 커진 또 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난 그 시점만 생각한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조선일보>의 싸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공개 등이 촛불로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촛불집회가 그렇게 시작된 것은 맞다. 하지만 빠른 시간 촛불집회가 확산되고, 평화적으로 상황을 관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은 '여소야대'라는 20대 총선 결과에 있다."그는 "20대 총선에서 야당이 분열했는데도 여당이 수도권에서 패배했고, 여당-보수가 강세인 강남지역에서 여당 기반이 빠졌다"라며 "야당이 분열하고도 승리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20대 총선 이후) 외견상으로는 친박이 새누리당의 지도권을 가졌지만 그때부터 친박과 친박적 정치관은 보수 안에서조차 소외되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여소야대'를 만든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집권연합 안에서 '친박의 고립'이 시작됐고, 이것 때문에 촛불집회가 확산되고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대의제를 활용하는 정치적 시민의 출현"박 학교장은 "이번 촛불집회는 시작부터 정치적이었다"라며 "시민들이 '정치인들 뭐하냐?', '정당들 뭐하냐?'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치의 역할을 호명해주었고, 정당도 촛불집회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라고 말했다. '반정치적'이었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일부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얘기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정치가 제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다른 손에는 정치를 손에 들었다. 대의제민주주의를 다양한 수단으로 유용하게 쓰고 실험했다."그는 "8년 전 촛불집회 때에는 지식인들이 촛불집회를 과도하게 이상화하면서 선거나 대의제에 희망을 갖지 말라고 했다"라며 "하지만 그 이후 8년은 선거나 대의제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고, 그것이 20대 총선의 결과로 나타났다"라고 분석했다.
"선거나 대의제의 수단을 가지고 대통령의 책임(탄핵안 처리)을 물었다. 기본권과 저항권을 허용하는 정치의 수단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이번 촛불집회의 새로운 점이다. 보수정부 9년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니다. 보수정부 경험을 통해서 대의제가 민주주의를 위한 자연스러운 무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이어 그는 "8년 전에는 정치가 필요 없었고, 대의제와 선거, 정당은 정치인들만의 놀잇감이라고 생각해 그들을 믿지 말라고 했다"라며 "하지만 이제는 '정치는 우리의 일부잖아, 원래 그것은 우리 것인데 우리가 활용하는 게 뭐가 문제냐' 이렇게 엄청나게 달라졌다"라고 진단했다. 또한 "이것은 어마어마한 차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8년 전 반정치적 열정으로 가득 찼던 촛불집회와 달리 이번에는 처음부터 정치적 집회였고, 정치라는 민주주의 수단을 쓰는 정치적 시민이 출현했다"라며 "시민사회적 관점의 시민이 아니라 '민주정치의 주인은 우리다'라는 관점의 정치적 시민이 출현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