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속옷이... 정신 없는 보급품 수령

[입영부터 전역까지 ②] 게슈타포 같던 어느 구대장

등록 2016.12.20 17:12수정 2017.01.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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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급품을 받는 과정은 굉장히 정신없었습니다. 개중에는 전투복을 아예 잘못 받은 사람도 나왔죠. 물론 저는 운이 좋은 축에 속했습니다. 사이즈를 잘못 받은 것은 다행히 물물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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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끝났습니다. 불침번을 서고 다시 잠을 청하던 저는 너무나도 피곤했습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라서 더 피곤했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었죠.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장정들도 새벽 6시에 기상하는 것이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의 첫 기상은 너무나도 바빴습니다. 뭘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요.


이렇게 보충대에서의 둘째 날이 왔습니다. 둘째 날에는 운이 좋게도, 세제 냄새가 나지 않는 식판으로 배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식사의 양은 어제와 똑같이 너무나도 적었죠. 적은 양의 식사를 마친 뒤에는 구대장의 전달사항을 받았습니다.

구대장은 보급품 명단을 배부하고 이 명단대로 보급품들을 수령하라 했습니다. 306에서의 첫날은 매우 실망스러웠으나, 이 때만큼은 가슴이 뛰었습니다. 드디어 군인의 상징인 전투복과 전투화를 받는 흥분감! 그렇게 둘째 날은 본격적으로 보급품을 받으면서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보급품들의 명단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장정들은 보충대의 구조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과연 실수 없이 완벽하게 받을 수 있을까요?

너무나도 불친절한 보급품 배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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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불친절한 보급품 배급. 받는 사람도 배급하는 사람도 정신이 없었다. ⓒ pixabay


둘째 날이 됐습니다. 그러나 장정들에게 보충대는 아직 매우 낯설죠.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제대로 가지도 않습니다. 누군가 같이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면 길을 헤매기 마련이죠. 그런데 구대장들은 장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보급품을 받도록 합니다. 이쪽 부근에 다 모여 있으니까, 알아서 쭉 받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몇 곳이 있는지도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이쪽 부근에 다 모여 있다'라고 말했을 뿐이죠. 다른 장정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도 됩니다. 그러나 따라가는 것 외에 더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받아야 할 보급품이 너무 많아서 복잡했다는 점이 있죠.

군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가 있는 베레모 1개, 전투복 상·하의 2벌, 하계용 전투복 상·하의 1벌, 야전상의 1벌, 방상내피 1벌, 전투화 2켤레, 플라스틱 군용벨트 1개. 이 외에도 각양각색의 군용 티셔츠, 속옷, 양말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걸 실수 없이 받으려면 누군가 안내를 해주고 수시로 검사를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보충대에서는 장정들을 방치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장정들은 밖에서 사온 펜을 들고 '보급품 리스트'를 스스로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북적북적 대고 복잡한 와중에 리스트 체크까지 하면서 돌아다니는 상황.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장정들도 불평을 했습니다. '이런 건 좀 체계적으로 나눠줘야 하는 것 아니야?', '뭐 이렇게 주먹구구식이냐?', '안 받으면 너만 손해라고 장땡인가?'

또한 정신없는 것은 장정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급품을 나눠주는 보충대 병사들도 굉장히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죠. 못해도 한 번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각자 사이즈에 맞는 보급품을 달라고 아우성을 합니다. 당연히 보충대 병사들도 '알파고' 같은 '기계'가 아닌 '사람'입니다. 사람이기에 필연적으로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요.

저 역시 보급품을 받은 후에 몇 가지가 잘못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받아야 할 사이즈보다 작은 것들이 몇 개가 나왔거든요. 이때 저는 굉장히 난감했습니다. '군대에서 처음 받은 것 중에 이런 문제가 생기다니… 어쩌지?' 끙끙대던 제게 다른 사람들이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저는 보급품의 사이즈를 작은 것으로 잘못 받았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무사히 해결됐습니다. 어떻게 해결한 걸까요?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장정이 손을 들면서 제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죠.

"어! 저는 사이즈가 큰 것을 잘못 받았는데요. 저랑 바꿔요!"

장정에게 윽박지르던 어느 '병장' 구대장

보급품을 받는 과정은 굉장히 정신없었습니다. 개중에는 전투복을 아예 잘못 받은 사람도 나왔죠. 물론 저는 운이 좋은 축에 속했습니다. 사이즈를 잘못 받은 것은 다행히 물물교환(?)으로 해결했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정신없어서 못 받은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군용 갈색속옷을 그냥 지나쳤던 것이죠.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구대장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구대장은 잠시 후에 재보급을 할 것이니, 그때 나오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재보급이 필요한 사람은 모이라는 말을 듣고 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과연 저 외에도 상당수의 장정들이 물건을 못 받은 상태였죠.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안심했습니다.

다른 장정들도 이런 생각을 했던지 안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개중에는 방금 만났는데도 친해진 사람들도 나왔죠. 예를 들자면 서로 뭐를 못 받았냐고 묻는 식으로요.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떠들던 장정들.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어느 순간에 움츠러들었습니다. '장정들의 눈'에는 아주 높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죠.

검은색 헬멧을 쓰고 '구형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병장이 하나 어슬렁거리며 걸어왔습니다. 당시에는 '디지털 무늬' 전투복이 지급되던 때입니다. 덩치도 좋은데다가 고참들의 상징인 '구형 얼룩무늬' 전투복까지 걸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정들은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죠.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한편 그 병장은 무언가 잔뜩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자신보다 후임인 구대장에게 손짓을 하며 인솔하라고 했습니다. 잔뜩 겁을 먹은 저희는 얼른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때 어느 장정 하나가 급히 그 병장 구대장에게 다가갔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던 걸까요? 아마도 보급품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해당 장정은 병장 구대장에게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병장 구대장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습니다. 잔뜩 인상을 쓴 구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씨X! 지금 장난하냐고! 나랑 장난하냐? 제때 안 받고 뭐했냐?"

곧바로 짜증을 내며 욕설을 퍼붓는 병장 구대장. 보급품을 다시 받으러가는 우리들은 이윽고 보급소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가는 내내 그 구대장의 욕설을 멀리서 들었지요. 단순히 보급품을 받지 못한 것인데, 그렇게 심하고 길게 욕을 해야 했을까요? 더욱이 장정은 군인신분도 아니며, 그 구대장의 정식후임도 아닙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에게 함부로 대하던 게슈타포가 떠올랐습니다. 수용소 내에서 유대인들은 게슈타포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죠. 무언가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곧바로 구타와 욕설이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구타만 없었을 뿐이지, 그 구대장은 게슈타포와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나중에 훈련소에서 이 이야기를 하자, 나이가 많던 훈련병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그나마 욕만 먹었으니 다행이지. 옛날에는 그냥 끌고 가서 개 패듯 팼대!"

그나마 그 장정이 안 맞은 것이 괜찮은 것일까요? 정말로 그게 다행인 걸까요?

'조금만 기다려.'… 도대체 언제까지?

하지만 보급품을 수령한 뒤에도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군용가방인 더플 백(Duffel bag), 통칭 '의류대'의 잠금장치가 불량이었던 것이죠. 아예 가방이 잠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확인 직후에 구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구대장은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하고 저를 돌려보냈습니다. 구대장에게 보고를 마쳤으니, 이제 알아서 해결해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한창이 지나고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굉장히 불안해졌죠. 입대한 지 겨우 이틀째인데, 보급품에 문제가 생긴 것을 불안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저녁을 먹은 후에, 저는 다시 구대장에게 가서 재차 말했습니다. 그러자 구대장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저는 또 그대로 돌려보내졌습니다.

취침시간이 되고 불침번을 서면서 저는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사회에서 흔히 떠올리는 군대 보급품 검사에서 아예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구대장은 제대로 처리해줄 생각도 없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너무 건성건성, 듣는 둥 마는 둥이었죠.

그렇게 셋째 날. 기상을 한 다음에도 근심걱정이었죠.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구대장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구대장은 막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이때 안심했습니다. 이제는 드디어 바꿔주겠구나! 하지만 구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요? 저녁을 먹기 전까지 소식이 없었습니다. 결국 옆에 지나가는 다른 구대장에게 말한 뒤에야 해결이 됐습니다. 그것도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다른 구대장은 저에게 "왜 이렇게 늦게 말했느냐"라고 묻기까지 했죠.

참 어이가 없는 일이지요. 만약 제가 끝까지 기다리기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과연 제대로 된 의류대로 교환을 받을 수는 있었을까요? 이제 막 보충대에서 3일째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겪을 일들을 생각하면, 이건 옳은 생각이었습니다.

"역시, 군대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무조건 재촉을 해야 하는구나…"
#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보충대 #장정 #구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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