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연애하라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평] <렛잇스노우>, 크리스마스엔 서툰 사랑이라도 해 보세요

등록 2016.12.23 18:02수정 2016.12.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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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성탄을 앞두고 누군가의 바람처럼 눈이 쌓였다. 찔끔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 홀로 집에' 삽입곡으로 유명한 캐롤 <렛 잇 스노우, Let it Snow>, "눈아 내려라~ 눈아 내려라~ 눈아 펑펑 내려라~"라고 노래한 아이들은 기쁘겠지만, 차를 운전해야 하는 사람들은 '끙' 소리 나는 게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을 위한 절기가 되고 말았다. 이런 정서가 미국 사람들의 것만은 아니다. 우리 조상님들도 이맘때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음을 황진이의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서)
춘풍 니불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어두었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정든 임이 오신 날 밤에, 그 밤이 오래오래 가도록 굽이굽이 펴리라)

우리 조상들은 연인을 기다리며 시를 읊조리는 운치가 있었다면, 미국에선 펑펑 눈이 내리기를 노래했던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일 뿐, 혼자 보내는 연말이 쓸쓸한 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연인이 없어 심통 난 청춘들은 '눈아 펑펑 내려라~'고 노래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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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Snow 책표지. ⓒ 북폴리오


<Let it Snow>는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그린, 로렌 미라클, 모린 존슨이 크리스마스 모험과 로맨스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세 작가가 각각 '주빌레 익스프레스', '크리스마스의 기적', '돼지들의 수호신'이라는 제목으로 폭설 가운데 일어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독자들에게 달달하게 전한다. 내년에 '나 홀로 집에'를 위협할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니 기대해 볼 만하다.

책을 읽다 보면, "크리스마스엔 연인과 함께 들뜬 시간을 보내야 하고, 함께 있지 않으면 모든 게 엉망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어떤 강박감이 느껴진다. 마치 "모두들 징글벨을 부르며 기뻐하는데 나만 징글징글한 종소리를 듣고 있다니, 꼴좋다"고 한탄하듯 말이다.

세 이야기는 그레이스 타운에 50년 만에 닥친 크리스마스 폭설로 멈춰버린 기차를 매개로 한다. 퍼즐처럼 조각난 세 이야기는 서툰 사랑 때문에 방황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어중간한 관계를 넘어설지 말지를 고민하는 모습은 10대들의 사랑이라고 어른들이 무시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숱한 고민을 하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험 부담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냥 좋다, 좋다, 좋다 생각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상대를 몰래 훔쳐보던 시선을 들키고 나면, 그때부터는 평소에 하던 말장난도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괜히 가볍게 보이는 것도 싫고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우정과 사랑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것은 재앙과도 같았다. 그 벽을 허물면 처음에는 행복하지만 그 후로는 어중간한 상황이 이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사랑하던 연인에게 배신당하여 크리스마스의 기쁨과 기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아이들은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실패하고 상대방이 자신을 향한 사랑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표현 방식이 너무 다른 두 사람의 대화는 진지하지만 미소를 머금게 하기도 한다.

"나는......<타이타닉>에 나오는 것처럼 망망대해에서 내 허리를 붙잡고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어. 그 영화 기억나지?" 젭이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처럼 물에 빠져 죽으라고?"

한쪽은 매번 사랑을 표현하라고 닦달한다. 상대방은 사랑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한다며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응대한다. 그러다가 홧김에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일을 하고, 후회할 정도로 사랑에 서툰 10대들은 위로가 필요한 존재들로 묘사된다.

소설 속 십대들은 폭설 내리는 크리스마스에도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들은 상처받으면서도 상대방은 '조금 덜 마음이 아프기'를 바라고, '심장에 딱딱하게 얼어붙은 응어리가 없기를' 소망한다. 서툰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주저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Let it Snow>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혹은 연말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인종차별 혹은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들에 간혹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청소년 소설 특성상, 작가들은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튀어나오는 인종차별적인 표현에 대해 즉각적으로 농담 혹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밝히며,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를 취한다. 그렇더라도 주류 미국인들 내면이 의도치 않게 드러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도 하다. 옥에 티 정도라고 해 두겠다.

미국식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대체로 해피엔딩이듯이 <Let it Snow>도 해피엔딩이다. 그간의 오해를 풀며 사랑을 확인하는 소설 끝부분에 나온 표현이 진부하긴 하지만, 누구나 경험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징글징글한 종소리가 아니라 달콤하고 순수한 은색 종소리가 머릿속으로 울려 퍼졌다는 말에는 손이 다 오글거리지만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 순간, 머릿속으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달콤하고 순수한 은색 종소리."

크리스마스엔 서툰 사랑이라도 해 보자

렛 잇 스노우

존 그린.로렌 미라클.모린 존슨 지음, 정윤희 옮김,
북폴리오, 2016


#크리스마스 #캐롤 #LET IT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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