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 단상
조세형
지난 11월에 시작된 고병원성조류독감(AI)으로 살처분 당한 가금류가 2000만 마리를 넘어서면서 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는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이날 위령제는 단체가 아닌 개인 시민들의 주도로 이뤄졌다. 위령제를 주관한 '생매장과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구성원인 황윤 영화감독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살처분된 가축을 위한 위령제가 간혹 열렸는데 이제는 위령제조차 잘 열리지 않는다면서 우리사회가 살처분에 무감각해져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청년 활동가, 예술가 등의 시민들이 뜻을 모아 위령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황 감독은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의 삶에 대한 다큐 영화 <작별>(2001), 백두산 유역 개발로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에 관한 <침묵의 숲>(2004), 로드킬로 사라져가는 야생동물의 삶을 이야기한 <어느날 그 길에서>(2008)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목소리 없는 약자'들을 조명해왔다. 그리고 350만 가축을 생매장한 2011년 구제역 살처분의 충격으로 돼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돼지가 고기이기 전에 생명임을 깨닫는 인식의 변화 과정을 그린 다큐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만들었다.
황 감독은 이날 낭독한 위령문에서 AI의 원인은 철새가 아니라 수천, 수만 마리 가금류를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장식 축산은 바이러스 번식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복되는 AI에서 벗어나려면 공장식 축산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고, 가축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햇볕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육류 중심의 식사를 채식 위주로 전환하자고 호소했다.
황 감독은 <잡식가족의 딜레마> 제작과정에서 인터뷰했던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한 "우리가 나치와 뭐가 다른가요?"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동물에 대한 '갑질'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약자에 대한 착취와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폭력에 매번 저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폭력의 '뿌리'를 직시하자며, 생명을 이윤추구 수단으로 취급하는 공장식 축산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무서운 폭력의 뿌리라고 주장했다.
황 감독은 생명을 비인도적으로 사육하고 전염병이 돌면 살처분하는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퇴진 이후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한 가지 모습만은 아니겠지만, 본인은 생명이 생명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희망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날의 위령제는 단순히 죽은 생명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아니라, 공장식 축산이라는 폭력적인 시스템을 통해 나타나는 인간문명의 잔인함을 참회하고, 박근혜 퇴진 이후의 세상에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여성·장애인·동물혐오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