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마리 생매장, "나치와 뭐가 다른가"

[현장] '생매장과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는 사람들', 생매장 당한 가금류 위령제 열어

등록 2016.12.25 14:02수정 2016.12.2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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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
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 조세형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루가 13:34)

최훈 강원대 교수는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라는 책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일지라도 '닭이라면 프라이드치킨밖에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과연 성경에 등장하는 위의 표현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평소 튀겨진 고기로서의 닭만 봐왔기에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는 모습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예수의 고귀한 말이 충분히 전달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이해된다.  

물론, '생명'보다 '음식'으로서의 닭이 익숙한 것은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가축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살아있는 가축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생명으로서의 가축' 잊게 만든 공장식 축산

이런 현실을 두고, 최 교수는 사람들이 생명으로서의 가축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우리 문화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암탉 '잎싹'의 이야기를 그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닭싸움을 묘사한 김유정의 <동백꽃> 같은 예술작품도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최 교수는 사람들이 가축과 멀어지게 된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을 지목했다. 공장식 축산은 가축을 '생명'이 아닌 '공장의 물건'처럼 생산하는 현대의 축산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공장식 축산 농장의 가축은 평생 비좁고 열악한 실내 사육장에 갇혀 산다. 이들에겐 도축장에 끌려가는 날이 난생 처음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접하는 날인 경우도 많다. 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은 '고기·달걀·우유를 만드는 기계'다.

이런 환경에서 동물의 복지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공장식 농장의 산란계 한 마리에게 평생 주어지는 생활 면적이 아이패드 하나보다 작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 교수는 산란계의 이런 처지를 사람에 비유하면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평생을 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살아가는 상황에서 삶의 질을 말하는 것은 사치이고, 삶 자체가 고통일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최 교수는 머리가 나쁜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닭대가리'라는 말을 쓰지만,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닭의 지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닭은 머리가 나쁘니까 고통을 느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지적 장애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런 사람들은 고통을 느껴도 된다는 주장과 다름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매장당한 2000만 생명을 위로하는 위령제


 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 단상
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 단상조세형

지난 11월에 시작된 고병원성조류독감(AI)으로 살처분 당한 가금류가 2000만 마리를 넘어서면서 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는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이날 위령제는 단체가 아닌 개인 시민들의 주도로 이뤄졌다. 위령제를 주관한 '생매장과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구성원인 황윤 영화감독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살처분된 가축을 위한 위령제가 간혹 열렸는데 이제는 위령제조차 잘 열리지 않는다면서 우리사회가 살처분에 무감각해져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청년 활동가, 예술가 등의 시민들이 뜻을 모아 위령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황 감독은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의 삶에 대한 다큐 영화 <작별>(2001), 백두산 유역 개발로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에 관한 <침묵의 숲>(2004), 로드킬로 사라져가는 야생동물의 삶을 이야기한 <어느날 그 길에서>(2008)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목소리 없는 약자'들을 조명해왔다. 그리고 350만 가축을 생매장한 2011년 구제역 살처분의 충격으로 돼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돼지가 고기이기 전에 생명임을 깨닫는 인식의 변화 과정을 그린 다큐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만들었다.

황 감독은 이날 낭독한 위령문에서 AI의 원인은 철새가 아니라 수천, 수만 마리 가금류를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장식 축산은 바이러스 번식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복되는 AI에서 벗어나려면 공장식 축산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고, 가축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햇볕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육류 중심의 식사를 채식 위주로 전환하자고 호소했다.

황 감독은 <잡식가족의 딜레마> 제작과정에서 인터뷰했던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한 "우리가 나치와 뭐가 다른가요?"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동물에 대한 '갑질'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약자에 대한 착취와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폭력에 매번 저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폭력의 '뿌리'를 직시하자며, 생명을 이윤추구 수단으로 취급하는 공장식 축산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무서운 폭력의 뿌리라고 주장했다.

황 감독은 생명을 비인도적으로 사육하고 전염병이 돌면 살처분하는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퇴진 이후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한 가지 모습만은 아니겠지만, 본인은 생명이 생명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희망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날의 위령제는 단순히 죽은 생명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아니라, 공장식 축산이라는 폭력적인 시스템을 통해 나타나는 인간문명의 잔인함을 참회하고, 박근혜 퇴진 이후의 세상에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여성·장애인·동물혐오에 반대한다"

새벽을 알리는 닭 ‘동박새(동물혐오 없는 박근혜 퇴진과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사람들)’ 깃발
새벽을 알리는 닭‘동박새(동물혐오 없는 박근혜 퇴진과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사람들)’ 깃발조세형

이날 위령제 단상 옆에는 '새벽을 알리는 닭'이라는 문구가 쓰인 '동박새' 깃발이 걸렸다. 이날 행사에 연대단체로 참여한 '동박새'는 '동물혐오 없는 박근혜 퇴진과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사람들'의 줄임말이다. 황 감독은 '동박새'가 '닭그네'라는 비유를 통해 모욕당하고 공장식 축산에서 착취당하는 무고한 닭들, 그리고 토건 마피아의 개발 사업으로 사라져가는 야생동물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황 감독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광장에서 여성·장애인·동물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행동을 목격했고, 이를 통해 소수자·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우리 사회에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동박새'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했다.  

황 감독은 '닭은 닭장에', '닭 때려잡는 날', '닭X' 등의 표현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비인간 동물을 모욕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번째 이유는 비인간 동물에 대한 혐오는 언제든 인간 약자에 대한 혐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약자를 차별하고 배제시키고 희생시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지금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박근혜가 여성이어서,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닭을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를 사유화하고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초래하는 등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 감독은 박근혜 퇴진 이후의 세상에 대한 논의에서 목소리 없는 약자들이 배제되지 않고 존중되어야만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전파하는 것이 '동박새'의 행동 목표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닭'은 청와대에서 호화롭게 사는 어떤 개인이 아니라, 고된 삶을 사는 국민에게 더 가까운 상징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공장식 축산의 생산기계로 전락한 닭의 현실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특히 박근혜 정권에서 생산부품 같은 존재로 전락한 국민의 처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24일, 위령제에서 ‘생매장과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살처분 당하는 가금류의 고통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지난 24일, 위령제에서 ‘생매장과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살처분 당하는 가금류의 고통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조세형

 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 단상
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000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 단상 조세형

한편 지난 21일, 동물보호단체·환경단체·정당의 연대체인 '조류독감살처분 공동대책위원회'는 생매장으로 일관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가축에 대한 인도적 처리와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었다.

'조류독감살처분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AI의 발생 원인을 애꿎은 철새에게 돌리고 근본 원인인 공장식 축산은 외면한다고 규탄했다. 또한 동물의 복지를 무시하는 공장식 축산이 바이러스에 취약한 동물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동물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조류독감살처분 공동대책위원회'는 AI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1) '생매장' 살처분 중단 2) '예방적' 살처분 중단 3) 사람과 차량 이동에 의한 바이러스의 '기계적' 전파 예방 4) AI 반복 발생 지역에서의 가금류 사육 제한 5) 겨울철 사육 휴업 보상제 실시 6) 가금류 사육 농가를 장악하고 있는 축산 대기업에 대한 방역책임 강화 7) 사육농가 방역 강화 및 농가 밀집을 해소하기 위한 '거리 제한제' 실시 8) '백신' 사용 9) '동물복지' 확대 실시 10) 총체적인 역학조사 11) 방역 및 살처분 자문기관인 '방역협의회'의 재구성을 요구했다. 
#살처분 반대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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