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쓰시마신라 충신 박제상 순국비
김수종
박제상 혹은 김제상(金堤上)이라고도 알려진 그는 신라 내물왕 때부터 눌지왕 때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신라는 백제 세력을 견제할 필요에 의해 402년(실성왕1) 내물왕의 셋째아들인 미사흔 왕자를 일본에, 412년에는 내물왕의 둘째아들인 복호 왕자를 고구려에 파견해 군사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과 고구려는 이들 왕자를 인질로 감금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왕은 즉위 후 두 동생을 고구려와 일본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군신들을 불러 협의했다. 그 결과 박제상이 적임자로 천거되었다. 그는 418년(눌지왕2) 왕명을 받들어 먼저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해 복호 왕자를 구출하여 귀국했다.
이후 부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일본에 이르러 자신이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해 온 것처럼 사람들을 속였다. 마침 백제 사신이 와서 고구려와 신라가 모의해 일본을 침입하려 한다고 거짓으로 꾸며 말했다. 이에 일본은 미사흔 왕자와 박제상을 길잡이로 삼아 신라를 침략하고자 했다.
일본군이 신라를 치러 가는 도중에 박제상은 군사들을 속여 미사흔 왕자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신은 붙잡혀 일본 왕 앞에 끌려갔다. 일본 왕은 재주가 좋고 학문이 깊은 그를 신하로 삼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회유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결코 일본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마침내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받아 죽었다.
1600년 전 신라의 충신을 추모하는 순국비가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한국정부와 일본의 뜻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몇 년 전에 건립한 것이었다. 아무튼 너무 대단하고 놀라워 잠시 묵념을 했다.
박제상! 이름도 가물거리는 신라의 충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본에 있고, 비석을 부수지 않고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놀라울 뿐이다. 터의 위치로 보아서는 박제상이 순국한 곳이라기보다는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땅인 이곳에 그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 같아 보였다.
이어 길을 조금 더 가서 '쓰시마야생동물보호센터(對馬島野生動物保護センター)'로 갔다. 이곳 야생동물보호센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야마네코(やまねこ,山猫)'로 불리는 살쾡이(삵)을 보호하는 시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