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게 무슨 집회? 정치 성숙도는 나이와 비례하지 않아

[주장] 광장에서 소외되는 여성 그리고 선거권이 없는 학생

등록 2016.12.30 12:41수정 2016.12.3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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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진 이후, 시민들은 매주 거리로 나오고 있다. 232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촛불집회 참석 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정치권을 압박해 박근혜의 탄핵을 이끌어 냈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 유명 작가는 토요일마다 바스러진 시민의 자존감이 회복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광장에 나온 모든 시민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성들은 집회에서도 성추행을 걱정해야 했다. 지난 17일 집회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남성이 불구속 입건됐다. 박근혜를 비판하면서 '닭년', '여자가 대통령을 해서 그렇다' 등처럼 여성성을 강조한다. 랩퍼 산이의 '나쁜년', 힙합그룹 DJ DOC의 '수취인 불명'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가 평소에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비선출 권력에 의한 국정농담임에도, 박근혜는 여자라는 이유로 욕을 먹는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광장에서 소외된다.   

여성만이 광장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학생들 또한 유사한 처우를 받는다. 집회에 나온 중고등학생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어린 게 무슨 집회냐." "어린데도 집회에 나오다니 기특하다." 얼핏 보면 서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두 시선은 '학생은 아직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학생들은 아직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집회에 나온 학생들은 누군가에게 선동을 당한 것이다. 어린 게 무슨 집회냐." 또는 "학생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하지만, 집회에 나온 너희들은 그렇지 않은 걸 보니 기특하다".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는 편견은 최근 불거진 선거연령 하향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선거연령 하향 조정을 반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목소리가 바로 "학생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요즘 학생들은 모바일에 친숙하다. 언제 어디서든 시사 이슈에 접근할 수 있으며, SNS를 통해 이를 친구들과 나눈다. 시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은 여느 성인 못지 않게 정치적 성숙도가 높다.

박근혜는 18대 대선을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으로부터 대략 4년이 지났다. 과연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약들은 지금 지켜졌는가? 가장 전면에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는 어떻게 됐나.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현상을 법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성과연봉제 등의 노동개악 정책을 추진했다. 그 외에도 수 많은 공약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박근혜의 공약들은 포퓰리즘 공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포퓰리즘 공약에 선동 당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학생들인가? 박근혜는 50-6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렇지만 우리는 50-60대를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거나 선거할 자격이 없다고 하지 않는다. 정동영 전 의원은 "60대 이상은 투표 안 해도 괜찮다"는 말로 상당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왜 그럴까? 정치적 성숙도는 연령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이 시사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반면 나이를 먹어감에도 사회 돌아가는 일에 뜻이 없다면, 정치적으로 미성숙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생활하기에 바쁜 일상 탓일 수도 있다. 학생들은 입시 준비를 하느라, 직장인들은 일을 하느라 시사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성숙도는 연령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해석은 학생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면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오작동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목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그러진 민주주의는 박근혜가 탄핵되고 (박근혜를 비롯한)관련자들이 법적으로 처벌된다고 해서 바람직한 형태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어쩌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바로 잡을 좋은 시작이 돼야 한다. 그 시작은 광장에서 여성 그리고 학생을 배제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선거연령 하향으로 학생들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자존감 #여성 #학생 #소외 #선거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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