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성가족 대성당 앞에서 새똥 맞다

[응답한다1988 ②] 다시 찾은 바르셀로나

등록 2016.12.30 17:21수정 2016.12.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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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성가족대성당 ⓒ 임충만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88장의 헌혈증을 기부하기로 마음 먹은 후 티켓을 구입하려고 항공권을 알아보았다. 여행 경비는 학교 국제처에서 인턴을 하면서 모으기 시작했다. 겨울이 끝나가고 새싹들이 조금씩 올라오는 봄이 다가오는 날 그리고 조금 특별하게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2월 29일 출국하기로 마음먹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의 시작지점은 생 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근처에 있는 마을이다. 대부분의 한국 순례자들은 파리행 비행기로 파리에 간 후 TGV를 타고 바욘으로, 다시 버스나 열차를 타고 생 장 피에 드 포르로 가곤 한다.


나 또한 항공권 최저가를 알아보다가 파리를 일순위로 선택했고 항공권을 결제하려고 했는데 자꾸 오류가 났다. 독일 항공사 특가였는데 영문을 모른 채 내일 다시 결제를 시도하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항공권을 결제하려고 인터넷에 접속하니 검색순위에 파리가 있었다. 무슨일인가 봤더니 파리에 테러가 나서 뉴스가 온통 파리 테러에 관한 뉴스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한 소식에 안타까웠고 여정을 준비하는 나로서도 당황했다.

결심을 했기 때문에 안 갈 수는 없어 고민하다가 결국 바르셀로나행 항공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여정 가운데서도 아무탈이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 들면서 또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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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시우타데야공원 가우디가 스승과 함께 설계한 분수 ⓒ 임충만


그렇게 2월 29일 독일을 경유해 밤 10시경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무조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찾은 최저가 항공이어서 어정쩡한 밤 10시에 도착했고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다.

생각하다가 누군가 돕기로 한 여행이니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고자 첫날부터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29살 취업에 대한 걱정이 충만하면서도 지난해에 이어서 또 스페인에 내가 있다니 설레면서 신기했다.


스페인은 어렸을 적부터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나라 1순위였다. 중학생 때부터 스페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 팬이어서 마드리드에서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직접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 1순위였다.

하지만 학업과 내 자신을 찾느라 여행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28살이 되어서야 스페인을 여행했다. 스페인을 처음으로 찾은 지난해에는 내가 정말 스페인에 있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과 감사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더불어 언젠가 퇴직하고 여행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는데 1년이 지나고 또 올 줄은 몰랐다. 너무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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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바르셀로나 ⓒ 임충만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

새벽 4시까지 공항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순례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전 시차적응도 할 겸 바르셀로나에서 휴식을 취하고 내일 순례길 시작점인 생 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까지 기차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나와 공항버스를 탔는데 심야 시간이라 70~80% 정도 할인된 요금을 내고 탈 수 있었다. 홀로 탔던 버스는 공항을 출발한 뒤 중간 중간 정류장에서 손님들을 태우면서 바르셀로나 시내를 향하고 있었다.

혼자 큰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온 나 이외에 아침 일찍 그들의 삶을 위해 일어나 버스를 타는 그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신기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광장에 도착하니 6시 쯤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정처없이 걸었다.

걷다보니 개선문이 나왔는데 깜짝 놀랐다. 지난해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 동안 있었음에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우연히 걷던 길에서 못보던 모습을 보니 놀랐다. 역시 여행을 하면서 놓치는 것들이 많은데 살면서 놓치는 것들도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살의 나는 수능이라는 벽 앞에 있어 주위를 잘 둘러보지 못했고, 편입학을 준비할 때는 또 그 벽에 가로막혀 주위를 보지 못했다. 넓은 세상에 나와보니 내가 얼마나 작고 좁은지 알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같은 유명 관광지 건물이라도 계절에 따라 각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또 때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르고 사람마다 또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건물과 풍경도 그렇게 달라지는데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그 다양성을 만나면서 내가 큰 세상과 만나 배우고 호흡하는 걸 늦게 깨달아서 아쉬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배가 고파져서 개선문 앞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 빵을 먹었다. 아침 7시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영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참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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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페인 빵이 프랑스 빵보다 훨씬 맛있다 ⓒ 임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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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성가족 대성당 아침 7시에도 관광객들이 종종 찾아온다 ⓒ 임충만


배를 채우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성가족 대성당이 보고싶어 30분 가량을 걸어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성가족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처음 성가족 대성당을 방문했을 때에는 성당이 워낙 커서 성당 전체가 사진에 담기는 위치를 찾지 못했는데 지금은 잘 안다.

도착해서는 명상에 빠졌다. 내 20대를 다시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순례길을 걷게 될 것인지 궁금했다. 많은 분들이 내 여행을 보고 헌혈과 골수기증에 관심 가져주고 헌혈증을 기부해줄 것인지도 걱정됐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관광객들이 성당을 찾았다. 아직 성당이 열지는 않았지만 다들 삼삼오오 여유롭게 성당 사진을 촬영하고 자신들의 모습도 성당과 함께 담아갔다. 성당이 혼자 힘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성당을 보며 가우디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좋은 바르셀로나이지만 가우디가 건축한 성가족 대성당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많으니 말이다.

이때 갑자기 내 어깨 위로 뭔가 툭하고 떨어졌는데 기분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섞여 있으면서 하얀 물체였는데 자세히 보니 비둘기 똥이였다.

'순례길을 걷기 전부터 제가 뭘 잘못했다고 새 똥을 주십니까 신이시여... 더군다나 새 옷인데 말입니다...'

다행히 모자를 쓰고 있어 머리에 안 맞은 게 다행이었다.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고민하다가 허탈 웃음만을 지었고 이내 잘 되라는 의미로 똥을 맞았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비둘기가 나를 싫어한 건지 급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똥이 있는 곳에 내가 있었고 내가 있는 곳에 똥이 있었을 뿐이라 여기기로 했다.

12kg 정도 배낭을 메고 계속 걸었더니 어깨가 조금 아파왔다. 오늘은 바르셀로나에서 쉬고 내일 순례길을 위해 바르셀로나를 떠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산티아고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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