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평화의 소녀상 제막 "시민 승리 역사 썼다"

우여곡절 속 소녀상 공식 제막... 경찰 막판까지 주최 측과 갈등

등록 2016.12.31 22:51수정 2017.01.0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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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31일 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열렸다. ⓒ 정민규


"항쟁의 촛불이 뜨거운 2016년 12월, 우리는 시민이 승리하는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부산시민이 세우는 이 평화의 소녀상은 이 땅에 다시는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를 반드시 되찾겠다는 굳은 다짐입니다."

부산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에 적힌 비문을 읽어 내려가자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 몰려든 시민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2016년을 보내는 31일 밤 9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시민단체 대표 등이 하얀 막을 걷어내자 의자에 앉은 황동색 소녀상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시민이 일본총영사관을 바라보고 앉은 소녀상의 목에 목도리를 둘렀다. 꽃도 놓였다.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닦는 시민의 모습이 보였다. 시민들은 부산에서 끌려갔거나, 전후 부산에서 생활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름을 하나하나씩 외쳐 불렀다. 부산은 일제 강제 노역 피해자가 가장 많았던 고장이기도 하다.

소녀상이 부산 땅에 자리를 잡았지만 의자에 앉은 소녀의 발은 바닥에 닿아 있지 않다. 정부의 무관심 등으로 광복 후에도 고국에 안착하지 못한 할머니 삶을 표현한다고 했다. 마치 그런 현실을 보여주듯 소녀상은 제막식을 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소녀상 철거했던 동구청 향해 "일본 동구청이냐" 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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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31일 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열렸다. ⓒ 정민규


지난해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반발한 시민들이 자발적인 성금을 모아 부산 일본총영사관에 위안부 소녀상을 건립하겠다고 나섰지만, 담당 지자체인 동구청은 마지막까지 영사관 앞 설치를 막아섰다. 

동구청은 시종일관 소녀상 설치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이 과정에 일본총영사관이 동구청에 소녀상 설치를 막아달라는 외교서한을 보낸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일본 정부까지 나서 공식적으로 소녀상 설치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구청은 의도적으로 소녀상 설치 예상 지점에 트럭을 세워두고 설치에 대비한 공무원까지 현장에 배치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급기야 지난 28일 시민단체가 위안부 합의 1주년을 맞아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자 동구청은 공무원을 동원해 행정대집행을 벌여 강제 철거했다.

동구청의 행정대집행은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시민들의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고, 누리집은 접속자 폭주로 접속 장애를 겪었다. 야당은 물론 공무원노조까지 나서 동구청의 행정대집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부담을 느낀 동구청은 철거 이틀만인 30일 소녀상 설치를 허용하겠다고 물러섰다. 하지만 그 뒤에도 외교부는 소녀상을 사실상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제막식을 찾은 시민 이창수(43)씨는 "부산 동구청이 아니고 일본 동구청인가"라고 꼬집었다. 이날 시민들은 동구청을 향한 야유를 이어나갔다.

소녀상 대신 일본영사관 지킨 경찰 "어느 나라 경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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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제9차 부산시민대회가 5만5천여 명(집회측 추산·경찰 추산 4천 여명)이 모인 가운데 31일 저녁 서면 중앙대로에서 열렸다. ⓒ 정민규


경찰도 이날 제막식에 제동을 걸었다. 경찰은 외교공관 100m 근방에서는 집회를 열 수 없다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들어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을 통과하는 행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경찰이 탄핵 정국 들어 부산에서 행진을 막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에 반발한 박근혜퇴진부산운동본부는 부산지방법원에 집회 불허 통보 가처분신청을 내며 맞섰고, 법원 역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행진을 허용했다. 경찰은 법원의 집회 허용에도 이날 제막식 직전까지 무대 설치를 놓고 주최 측과 신경전을 벌이는 등 날카롭게 반응했다. (관련 기사 : 부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우여곡절 끝에 준비 중)

정경숙 부산여성연대 대표는 "도대체 어느 나라 경찰이란 말인가"라며 "일본 정부의 호위무사인 한국 정권에 절대 소녀상을 빼앗기지 않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작가는 "며칠 사이 치욕과 감동을 느꼈다"면서 "모든 우리 국민의 염원과 소녀상이 끌려가는 걸 보면서 정말 할머니들이 저렇게 끌려갔겠구나 생각했고, 소녀상을 찾아오면서는 이렇게 독립운동을 했겠구나 생각했다"고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5만 5천 부산 시민 2016년 마지막 시민대회 "더 뜨겁게 타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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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제9차 부산시민대회가 5만5천여 명(집회측 추산·경찰 추산 4천 여명)이 모인 가운데 31일 저녁 서면 중앙대로에서 열렸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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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제9차 부산시민대회가 5만5천여 명(집회측 추산·경찰 추산 4천 여명)이 모인 가운데 31일 저녁 서면 중앙대로에서 열렸다. 이날 시민대회 사전행사에는 가수 김장훈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벌였다. ⓒ 정민규


소녀상 제막식에 앞서 이날 저녁 6시부터 서면 중앙대로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제9차 부산시민대회'에는 5만 5천여 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4000명)이 모여 올해 마지막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특히 이날은 가수 김장훈이 사전 행사 무대에 올라 <사노라면>, <내 사랑 내 곁에> 등의 노래를 시민들과 함께 부르며 1시간가량 공연을 펼쳤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토크 콘서트를 열고 시민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조 교수는 "끝까지 이번 기회를 붙잡고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면서 "부산이 바뀌면 역사가 바뀐다"고 강조했다.

시민대회 본 행사는 인디밴드의 공연과 시민들의 자유발언 등을 통해 한해를 돌아보는 순서로 마련됐다. 박근혜정권퇴진부산운동본부는 내년에도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보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김종민 박근혜정권퇴진부산운동본부는 공동대표는 "그렇게 견고하고 불통이기만 하던 장벽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면서 "'이게 나라냐'가 아니라 '이게 나라다'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촛불은 더 뜨겁게 타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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