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과 시민, 우리는 한 덩어리의 '촛불'

등록 2017.01.02 09:24수정 2017.01.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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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민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재환


고백하건대 서울에 20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신각에 나가 제야의 종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지난 3월 말, 충남 홍성으로 이사 올 때까지도 서울에 다시 올라와 2017년 새해를 맞을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31일, 충남 예산공설운동장에서 광화문으로 출발하는 차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탑승해 서울로 올라갔다. 사실 지금도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대한 기억이 또렷한 내게는 광화문 촛불집회나 시골 중소도시의 촛불 집회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광화문에는 좀 더 많은 시민이 모이고, 좀 더 다채로운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것이 달라 보일 뿐이다. 사실 촛불 시민들의 '열기'는 지방의 중소도시라고 해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직접 취재하고 겪은 '박근혜 퇴진 촛불'은 그랬다. 물론 광화문이 지닌 상징성과 그곳에 모인 촛불의 숫자가 경이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를 취재하다 보면, 지방에서든 서울에서든 촛불의 외침과 주장이 어느 순간 내 마음의 주파수에 접속해 함께 진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광화문 촛불과 지방의 촛불이 결국 '하나의 촛불'로 느껴지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이번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는 유난히 촛불시민들 사이 사이에 있는 노점상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박근혜 퇴진 군밤'을 팔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묵과 번데기를 팔았다. 촛불집회 와중에도 서민경제는 미세하게나마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광화문 촛불집회에 자주 참석해 왔다고 밝힌 한 시민은 "이번 집회에는 노점상이 많이 나온 것 같다"며 "광장 곳곳에 먹거리도 있고, 집회가 좀 더 풍성해진 느낌이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시민은 "노점상들도 신정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나 '특수'를 누린 것은 아니다. 5호선 광화문역에서 광장으로 나오는 지하통로 앞에는 LED 촛불을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 LED 촛불을 팔고 있던 한 상인은 "촛불 초기부터 여기서 장사를 했다, 앞에서 다 팔아서 그런지 내 차례까지 오지 않는다"며 "갈수록 판매량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1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는 누군가는 '박근혜 퇴진과 탄핵'을 외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광장 밖에서 그들에게 장사를 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풍경이 부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촛불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촛불들 중에는 잠시 생업과 일정을 미루고 광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충남 홍성에서 광화문 10차 집회에 참석한 면면만 봐도 그렇다. 이들은 사업가, 학원 강사, 자격증 시험을 앞둔 늦깎이 수험생, 직장인, 농부, 시민활동가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빠듯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노점상들은 어떨까. 일부 노점상들은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광장에 나온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노점상이 건넨 한 마디는 의미심장했다. 그는 "광장에서 외치는 소리가 듣기 싫고, 전혀 공감이 안 된다면 여기서 이렇게 장사를 할 수 있겠는 가"라고 반문했다.

어쩌면 광장에 모인 모든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든, 장사를 하고 있든 모두 한 덩어리의 의미 있는 '촛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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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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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LED 제품 판매 노점상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이 노점상에서는 촛불집회 용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 이재환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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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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