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김정일에게 쓴 편지, 흐뭇하게 읽었다"

[인터뷰]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 펴낸 신은미 선생

등록 2017.01.03 10:57수정 2017.01.0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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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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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창인 지난달 신은미 선생이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지난 2014년 1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그가 박근혜 정권에서 출국정지와 강제출국을 당하기까지 50여 일 동안 겪은 '마녀사냥식 종북몰이'와 국가보안법 수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덧붙여 2015년 여름, 일본 순회강연으로 알게 된 재일동포들의 애절한 조국 사랑 이야기도 실렸다.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모국에서 강제 추방당한 신 선생은 5년간 모국을 다시 방문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평화통일을 위한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의 인세 역시 전액 통일운동단체에 기부했다.   

몇 달 후 상식과 지성 그리고 기본교양을 갖춘 새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다면 신은미 선생의 강제추방 조치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박근혜 정권이 남긴 추악하고 부끄러운 유산을 조속히 제거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실추된 한국의 위상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신은미 선생과 모국의 한 식당에서 밥 한 술, 차 한 잔을 함께 하며 그때의 이야기를 마치 믿기지 않는 '옛날이야기' 하듯 나누고 싶다. 이런 소박한 꿈을 가슴에 품고 그에게 연락했다.

다음은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신은미 선생과 국제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표지
표지신은미
-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의 출간을 축하드린다. 이 책의 주요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 '박근혜 게이트'가 한창인 이 시기에 왜 이 책을 출간했는지?
"이 책에는 지난 2014년 11월부터 2015년 1월 강제출국 당할 때까지 한국에서 겪은 '마녀사냥식 종북몰이', 2015년 6월 일본 순회강연 때 알게 된 재일동포들의 애절한 조국 사랑 이야기, 그리고 소위 '종북콘서트' 사건을 바라보는 학자와 관련 인사 분들의 언론기고문들이 실려 있다. 그 외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저의 근황에 대한 인터뷰가 들어 있다. 이 시기에 출간을 한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출판사의 일정에 따라 지금 나오게 됐다."

- 지난 2011년 10월 첫 북한 여행 이후 지금까지 총 여덟 차례 방문했다. 책에서 북한을 "슬프도록 아름다운 나라"라고 묘사했다. 북한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 중 가장 슬펐던 것과 아름다웠던 것을 하나씩 소개하면?
"'슬프도록 아름다운 나라'라는 표현은 북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고 느낀 감정을 말한 것이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하를 보고 있자면 나라가 갈라져 있다는 슬픔이 밀려온다. 아름답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그 슬픔은 배가 된다. 그리고 슬펐던 또 하나는 북녘의 동포들이 남한에 비해 너무 가난하다는 사실이다.


북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북한 동포들의 순수한 인간성이었다. 북녘에는 잠시 만나 헤어지면서도 눈물을 글썽이는 심성 고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게 '북한은 어떤 나라냐'라고 물으면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답하곤 한다."

"사실 말했다고 폭탄 세례...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절대 아냐"


 2014년 12월 익산 통일토크콘서트 중 발생한 폭발물 테러
2014년 12월 익산 통일토크콘서트 중 발생한 폭발물 테러 오마이뉴스

- 지난 201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결국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 책에서는 "내 모국, 한국 방문 역시도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 돼버렸다"고 회상했다. 이 기간, 한국에서 느낀 가장 아름다운 것과 슬픈 것은 무엇이었나?
"정확히 표현하지면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내가 태어난 모국에서 북녘과 북녘동포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다가는 강연 중 '폭탄세례'를 받을 수도 있고, 검경의 수사를 받고 강제출국을 당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은 비참하고도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제가 '종북몰이'를 당하고, 매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장면으로 보고 통일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민족문제에 눈을 떴다고 알려왔다. 바로 이 점이 제게는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모국에서 겪었던 시련을 미소로서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제게 한국여행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 그동안 한국정부를 상대로 강제출국 취소 소송을 진행했지만 안타깝게도 패소했다. 북한 동포들이 갖고 있는 휴대폰의 숫자, 북녘 하천의 수질, 그리고 대동강맥주의 맛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한국의 국가안보를 어떻게 위협했는지 한국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증명했다고 생각하나?
"저와 함께 '통일 토크콘서트'에 출연한 황선씨는 제가 강제출국을 당한 후 곧 바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무려 50건에 대해 기소를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박근혜씨가 소위 '종북콘서트'라고 명명한 '통일 토크콘서트'였다. 황선씨는 그 중 49건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는데 물론 '통일 토크콘서트'도 무죄를 받았다. 결국 '북한 휴대폰의 숫자, 북녘 하천의 수질, 대동강맥주의 맛'이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한 것인데 저는 이를 한 편의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가 제기한 '강제출국 취소소송'에서 1심 패소 판결을 받았다. 공판 때 판사님께서 '통일콘서트 문제로 기소된 황선씨의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행정소송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기다려 보자'고 했고, 또 그 이후 황선씨의 재판에서 통일콘서트가 무죄로 판결이 내려졌으므로 저에 대한 '강제추방 및 입국금지'의 원인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당연히 무효 소송이 받아지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사법부가 이렇게 모순된 판결을 내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판결문 중 '국가보안법은 문제가 없지만 원고가 사회갈등을 야기했다'는 부분을 읽었다. 사회 갈등은 '언론사를 대동한 허위보도로 종북몰이를 한 주체'가 야기 했지 어떻게 제가 했다는 건지... 제가 추방된 이유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함으로서 사회의 안녕을 저해 한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국가보안법은 문제가 없는데...'라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우스갯소리로 '술은 안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맞다'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판결문 중 '미국에 생활의 기반이 마련돼 있는 상태이고, SNS와 출판물 등으로 본인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열려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확실히 모르겠다. 즉, '본국과 연락할 방법이 있으니 입국을 금지해도 된다'는 말인지? 행정법원의 이번 1심판결은 민변과 <경향신문>이 선정하는 '2016년 10대 걸림돌 판결'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게 인권을 존중한다는 나라인지, 그리고 한 해외동포의 북한여행담이 나라의 안위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한국은 허약한 나라인지... 저는 '대한민국은 절대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사이비 보수들이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란 거짓말에 국민들이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박근혜 정권은 끊임없이 '북한붕괴'를 염두에 두고 대북 정책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금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바로 박근혜 정권이다. 박근혜 정권의 대북관을 어떻게 평가하나?
"저는 북한을 관광한 정도라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북한붕괴론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다. 관광객 신분으로 북한을 본 제가 그 사회를 이렇다 저렇다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제가 경험한 북한은 아무리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해도 결코 일순간 와르르 붕괴될 것 같지는 않다.

한 사회가 붕괴될 때에는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정신적인 타락이나 나태 혹은 침체가 먼저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제가 본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들만의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좀처럼 알 수 없는, 혹 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그 뭔가가 지금의 북한을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에서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했다고 서방의 언론은 전한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아마 국가자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수백만의 아사자를 내고도 붕괴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는 '북한은 붕괴할 가능성이 없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북한붕괴론은 흡수통일론자들의 '희망사항'이 아닌가 싶다."

- 해외에서 '박근혜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박정희 신화라는 허상으로 포장된 자격미달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책임은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유권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해방 후 친일 반역자들이 다시 득세하게 한 결과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가 친일을 했다고 그 후손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득권을 유산으로 받은 후세들 역시 자신들 조상의 죄과를 부인하고 나아가 정당화하고 미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후세들도 그들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반역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6년 6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이 내부 워크숍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세 번 외쳐 논란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고위임원이었다고 밝히는 등 자신이 '친일파'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KEI 측은 자체 진상 조사 결과 참석자 중 해당 발언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 별도 감사 결과 직원 2명이 해당 발언을 들었다고 응답하면서 정직 2개월 처분이 내려졌다. -편집자 말).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일본군 장교출신의 민족반역자인 박정희씨가 대통령이 되고 수준에 한참 모자라는 그의 딸이 또 대통령이 되어 오늘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라고 말한다. 이는 곧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에게 하고 싶은말? 말이 통해야 하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얼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서자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이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얼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서자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이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연합뉴스

- 지난 2014년 당시 선생님이 조계사 '통일 토크콘서트'에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했다고 여러 언론이 동시에, 의도적 오보를 냈다는 비판이 많았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저는 당시의 오보를 분명히 누군가가 막후에서 조정 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여러 언론사가 동시에 같은 내용으로 오보를 낼 수는 없을 테니까. 언론이 국가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보도의 내용이나 질은 뻔 할 것이다. 일부 종편의 경우 (공중파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보는 사람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자주 있다. 앞으로 언론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는 없으나 언론의 자유 없이 민주주의는 절대 이룩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 요즘 상황을 보면 토크콘서트 수사와 신 선생님 강제 추방에도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든다. 어떻게 보시나?
"당시 서울에서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를 당할 때 주위의 일부 사람들이 '정윤회 문건 사건'을 '물타기' 하기 위한 공작이라고 말했다. 당시 저는 이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평범한 해외동포를 종북몰이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박근혜씨가 당시 비서관 회의를 열어 저의 통일 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대체 나라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을 텐데 이런 작은 모임에 대해 대통령이 언급을 하다니 말이다.

얼마 전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통일부 - 종북인사 신은미 동영상 내림', '종북콘서트 - 국민혼란 초래 왜곡', '종북토크 - 통진당 해산 찬성 쪽 여론변화 효과' 등 꼼꼼하게 기록돼 있는 걸 봤다. 강연장에서 발생한 익산 폭탄 테러 범인까지도. 메모 옆에는 한자로 '장'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아마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를 뜻하는 것일 것이다.

저를 조사하던 부장검사님께서도 제게 '신은미씨, 제 위에 총장 있고 그 위에 또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대충하고 어서 떠나라는 듯한 얘기를 했다. 물론 저를 위해 해 주신 말로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점점 확실하게 이해해 가고 있다. 요즘 최순실씨 사건을 보며 저도 '혹시'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동안 대통령이 허수아비였다니 저에 대한 종북몰이도 '최순실씨의 작품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농담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는 지금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머지않아 '자연인 박근혜'를 만나게 되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전혀 할 말이 없다. 대화란 상대가 말이 통하는 사람일 경우 가능하지 않겠는가?"

- 특별히 지난 2002년 당시 야당 지도자 박근혜씨가 쓴 방북기를 보면 평소 선생님의 글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를테면 "북한이 우리보다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듯 보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 정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약속을 지키는 믿을 만한 파트너" 등등.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글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사실 저는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북한주민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에 대해 뭔가 변화가 있을 거라며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주민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연에서 언급한 적이 있을 뿐이다.

종북몰이가 한창일 당시, 말씀하신 내용이 담긴 전단이 뿌려졌다는 뉴스를 들었다. 전단지는 '진짜 종북은 누구인가?'라고 묻고 있었는데 이점이 좀 아쉬웠다. 이 전단의 제목이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추구하는 우리의 대통령'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당시 생각했다.

그 외 박근혜씨는 지난 2002년 7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대화를 하려고 마주앉아서 인권 어떻고 하면 거기서 다 끝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는데 이를 읽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안 중 하나가 바로 북한 인권문제이기 때문이다. 저는 박근혜씨의 이런 자세를 적극 지지하고 싶었다.

요즘 박근혜씨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2005년 7월에 보낸 '다정한' 편지가 공개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통일부는 이 편지가 북측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편집자 말). 사람들은 이 편지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분노하지만, 저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 정성 가득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런 마음을 계속 유지했었더라면, 박근혜씨는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통일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익산 폭발물 테러, 고교생 단독범행 절대 아니다"

 폭발물을 들고 필자 앞으로 오던 테러범을 몸으로 막고 화상을 입은 곽성준씨를 찾아
폭발물을 들고 필자 앞으로 오던 테러범을 몸으로 막고 화상을 입은 곽성준씨를 찾아 신은미

- 지난 2015년 3월 주한 미 대사 습격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과 관련해 "목적·배후 등 모든 것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박근혜 대통령은 선생님을 향한 익산 사제 폭발물 테러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런 발표를 하지 않았을까?
"질문에 답을 드리기 전 우선 익산 폭발물 사건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다. 익산 폭발물 테러는 한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의 단독범행이 절대 아니다. 당시 강연자의 한 사람으로써 단상에 서있던 저는 똑똑히 보았다. 일찍부터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한 중년 남자가 강연이 시작된 지 몇 십 분이 지나자 범인에게 자리를 인계하고 뒤로 물러났다. 이 사람이 바로 공범들 중 한 명이다.

당시 뉴스에 의하면 '경찰이 범인의 집을 가택수색 했다'고 했지만 정작 범인의 아버지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범인 아버지의 말이 맞는다면 경찰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형식적인 수사를 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혼자 그 장소에 왔다는 범인 말과는 달리 누군가 자동차로 오군을 성당 앞 까지 바래다 준 사람도 있음이 밝혀졌다. 이 외에도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정황은 많이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테러를 사주했을까? 의문이다.

익산테러가 발생한 후 박근혜 대통령은 테러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오히려 통일 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 규정했고, 하태경 새누리당의 의원은 범인에게 책과 명함을 보내 마치 격려라도 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침묵은 무언의 동의'라는 말이 있다. 아마 박근혜씨에게 주한 미 대사 습격은 나쁜 테러이고 익산 폭발물 투척은 좋은 테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당시 테러에 침묵했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후일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 이제 올해 2017년은 누가 되었건 한국에는 새 대통령이 등장할 것이다.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를 한마디 해 달라.
"우선 사문화 되어버린 6.15선언과 10.4선언을 복구 바란다. 우리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남북관계라고 저는 믿고 있다. 아무리 경제발전을 이루고 선진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해도 분단체제 하에서는 언제든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북한을 여행하며 북측 판문점에서 남쪽을 바라본 적이 두 번 있다. 두 번 다 저의 느낌은 같았다. '이 판문점이 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지난 2015년 10월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자격으로 북한 정규군 열병식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저의 느낌은 같았다. '이건 아니다. 정말 이건 아니다. 남과 북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온 민족의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인터뷰를 요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덧붙이는 글 * 신은미 기자는 초중학교 시절 민간 외교사절단인 어린이 예술단 ‘리틀앤젤스’ 단원으로 세계 40여개 국 공연. 선화예술 중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성악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 석사 및 박사. 2011년 10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8차례에 걸쳐 10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2012, 네잎클로바) 출간.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 선정, 201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우수문학도서 취소.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 (2013년 2월). 제20회 통일언론상 특별상 수상 (2014년 10월).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 (2015, 네잎클로바) 출간. 제17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 (2015년 7월).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 – 재미동포 아줌마 '종북마녀사냥' 수난기> (2016, 도서출판 말) 출간. <오마이뉴스>에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 연재 중.
#신은미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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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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