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박근혜 탄핵, 노무현 때와는 다른 차원"

귀국 비행기에서 신문기자들 동행 인터뷰, "국내정치 경험 없어 두렵다"

등록 2017.01.13 11:44수정 2017.01.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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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역 도착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부부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역 도착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부부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귀국행 비행기에서 기내 인터뷰를 했다. 약 2시간 간 진행된 일부 신문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은 귀국을 앞둔 심경으로 '두려움'을 꼽았다. 여기에는 현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우려와 자신에 대한 의구심,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렘 등 복잡한 감정이 섞여있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매일경제> 등 일부 신문사와 한 인터뷰에서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려운 생각도 들고.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희망하는데 이 변화와 희망을 대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내 정치를 해본 경험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그는 인터뷰를 통해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과 자신만의 경쟁력, 오는 대선의 시대정신, 향후 정치적 연대 가능성 등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견해를 밝혔다.

한편 반 전 총장은 이날 14시간 비행시간 중 약 3시간을 잤고, 클라우드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을 읽었다고 한다. 이는 최근 직무정지 상태인 박 대통령이 읽고 있다고 청와대 측이 밝힌 책이기도 하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저자가 새로운 시대 화두를 던진 책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언론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일면식도 없었는데 내 얘기 다 이해하고 들어줬다"

반 전 총장은 최근의 민심과 관련해 "이번 사태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어떻게 정부가, 지도자가 이럴 수 있느냐 하는. (…) 국민들이 화가 나고 망연자실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박 대통령이 탄핵돼야 한다고 보는가'란 질문에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대통령도 잘못 있으면 탄핵 받아야 한다"면서도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제가) 사무총장이어서 국내 정치에 (관련한) 언급을 안했다"는 답이다. 다음은 반 전 총장의 말이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가원수가 탄핵 대상이 됐다고 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나라에,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다. 물론 대통령도 잘못 있으면 탄핵 받아야 한다. 헌법에 있고, 국민의 뜻이 그러니까. (제가) 사무총장으로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선 언급 안했다. 100만 촛불 시위할 때도 그렇고 그건 순수히 국내 문제다. 박 대통령이 탄핵돼야 된다, 안돼야 된다고 (제가) 말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반 전 총장은 또 "박 대통령이 그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다른 차원의 탄핵을 받고 있다"면서 "제가 여러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에게 '제발 국민의 소리를 들으라'고 잔소리도 많이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민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얘기를 박 대통령에 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을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났다. (그래서) 만날 때 그런 얘기하기가 힘든 면이 있다"는 답변이다.

그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제가) 청와대 외교보좌관으로서, 외교부 장관으로서 어떤 참모보다 소신 있게 제 생각을 전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언급했다. "(과거) 노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외교안보보좌관이 됐다. 노 대통령에게는 개별적으로 간언을 많이 했는데 내 얘기를 다 이해해주고 들어줬다. 그런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역사 속 구절을 인용해 자신이 박 대통령에게 '소신 발언'을 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소신 발언은 (대통령과의) 신뢰관계가 생기면 가능하다. '정관정요'(중국 당태종이 신하와 정치를 논한 문답을 정리한 책)에 보면, '왕의 신뢰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간언을 하면 죽는다'는 대목이 있다. 왕이 믿을 정도로 신뢰를 하면 직언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정상들이 '당신이 (한국 대통령) 되면 우리와 관계 좋겠다'고 하더라"

반 전 총장은 특히 자신의 강점으로 '외교력'을 꼽았다. "사무총장을 10년 해보니 어떤 나라는 왜 실패했고 어떤 나라는 왜 잘하는지 눈에 보인다. 10년간 각국 지도자 수백 명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면서 느끼고 배운 점이 많다. (…) 저는 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강점"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반 전 총장이 귀국 후 대국민 메시지에서 재차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또 "세계 각국의 모든 지도자들이 제 얼굴과 이름을 안다. 많은 정상들이 저에게 덕담을 건네더라. '당신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면 우리와의 관계가 참 좋겠다'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상당히 고무됐다. 제가 혹시 기회가 되면, 국민의 신임을 받으면, 이제까지 떨어진 (한국의) 신인도는 바로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역시 자신의 외교적 경험과 자산을 강조하는 발언이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0년간 임기 만료 후 '이룬 게 없다'며 내·외부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사람의 진심을 폄훼할 수 있나 싶어 억울하고 야속하고 답답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잘한다는 건 뉴스가 안 된다", "일부 직원의 불만을 들은 영미 계통 언론들이 비판적 기사를 내보냈다"라며, 일부에서는 자신의 모국(한국)을 거론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건 일종의 인종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근면성과 성실성, 사심 없음을 강조했다. "지난 10년간 어떻게 (유엔 사무총장직을) 해왔는지 말씀드리면 여러분들 놀라실 거다. 진짜로 사심 없고, 개인 생활도 없고 오로지 공무에만 집중했다. 1년 365일을 주말도 없이 일했다. 그런 노력으로 하면 (대통령 도전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란 설명이다. "UN총회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 정상들이 '온 더 레코드'로 저를 칭찬했다"고도 덧붙였다.

a 현충원 찾은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전직 대통령 묘역에 이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현충원 찾은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전직 대통령 묘역에 이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참배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반 전 총장은 그러면서 대선 도전과 관련해 "그런 면을 감안할 때 제 자신이 국민 신임을 받아볼까 테스트를 한번 해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정치 경험이 없다는 비판을 의식하는 듯 "물론 (외교적 경험과) 내치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저는 아주 순수하고 꾸밈이 없다. 남을 위해 먼저 희생하고 세상의 어떤 계층과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라며 장점을 다시금 부각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을 '진보적 보수'라고 소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수주의자로 놓는다. 그런데 한국의 지도층 중에 저처럼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의미) 인권 옹호 등, 자신이 그간 성소수자와 사형제 등에 대해 진보적인 견해를 밝혀 왔다고 역설했다.

"사회 분열과 갈등 조정하는데 소셜미디어 악용돼"

그는 오는 대선에서의 시대정신으로 '대통합'을 꼽기도 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정부가 잘 가야하고 대통합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 이게 시대정신이자 정의"라는 말이다. 그는 그러나 "특권계층이 이 사회에 너무 많다"면서 "심지어 노동계도 특권층"이라고 말했다. "자기주장만 계속 해대고 그 주장을 하다가 안 되면 거리를 뛰쳐나와 억지를 부리고 하면 대타협이 안 된다"라는 설명이다.

시대정신으로 꼽는 '대통합'을 어떻게 이룰지 묻자 그는 '고위급 협의체'를 내놓았다. 그는 "사회 원로나 각계 대표를 모아 대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고위급 협의체를 만들고 국회의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해 머리를 맞대는 방안이 절실하다"면서 "귀족 노동자 문제와 노동개혁 문제도 예외일 수 없다"고 '노동자도 특권층' 부분을 강조했다. 

정치적 연대와 관련해서는 "김종인, 안철수, 손학규 등 여러 인사를 만나서 실질적인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은 어떤 정당에 바로 속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선을 그었다. 그는 또 "2~3주 정도 각계 각층과 만나 대화를 나누겠다. 정치 지도자는 물론이고 국민들 말씀도 경청해, 바닥 민심을 들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언론에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언론이 이 사회의 연결고리"라며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다만 그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와 관련해 "사회 분열과 갈등을 조정하는데 소셜미디어가 악용되고 있다. 얼굴이 안 보인다고 말을 막 해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소셜 미디어가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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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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