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15일 <한겨레신문> 2면에 실린 반기문의 면회 거부 기사.
한겨레신문
'케네디 인권상'을 받은 양심수를 만나려는 케네디 조카의 면회를 반기문이 거부하는 장면은 매우 아이러니했다. 반기문은 1962년 충주고 3학년 때 국제적십자사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했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 방문단을 반갑게 맞았고, 반기문은 그를 만난 뒤 외교관을 꿈꾸게 되었다.
물론, 김근태의 면회를 거부한 것이 꼭 반기문 개인의 판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정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을 따름일 터이다. 그렇다면 훗날 반기문이 비민주적 정권을 향해 '양심수 석방'을 외친 행동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나는 양심수를 가두는 데 일조했지만, 당신들은 그러지 마라?
2010년 2월,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치의 석방 신청을 기각하자, 반기문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미얀마의 모든 정치범과 정치적 과정에 참여했던 민주 인사들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임기를 마치기 직전까지도 예멘을 포함한 각국의 정치범, 사회활동가, 기자 등 양심수를 풀어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말이라는 것은 얼마나 공허하고, 비겁하고, 또 편리한가.
은사들의 양심수 구호활동을 전두환 정권에 보고반기문이 노태우 정부에 바쳤던 충성심이 얼마나 진실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서슬 퍼런 분위기 속에서 마지못해 한 선택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사정권 시절 반기문의 구체적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사 데이터 베이스를 검색해도 그 시기의 반기문을 다룬 기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의 눈 밖에 나지 않고 승진을 거듭했다는 점에서, 그가 권위주의 정권에 협조적이었음은 분명하다. 반기문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전두환이 해외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공항까지 마중인사를 나가곤 했다.
지난해 4월, 80년대의 기밀 외교 문서가 공개되면서, 반기문이 그 시기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몇 가지 단서가 드러났다. 1985년 반기문이 미국에서 연수를 받던 중, 김대중 관련 정보를 정부에 보고한 것이다.
그로부터 5년 전인 1980년,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세력은 시민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었다. 공안당국은 재야인사들을 대거 잡아들였고, 김대중을 내란혐의로 기소했다. 공안당국은 관련자들을 고문해 진술을 조작한 뒤 김대중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 판결에 대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유엔 인권위원회 등의 국제 단체가 문제를 제기했고, 요한 바오로 2세 등 전세계 지도자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도널드 그레그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 국방장관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등이 항의해 오자, 미국의 지지가 절실했던 쿠데타 세력은 형집행을 강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뒤 1982년 12월, 김대중은 고문 후유증 등의 치료를 겸해 미국 망명 길에 나선다. 하지만 그는 2년이 조금 지난 1985년 초에 귀국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했다. 김대중의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하던 전두환 정권이 그의 귀국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해 2월에는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한 양심수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미국 지식인들은 그의 무사 귀국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두환 정부에게 전달하기로 했고, 여기에는 하버드대 교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반기문은 외교부 참사관으로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연수중이었다. 학교 신문이 이 사실을 보도하자, 반기문은 이 사실을 수집해 보고했고, 이는 "김대중 동정"이라는 제목의 문서로 만들어져 전두환 정부에 공식 전달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반기문이 군부에 동정을 보고하던 김대중은 당시 유엔이 석방을 요구하던 양심수였다.
반성 모르는 반기문2006년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다시 미국에 왔다. 그리고는 세계의 억압적 권력을 향해 양심수를 석방하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이렇듯 과거 속 자신의 반대쪽에 서서 행동하게 된 반기문, 그는 자신의 상반된 모습에서 모순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대중 보고 문건이 공개된 직후, 반기문은 제주도에서 열린 관훈클럽 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해당 문서에 대한 논란을 "말도 안되는 비판"이자 "흠집내기"라고 일축했다. 자신은 그저 "대학신문에 난 것을 카피해 보냈고, 학생도 아니고 펠로우로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어서 보고한 것"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반기문은 더 나아가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해서 한 것도 아니고 정부,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을 관찰해 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판은커녕 오히려 칭찬 받을 일이라는 투였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제가 따라다니면서 그런 것도 아닌데 그런 것(언론 보도)을 보면 기가 막힌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