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연탄불 돼지불고기

등록 2017.01.18 14:41수정 2017.01.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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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병영면 내 연탄불 돼지불고기 ⓒ 이상명


6년 전 시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암 선고 두 달 만이었답니다. 갑작스러운 사망에 가족 모두가 패닉에 빠졌지요. 돌아가시던 순간 중환자실 중에서도 격리실에서도 자식들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리고는 다음 날 돌아가셨습니다. 흐느끼는 세 분의 시누들 사이로 장남인 남편이 눈물을 참으며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던 중 쓰러지기도 하고요.


제게 연탄불 돼지불고기는 특별한 사연이 있어요. 정말 맛있기도 하지만 이 불고기를 먹을 때면 아버님이 생각나거든요. 부모님도 서울 분이시고 저도 성인이 될 때까지 서울에서만 살다가 전라도 남자를 만나 30살에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 후 시댁에 휴가 차 갔던 날이었어요.

정말 인자하시고 좋은 분이시지만 구두쇠라는 별명을 얻으실 정도로 돈을 잘 쓰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시어머니께서 아버님에 대해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딸 셋을 낳고 네 번째에 저희 남편을 낳았다면서 그 시대는 왜 그랬는지 딸이 얼마나 이쁘고 소중한 존재인데 딸만 낳았다고 먹고픈 거 입고픈 것을 남편에게 말조차 꺼내지도 못했다 하셨어요. 아들을 낳고 너무 이뻐서 돌사진을 찍어주고 싶어도 "넘들 다 낳는 아들 혼자만 낳았데? 하시면서 찍어주지도 않았다고 하셔요.

얼마나 서운하셨는지 제가 시집오자마자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랬던 시아버지께서 큰며느리인 제가 임신을 하고 첫 휴가 차 시댁에 갔더니 외식을 시켜주시더라고요. 그게 바로 저 '연탄불 돼지불고기'였어요. 전남 강진 병영면에 위치한 '수인관'이라는 식당이었는데 지금은 리모델링하여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그 때에는 옛날 건물에 쪽마루가 있고 작은 방이 칸칸이 있어서 커다란 상에 음식을 가득 차려서 방으로 두 명이 들고 들어오던 때였어요. 입구에서는 연탄불 위에 돼지불고기를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요.

저는 그저 맛있게 먹었고 푸짐한 상차림에 다시한번 놀랐고요. '역시 전라도의 인심이고 손맛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상차림이었으니까요. 푸짐한 돼지불고기에 밑반찬만 해도 20가지가 넘을 정도였거든요. 서울에서 웬만한 한정식보다도 푸짐하고 잘 나왔던 기억이에요. 지금은 가격이 올랐지만 당시에는 인당 5천원이였는데 엄청난 음식 가짓수와 양에 그 날의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할 정도예요.

그저 임신한 며느리 맛있는 식사 한끼 사주신 거겠거니 했던 저와는 달리 시어머니와 남편은 많이 놀랐다고 해요. 절대 외식은 하지 않으시는 분이 시아버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집에 밥 있는데 왜 쓸데없이 돈 쓰냐며 생신 때에도 외식을 안하셨데요. 9살에 시할아버지를 여의고 그 때부터 아이스크림통도 메시고 목수부터 오이 장사, 농부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라고 하셨어요. 그만큼 돈의 소중함을 아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평생 피땀흘려 일하셔서 땅도 사고, 집도 크게 지으시고, 큰아들도 장가 보낸 후 이제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으셨었나 봅니다. 5000원의 돼지불고기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줄 그 때는 몰랐어요. 무뚝뚝하시고 표현하지 않으시는 분이지만 제가 출산한 후에는 며느리의 산후조리를 위해 산에 가서 잔대도 캐다가 보내시고 문어도 삶아 보내셨던 분이셔요. 소고기 안심도 보내시고요. 그런데 막상 제 앞에서는 말 한마디 안하시고 조용한 분이셨어요.

손주가 태어나고 마냥 행복할 것 같던 저희 가족에게 불행이 닥쳤어요. 저희아이가 6살이 되던 그 해 2월 기침이 심해지시더니 그치지 않아 서울대학교 병원에 내원한 날 소세포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치료를 해도 1년, 하지 않을 경우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망연자실해 하던 시누들과 남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이제야 숨통 트이고 모두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에요.

그 날 늘 근엄하시던 시아버님이 저와 큰시누, 시어머니가 계신 병실에서 흐느껴 우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시어머니도 큰시누도 저도 모두 울었네요. 그래도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희망으로 아버님께는 정확한 병세를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기침 외에는 평소 건강하신 모습 그대로였거든요. 항암도 씩씩하게 잘 받으셨고 마지막 항암 후에는 고향에 내려가 황토집을 지어서 사시겠다고 하시기도 하고요.

그런데 방사선 치료 후 기력을 찾지 못하시고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반복하더니 급기야 중환자실로 옮긴 며칠 후 운명하셨던 거예요. 효도할 틈도 없이 '아버님 너무 사랑해요'라는 말할 틈도 없이 갑자기 가버리셨어요. 명절이나 휴가 차 내려가더라도 한동안 연탄불 돼지불고기는 먹지 않았습니다.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서요. 큰아이가 6살 되던 해에 돌아가신 후 또 6년이 흘러서 이제 큰아이가 12살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사주셨던 연탄불 돼지불고기 그 끝내주는 맛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어요. 아버님 구두쇠 아니에요. 제게는 최고로 멋진 '그레이 신사'로 영원히 남아있어요. 아버님 사랑해요.

#연탄불돼지불고기 #돼지불고기 #폐암 #소세포폐암 #전남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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