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소망 담은 '촛불'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과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모아두고 있다.
권우성
촛불을 두고 누군가는 항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어찌 됐든 우리는 역사를 새로 썼고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태어나서 처음 보수가 분열하는 것도 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무소불위 권력자로 느꼈는데, 청문회 생중계에 나오는 것도 봤다. 물론, 최근 대통령 변호인단의 입장이나 우병우의 태도는 여전히 분노를 일으킨다. 우리의 삶으로 눈을 돌려보자. 촛불 정국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매주 촛불을 들었다. 하지만 황금 같은 주말을 거리에서 보내고 월요일이 찾아오면 청소년은 대학입시에, 청년은 알바와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했다. 노동자들도 회사 눈치를 보며 숨죽여 지내야 했고 농민들은 쌀값, 조류인플루엔자를 걱정해야 했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도 마찬가지다. 이전과 똑같은 차별과 배제, 폭력을 견뎌야 했다.
우리는 모두 토요일 밤이면, 스스로 주권을 외치는 주권자였다. 하지만 다음 날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날과 다르지 않은 억눌린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힘들게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두 달간의 대규모 촛불집회는 기적이었다.
아시다시피 2016년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였다. 구호도 단 하나였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그런데, 난 여러 차례 집회에 참여하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는 본 대회에서 '세월호를 즉각 인양하라', '내가 백남기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라' 등의 구호가 자주 외쳐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정농단 시국에 누구보다 앞장서 싸운 사람들인데, 이들 삶의 구호는 왜 더 크게 울리지 않는지 답답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다양한 사람들의 구호를 함께 외쳐야 한다.
둘째는 '병신', '년' 같은 비하 표현이 여전히 발언대에 나왔다는 점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절반이 여성이고, 많은 여성단체들이 촛불을 들었다. 서울 광화문역에선 5년 넘게 장애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집회가 거듭될수록 참가자들의 비판을 수용해서 자유발언 시작 전에 미리 약속하고 경고도 해 문제가 발생하면 정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현재 민주주의는 전 세계적인 진리와 다름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권'이라는 개념도 정립됐다. 우리는 수백만 명이 모여 하나의 구호를 외치며 민주주의의 위력을 보여줬다. 매일 TV에 나오는 국정농단 부역자들의 소식을 지켜보며, 탄핵안이 헌재에서 통과하길 바라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 이야기, 존중받으며 인간답게 살아야 마땅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펼칠 때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선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지기 이전부터 투쟁했던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 경찰과 보수언론은 2015년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공권력으로 무참히 짓밟았다. 2016년은 어떤가? 거의 10배나 늘어난 인원 탓에 별다른 수를 쓰지 못했다. 오히려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준 '일등 국민'이라면서 칭찬했다. 내가 2015년 '테러리스트'에서 1년 만에 '일등 국민'이 된 이유다.
하지만 나는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일등 국민이 되고 싶지도 않다. 2015년과 2016년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사람이고 국민이다. 무능하고 부정부패한 정치가 낳은 정치 혐오, 정부와 대기업이 오래전부터 생산한 노조 혐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폐해인 소수자 혐오가 만나서 국민에게 등급을 매겼다. 우리는 모든 혐오를 양산한 자들에 대행해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 노동자, 농민, 성소수자, 여성, 청년과 연대해야 한다. 함께 이들의 구호를 외쳐야 한다. 지금과 다른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다.
광장 토론도 본격화하고 정례화 돼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자기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청와대와 국회의 탁상공론을 충분히 봤다. 방송토론도 달라져야 한다. TV에서 신년토론회가 전파를 타는 모습을 보면, 수십 명의 시민을 초대해 놓고 한두 명만 질문을 받는다. 시대가 지나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나는 지금,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다. 방송 토론에서도 시민 패널석이 할당돼야 한다.
만약 언론에서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시민이 직접 광장에 나와서 더 민감하고 피부에 와 닿는 삶을 주제로 토론해야 한다. 대선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최저임금, 성과급제, 국정교과서, 위안부 문제, 군대, 낙태, 각종 혐오 발언에 대해 토론하고 논의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대통령만 불통이 아니라 사회도 불통이다. 이제 촛불을 넘어 우리의 더 많은 생각과 힘을 모아야 한다. 대규모 집회의 진행방식도 변호해 더 참여적이고 진취적인 공론장, 재판장,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