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이니까 밥을 적게 먹으라고?

[입영부터 전역까지 ⑥] 항상 배고팠던 신병훈련소

등록 2017.01.25 10:48수정 2017.01.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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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4년 1월 27일 경기도 파주시 육군 28사단 신병교육대대 병영식당에서 훈련병들이 식사하는 모습.
지난 2014년 1월 27일 경기도 파주시 육군 28사단 신병교육대대 병영식당에서 훈련병들이 식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배고팠습니다. 분명히 보충대 시절보다는 식사량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신병교육대는 그만큼 고된 훈련이 많았죠. 아무것도 하지 않던 보충대와는 하늘과 땅 차이죠. 훈련병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며 잠자리에 듭니다. 이 때문에 훈련병들끼리 분쟁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왜 우리 소대만 적게 주는데!"

신병교육대는 하루하루가 훈련입니다. 간단한 제식훈련부터 혹독한 종합각개전투까지, 각양각색의 훈련을 주차별로 시행합니다. 고된 훈련이 끝나면 배고프기 마련입니다. 식사하러 취사장으로 향하면 배식이 시작됩니다. 배식은 4개 소대가 일주일간 돌아가면서 합니다.

그 날도 고된 훈련을 마친 뒤였습니다. 사격훈련, 행군, 화생방 등의 '빡세기로 유명한 훈련'을 하던 주였죠. 당연히 몸은 피곤하고 배는 더욱 고픕니다. 당시 3소대가 배식을 담당했고 제가 속한 2소대는 마지막 차례였죠. 나머지 소대가 식사를 마친 후에야 차례가 왔습니다.

매우 배가 고픈 2소대 훈련병들은 빠르게 줄을 섰습니다. 저 역시 식판을 들고 줄을 섰죠. 당시 메뉴는 고기였습니다. 그렇기에 배가 고픈 훈련병들은 매우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기를 딱 1조각씩만 주는 겁니다. 그래서 2소대 훈련병들은 모두 어이없어 했죠. 화가 잔뜩 난 2소대 훈련병 하나가 항의했습니다.


"왜 우리 소대만 적게 주는데!"

그러나 배식담당 3소대 훈련병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양이 적다. 그래서 그렇다.


"전우끼리 이따위로 그럴 거야?"

우리는 배고팠습니다. 3소대가 배식을 맡은 일주일 동안 말이죠. 화가 난 2소대 훈련병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떠돌아다녔죠. 3소대가 고의적으로 타 소대의 반찬을 줄인다는 겁니다. 배식 담당 소대는 먼저 식사를 합니다. 남은 양을 타 소대에게 배식합니다. 즉, 3소대는 자신들이 식사할 때 엄청나게 퍼먹고, 적은 양만 타 소대에게 준다는 것이죠.

이 말은 1소대와 4소대에도 널리 퍼졌습니다. 순식간에 3소대는 공공의 적으로 전락했죠. 자기 소대만 배가 불린다는 것은 비난받기 충분합니다. 특히 힘든 훈련이 있는 주였기에 더욱 분개했죠. 타 소대는 이를 갈며 3소대 배식 기간이 끝나기만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일이 터졌습니다. 어김없이 배식을 적게 주던 3소대. 배식을 받던 타 소대 훈련병이 항의를 했습니다. 3소대 훈련병은 늘 하던 대로 '양이 적다'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러자 항의를 하던 훈련병은 식판을 들고 지나가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전우끼리 이따위로 그럴 거야?"

울분이 터지던 그는 크게 소리를 질렀죠.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끼리 배부르면 다냐? 전우한테 그렇게 하니까 좋냐!"

순식간에 상황이 악화됐죠. 그동안 불만이 많던 다른 훈련병들도 끼어든 겁니다. 방관하던 조교들도 끼어들었죠. 각 소대 조교들도 '너희 3소대가 너무하긴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요.

훈련병이니까 적게 먹으라고?

사실 3소대도 나름 억울하기는 했습니다. 배식소대가 많이 먹는 것은 다른 소대도 마찬가지죠. 3소대에 속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본인들도 배식을 위해서 적게 먹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3소대는 '힘든 훈련이 많은 주'에 배식을 담당했습니다. 이 때문에 평소보다 훈련병들은 배가 고프게 마련이죠. 많이 먹어도 적게 느껴집니다.

3소대는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타 소대는 이기적이라고 비난했죠. 그런 불편한 기류가 흐를 무렵, 신병교육대 중대장의 정훈교육이 다가왔습니다. 교육을 마칠 무렵에 중대장은 '궁금한 점이 있는 훈련병은 손을 들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훈련병이 손을 들었습니다.

사뭇 진지한 표정의 훈련병. 모두 무슨 질문인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훈련병의 질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 질문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죠.

"중대장님. 평소에 군인은 평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저희 훈련병들과 조교들은 식사량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겁니까? 저희는 늘 배가 고픕니다."

매우 용감하게 나선 그 훈련병의 질문. 알고 보니 조교를 비롯한 신교대의 '기간병'들은 훈련병보다 식사량이 많다는 것이죠. 단순히 눈에 보이는 양뿐만이 아니라, 개 수별로 나오는 빵이나 반찬도 훨씬 많습니다. 조교를 비롯한 일반 병사들이 많은 식사를 제공받는 것이죠.

모두 중대장을 응시했습니다. 과연 중대장이 뭐라고 할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건 오해다. 너희들이 오해한 거다. 식사량에 차별은 없다.' 이윽고 중대장은 입을 열었습니다. 과연 뭐라고 말했을까요? 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맞다. 중대장이 적게 주라고 했다."

230명이 넘는 훈련병은 모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모든 분쟁의 원인은 중대장에게 있는 것이죠. 태연하게 중대장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너희는 훈련병들 아니냐? 훈련병은 고생을 좀 해야 하니, 중대장이 좀 적게 주라고 했다. 대신 조교들에게 더 많이 주라고 했다."

질문을 했던 훈련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주저앉았습니다. 모두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훈련병이라고 '정해진 식사'보다 적은 양을 강요받아야 했을까요? 아니, 훈련병의 동의도 없이 무단으로 식사를 적게 주는 것이 옳을까요?

훈련병에게 식사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한 활력소입니다. 힘든 훈련을 견디게 해주며,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런 식사를 지휘관 마음대로 양을 줄였습니다. 전우애는 무너지고, 소대 간의 반목이 오히려 심해졌죠.

이후 중대장은 '군 인권'에 대해서 교육했습니다. 그러나 그걸 몇이나 집중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걸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러면서 무슨 놈의 군 인권이... 밥이나 많이 줘라!'
#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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