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이이 유적에서 찍은 신사임당 모자.
김종성
송시열은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바꿀 목적으로 신사임당 그림에 대한 기존의 비평들을 깎아내렸다. 그중 하나가 앞서 소개된 소세양이란 인물에 대한 헐뜯기였다. 소세양은 신사임당의 그림에서 승려들이 소나무 정자에서 한가롭게 바둑을 두는 장면을 보고 이를 묘사하는 글을 남겼다. 이것이 그의 문집인 <양곡집> 제10권에 남아 있다.
1676년에 70세 나이로 <사임당 산수화 발문>이란 비평문을 쓰면서, 송시열은 소세양의 글을 깎아내렸다. 고매한 부인의 그림을 두고 승려를 운운한 것은 무례하고 공손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소세양은 신사임당의 그림을 글로써 그대로 묘사했을 뿐인데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판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송시열은 신사임당의 그림을 두고 "장난삼아 그린 그림 같지는 않다"는 말을 했다. '봐줄 만한 그림이다'라는 식의 평을 남긴 것이다. 신사임당 자체를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사임당의 예술을 깎아내릴 목적으로 이렇게 폄하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송시열은 신사임당이 어진 덕을 가졌었기에 율곡 같은 성현을 낳을 수 있었다며 그한테 현모양처 이미지를 씌우려 했다.
서인당 지도자 송시열이 이렇게 하자, 지지자들도 이 대열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서인당 학자나 정치가들도 신사임당의 삶이나 그림에서 현모양처 이미지를 찾아내는 데 가담한 것이다. 저명한 화가의 그림을 보고 화가나 작품을 칭송하는 게 아니라, 화가의 아들을 칭송하고 화가의 모성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이상한 현상이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일례로, 서인당 출신 학자 겸 관료인 김창흡은 <삼연집>이란 문집에 남긴 글에서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런 아들이 태어났다'며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로 평가했다. 숙종 후반기부터 서인당과 그 후예인 노론당의 권력 기반이 다시 공고해진 가운데 이런 식의 평가가 줄을 잇다 보니, 신사임당은 훌륭한 화가에서 훌륭한 현모양처로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신사임당의 현모양처 신화가 탄생했고 이 흐름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사임당은 분명 훌륭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머니라는 직분 못지않은 중요한 직분이 또 있었다. 그것은 화가가 되어 예술적 소질을 발휘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분야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뒀고, 안견 다음가는 화가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서 화가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누구의 어머니' 이미지만 씌우는 것은 그에 대한 올바른 예의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화가에 대한 만행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서인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만 않았다면, 신사임당은 취미로 그림을 그린 현모양처가 아니라 시대를 풍미했던 훌륭한 화가로 우리 머릿속에 남게 됐을 것이다. 그림에 집중하는 그 바쁜 와중에도 자녀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은 부지런한 화가로 우리 기억에 남게 됐을 것이다. 새로 방영되는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그의 진짜 면모가 좀이라도 더 드러나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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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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