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취업이 최고인 사회는 이제 그만
권우성
안 봐도 뻔했다. 부모님 세대에게 있어서 삼성은 '출세'의 또 다른 표현이자 성공신화 그 자체이다. 자기 자식이 아무리 예전에 변변치 못했어도 삼성에 입사만 하면 1등 신랑, 신부감이 된다. 소위 '삼성공화국'을 만든 건 정부와 삼성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윤리가 어떻든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라는 장삼이사들의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삼성이 이번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되어 위기를 맞았다. 최순실과 커넥션에 대한 증거가 끊임없이 나오면서 최고 경영자가 구속될 지경이다. 이는 삼성을 피라미드 최고 정점으로 여기고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충격일 수밖에 없다. 내가 삼성이 지배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그나마 적응하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삼성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삼성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삼성을 위시로 하는 재벌 중심의 경제 밖에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현재 부모님 세대들은 두렵다.
설날 밥상머리에서 할 이야기들한정된 정보만을 가지고 다가오는 시대에 어떻게 대처할 줄 몰라 두려워하는 부모님 세대. 우리는 그들과 설날 떡국을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우선 부모님들에게 되도록 많은 정보를 드려야 한다. 그들이 보는 보수매체에서 여간해서 다루지 않는 치졸하고 어처구니없는 사실들을 더 조목조목 알려야 한다. 실제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던 사람들에게 의외로 영향력이 클 수도 있다. 현재 대통령 탄핵의 근거가 되고 있는 사항들은 오히려 통치행위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지만, 대통령 개인의 어처구니없는 일탈은 옹호해 주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예컨대 나의 경우는 부모님께 박근혜 대통령이 순방을 다닐 때 변기를 굳이 새것으로 교체하고 특수한 화장대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들려드렸다. 부모님은 매우 놀라셨고 이후 대통령을 보는 시선은 좀 더 냉정해졌다. 아무리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이에게 이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들은 이 모든 것을 대통령이 암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갈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정신과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부모님들께 우리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이 정경유착을 빌미로 전체 사회를 관리하고 빈부격차가 극에 달해 꿈을 꾸기 힘든 사회는 이제 지양하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기회를 얻고,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 빈부격차가 크지 않고 누구든지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사회. 원칙이 지켜지고 꿈을 꿀 수 있는, 그래서 '정의'가 실현되는 그런 곳에서 나의 자식들을 키우고 싶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 출산률이 올라가고 인구절벽에서 벗어나 현재 기하급수로 많아지고 있는 노인들을 그 다음 세대가 책임질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 모든 시도가 부모님들에게 쇠귀에 경 읽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봉착한 곳이 지금의 상황이며, 우리 모두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그까짓 촛불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냐고 묻거든, 그래서 이만큼 세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자. 부모님이 그래도 세상은 안 바뀐다고 회의적으로 말해도, 그래도 우리는 이만큼 세상을 바꿨다고 이야기하자. 어쩌면 이번 설날 밥상 이야기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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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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