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
어렸을 적 엄마는 명절날이면 항상 분주했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와 조카에 우리 다섯식구까지... 모두의 보호자였다. 우리 세 남매는 항상 엄마 옆에서 명절 준비를 돕곤 했는데 특히 손재주를 잘 물려받은 둘째딸인 나는 추석 땐 송편, 설날 땐 만두를 곧잘 만들어내는 예쁜 딸이었다.
다들 힘들게 살던 시절이었지만 일년에 두 번 다른 손님이 찾아오는 명절은 늘 기다려지는 날이었고 언제나 즐거운 날이었다.
그땐 몰랐다. 우리 엄마는 왜 자기 집(외가)에 가지 않는지. 남들은 차례를 지내고 나면 두손 가득 선물을 챙겨 친정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늘 우리 가족 옆에 있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우리 엄마처럼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는 결혼 후에도 친정엄마와 함께 사는, 남들이 꽤나 부러워하는 행운아다. 게다가 명절날 가끔 출근하는 남편을 둔 덕에 시댁에 꼭 가지 않아도 되는 며느리이기도 하다.
그것을 핑계로 나는 언젠가부터 명절이면 무조건 엄마의 집(아이들에게 외가지만 엄마의 집이라 부르기로 했다)에서 남은 명절날을 보내자고 이야기했다.
셋째며느리지만 시댁 식구들 챙기느라 맏며느리 노릇하느라 평생 한 번도 마음 편히 찾아가지 못했던 엄마의 집에 이제는 보내드리고 싶었다.
물론 지금은 엄마가 '아빠, 엄마' 라고 부를 부모님이 계시진 않다(엄마의 아버지는 꽤 오래전에 엄마의 엄마는 8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차로 이동할 때 빠르면 3시간 반, 길이 밀리기라도 하면 5시간에서 6시간 장거리 운전을 해야한다(강원도에서 창원까지).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와도 '우리 딸 왔어!!'라고 반겨줄 부모님은 없다. 남편을 일찍 하늘로 보내고 엄마의 부모님을 정성껏 모셔준 나의 외숙모 한분이 반겨주실 뿐이다. 그래도 찾아갈 집이 있다는것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 엄마도 엄마의 집에선 여전히 예쁨받는 막내딸인데... 우리 엄마가 만두 잘 빚는다고 칭찬해주고 예뻐해주던 나처럼 말이다. 나는... 우리 엄마가 왜 진작 엄마의 집에 찾아가지 못 했는지 두아이의 엄마가 돼서야 알았다.
그땐 먹고 살기 힘들어서, 지금은 먹고 살 만해서..
그래도 아직은 찾아갈 '엄마의 집'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명절날 엄마의 집으로 가는 길을 함께 할 생각이다. 나도 우리 엄마 딸이니까... 며느리이기보다 딸이 먼저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지금 창원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우리 엄마가 엄마의 집에서 편히 잠드신 모습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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