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놀이, 해바라기...와당 통해 엿본 고대인의 삶

[서평] <와당의 표정>

등록 2017.02.01 14:44수정 2017.02.0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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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기와지붕은 암키와와 수키와로 이어 덮고 그 끝을 각각 암막새, 수막새라 부르는 막새기와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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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무늬수막새.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이다. ⓒ 국립경주박물관

얼굴무늬수막새다. 수키와 끝을 장식한 수막새, 즉 막새기와다. '천년의 미소'로도 많이 알려졌다. 경주를 여행하다보면 로고로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인지 기와라는 사실까지는 몰라도 한 번쯤 본 사람들은 많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한 유물이다.

기와지붕은 암키와와 수키와로 이어 덮고 그 끝을 각각 암막새, 수막새라 부르는 막새기와로 마무리한다. 막새기와 앞쪽에는 연꽃이나 귀면 등 각종 문양이나 글씨를 새겼는데, 이처럼 장식한 막새기와를 와당이라고 부른다. 


이 얼굴무늬수막새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신라 영묘사지에서 출토됐다. 출토될 무렵 연꽃이나 악귀를 물리친다는 귀면 등을 새긴 와당이 대부분. 이처럼 여인의 온화한 미소를 새긴 것은 처음 발견된 것이라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우리 문화재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이 수막새도 일본인 소유가 되어 1940년에 일본으로 반출된다. 이런 수막새가 우리 곁에 올 수 있었던 것은 국립경주박물관 전신인 국립박물관 경주분과장 박일훈 관장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이라고 한다.

출토 2년 후 한 일본인 학자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이 수막새 관련 글을 기고했다. 박일훈 관장은 1964년부터 그 일본인 학자와 수막새를 수소문, 소유자를 알게 된다. 이에 여러 차례에 걸친 편지로 두 사람을 설득했고, 1972년에 비로소 기증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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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의 표정> 책표지. ⓒ 열림원

마음이 푸근해져 눈을 쉽게 거두지 못하고 바라볼 정도로 좋아하는 유물이다. 이십 대에 한 달에 한 번씩 받아보던 역사 관련 잡지의 로고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라의 기와라는 것뿐,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런 얼굴무늬수막새와 그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와당의 표정>(열림원 펴냄) 덕분이다.


책 내용에 이 수막새는 없다. 중국 기원전 400년경부터 당나라시대까지. 천년에 이르는 중국 와당들 가운데 특별히 아름다운 것만을 간추려 엮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언급하는 것은 책 덕분에 이 수막새에 대해 알게 되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알고 싶은 우리 유물이라서다.


누구는 와당이 기와의 다른 말이라고 하고, 이 책에선 와당은 우리말로 수막새라고 하고…. 그렇다면 무엇이 맞을까? 찾는 중에 이 얼굴무늬수막새에 얽힌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다.

책은 전체적인 모양(틀)과 새긴 문양에 따라 '반원형, 동물과 인간, 구름·꽃무늬, 길상문', 이렇게 4주제로 분류해 싣고 있다. 왼쪽에는 와당 탁본을, 오른쪽에는 제목 포함 10줄도 되지 않는 짧고 간결한 설명과 소견을 적어 독자들의 이해와 감상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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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한나라 와당 '공놀이'는 가장 인상깊게 만난 와당이다. ⓒ 열림원


책표지에서도 만날 수 있는 이 와당은 저자가 공놀이란 제목으로 소개하는 한나라 유물이다. 단순한 선으로 신명과 흥겨움을 표현하고 있어 감탄스럽다.

이런 기와를 올린 건물은 어떤 건물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건물이었을까? 한나라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하며 보고 또 다시 봤던 와당이기도 하다.

책에는 위 '공놀이' 외에 '나무와 조수', '나무와 인물', '개 두 마리', '개와 사슴', '범과 제비' 등처럼 어떤 줄거리를 품고 있을 것 같은 와당들과, '해바라기', '수레바퀴', '산 모양 구름'처럼 도안화해도 좋을 것 같은 와당, 길상문 와당처럼 당시 사람들의 소원과 이상, 교훈 등이 새겨진 와당 등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와당의 문양에는 그 시대를 살고 간 사람들의 꿈과 현실이 담겨 있다. 그들이 꿈꾸었던 삶,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약호들이 그 속에 살아 숨 쉰다. (…)옛 선인들은 중국에서 구해온 와당 또는 그 탁본 하나하나를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 어루만지며 그것으로 금석 서화 공부의 재료로 삼았다. 오늘날 이렇듯 한자리에서 그 귀한 옛 와당을 푸짐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관련 자료의 활발한 간행에 힘입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이래 참으로 아름다운 와당 예술을 꽃피웠다. 다만 불교의 영향으로 연꽃 문양이 대부분이고, 그 밖에 귀면이나 인동문, 보상화문 등이 있다. 그 안의 변화는 놀랍고도 눈부시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11쪽

특히 길상문 편 글씨가 새겨진 와당 중에는 ▲진시황이 가면례를 치른 전각의 기와…. ▲진서체이나 예서로 옮겨가는 기미가 보인다. ▲온갖 좋은 일 속에 오래 사시길 기원하며 네 글자 모두를 반대로 새겼다. ▲사공은 한나라 때 죄수를 관장하던 부서의 이름이다. 감옥 지붕에 얹혀 있던 와당인 셈이다. ▲총(冢)은 총(塚)의 약자다. 무덤 속에서 출토된 와당이다 등처럼 자료적 가치가 느껴지는 설명과, 여운을 품고 있는 와당들이 많아 읽는 맛이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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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무극 탁본. ⓒ 열림원


옛 사람들이 왜 그렇게 중국의 와당이나 그 탁본을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참고로 책에는 우리의 와당과 비슷한, 그래서 낯익은 것들도 많다. 우리 와당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와당들은 연꽃이나 사찰의 여러 전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면을 형상화한 것들이 대부분이란다. 불교의 영향 때문이다. 그래서 와당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연꽃을 새긴 것이었다. 와당=연꽃이란 나도 모르게 굳어진 와당에 대한 오래된 틀을 덕분에 깼다.

책속 와당들은 대부분 전국시대와 한나라 때 유물들이다. 그러니까 대략 이천 년 전 사람들의 삶과 생활, 생각, 소원 등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실에 더욱 남다르게 느껴지는 <와당의 표정>이다. 

종종 어느 시대 기와가 출토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곤 한다. 뉴스들은 출토된 기와가 특정시대 사람들 삶이나 생활, 풍습, 문화, 예술 등을 엿볼 수 있으며, 건축양식이나 재료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 소개하곤 한다. 건축 자료로 중요하겠으나 어찌 그 시대 사람들 삶이나 생활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일까? 궁금했던 그 답을 들려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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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구름무늬수막새(중국 주나라)와 새무늬암막새(통일신라) 각각 수막새, 암막새로 유물 검색한 결과다. ⓒ 국립중앙박물관


와당은 우리말로는 수막새다. 수키와의 끝을 막음하는 장식이다. 처음엔 그저 구멍을 뻥 뚫어놓을 수가 없어 막음 처리만 했다. 그러다가 거기에 무늬를 올리고 글자를 새겨 넣으면서 와당 예술이 역대 건축 문화 속에서 난만한 꽃을 피웠다.-6쪽.

'와당=수막새'? 그런데 암막새도 있다. 그렇다면 암막새는 와당이 아니라는 말인가? 저자는 왜 이렇게 썼을까? (책을 읽기 전까지) 수막새와 암막새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2002년에 출간한 책 복간이란다. 그렇다면 2002년 당시까지는 와당은 수막새만을 지칭했나?

책을 덮었다. '책을 펴내며' 3번째 줄 이 부분 때문이었다. 한나절 가까이 뒤졌다. 두 포털 사이트(네이버와 미디어 다음) 여러 사전들과 관련 글들을. 우리 한옥 용어들을 정리한 <한국건축용어사전>(동녘 펴냄) '지붕-기와' 편도 다시 펼쳐 봤다. 덕분에 우리의 와당 '얼굴무늬수막새'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게 됐다.

모두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와당 설명에 '수막새와 암막새가 있다'고 쓰고 있었다. 어떤 설명에도 와당=수막새와 같은 부분은 없었다. 몇 편의 이 책 서평도 보였는데, 모두들 책에서처럼 와당=수막새라 쓰고 있다. '책을 펴내며'란 제목으로 쓴 저자의 말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 서평 기사도 보였다. 씁쓸했다. 

"요즘 책도 잘 팔리지 않아 출판사들이 힘들다면서 그렇게 따져들면 저자나 출판사가 얼마나 난감하겠어? 그냥 적당히 쓰시지?"

스마트폰과 모니터에 얼굴을 박을 듯 한참동안 읽고 또 읽는 것을 궁금해 하는 남편에게 정황을 설명해줬더니 이렇게 말했는데, 표정이 별로였다.

솔직히 이런 글 참 조심스럽다. 그런데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어떻게 그러나! 실수든, 잘못 알고 있는 것이든, 아니면 내가 잘못 알고 있어서 공연히 따져들어 얼굴 붉어질 일 있을지라도 짚고 넘어가는 것이, 그래서 틀렸다면 고치는 것이 맞지. 누군가의 명쾌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와당의 표정>(정민) | 열림원 | 2017-01-10 | 정가 14,000원.

와당의 표정

정민 엮고 지음,
열림원, 2002


#와당 #막새기와 #수막새 #얼굴무늬수막새(와당)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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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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