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희망국토순례단이 광천을 출발해 홍동으로 걷고 있다.
이재환
"핵발전소는 미사일 공격이나 테러 공격 등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 남북 긴장을 조장하여 핵발전소가 미사일 공격이나 폭격, 테러를 당하게 되면 그 자체가 핵폭탄이 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남북 대결을 조장하는 박근혜 정권은 책임지고 퇴진하라."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이 나누어준 전단지에 적힌 내용이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여전히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이 행진을 멈출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햇빛 받아 탈핵, 햇빛 팔아 탈핵'. 태양광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원자력발전에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이처럼 단순 명료하다.
순례에 참여하기 위한 가입 조건도 없다. 그날그날 순례자들이 모이는 집결지로 찾아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대열에 합류하면 된다. 깃발과 탈핵 관련 현수막은 현장에서 지급 받는다. 탈핵에 찬성하고, 원자력 발전소가 지닌 위험성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탈핵 순례자'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4일,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광천성당 앞에는 경남과 경북, 경기 성남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온 3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이날 기자는 이들과 함께 광천 성당에서부터 홍동 농협까지 3시간 동안 10여 km를 동행했다. '탈핵 순례자'들은 이날 함께 걸으면서 핵발전소 문제 외에도 각종 환경 문제나 사회 문제, 심지어 개인사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순례자 중에는 지난 달 10일부터 줄곧 순례 행렬에 참가했다고 밝힌 올해 스무살의 김혜윤씨도 있었다. 순례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순례자들은 지난 1월 영하 10도의 강추위와 눈보라를 만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혜윤 씨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춥지는 않았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또 "내가 이 길을 걷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 한다"며 "그 길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혜윤씨는 전북 남원에서 왔다.
순례자들 중에는 주말을 이용해 순례 행렬에 참여한 경우도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밝힌 서호정씨는 경남 함안에서 왔다. 서호정씨는 "주말을 이용해 탈핵 도보 순례에 참가 했다"며 "이번이 세 번째 순례길인데, 올 때 마다 기분이 좋고 즐겁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배현덕 씨는 "우리는 지금 탈핵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중"이라며 "탈핵에 대한 공감대를 서서히 확산 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덕씨는 모 은행에서 30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요즘은 귀농을 고민 중이다.
순례 중에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은 도로 주변에 무분별하게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지방도 주변에는 지나는 차량에서 던져진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페트병과 음료수병, 캔 등이 즐비했다.
광천에서 홍동에 도착할 때 까지도 30여명이었던 순례자는 홍동에서 지역 주민들과 김지철 충남교육감 일행이 합류하면서 100여명으로 불어 났다. 앞서 언급했듯이 원한다면 누구나 순례 길에 참여할 수 있다. 기자도 이날 광천 성당을 출발해 홍성으로 향하는 234구간(광천-홍동-홍성)의 도보 순례길에 참가했다.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광천에서 홍동까지만 걸었다.
'탈핵 순례단'은 충남 서산과 당진, 아산 등을 거쳐 오는 18일 최종 목적지인 광화문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순례단을 이끌고 있는 성원기 강원대학교 교수는 "광화문에 도착하면 곧바로 '탈핵 농성'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