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란 무엇인가? 함께 걷는 길, 함께 저항하는 것

[이돈명인권상 수상에 감사하며] 전쟁없는세상

등록 2017.02.11 11:59수정 2017.02.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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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  방위산업 박람회인 ADEX에서 2015년 서울 아덱스 비지니스 데이에 행사장에서 펼친 퍼포먼스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 방위산업 박람회인 ADEX에서 2015년 서울 아덱스 비지니스 데이에 행사장에서 펼친 퍼포먼스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 운동은 등장 자체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단숨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홍세화, 박노자, 진중권을 비롯한 당시 대표적인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당시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병역거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이 뜨거운 사회적 관심과 소수의 열렬한 지지와 지원 덕분에 우리는 용기백배했다. 우리의 용기는 하늘을 찌를 듯해, 대체복무제도 정도는 길어도 몇 년 안에 도입될 줄 알았다. 2004년에 전쟁없는세상이 펴낸 소식지를 보면 대체복무 도입 이후의 병역거부 운동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대체복무제도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대체복무제도 도입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평화운동을 꿈꿔왔지만 현실에선 그 대체복무제도마저 이루어내지 못했다. 너무 빨리 마셔버린 김칫국 때문이었을까? 사회운동은 아주 긴 호흡이고,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이 바뀌려면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니 아주 작아 보이는 것들이나 제도적인 변화 하나 바뀌는 데도 무수한 사람들의 희생과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대체복무제도 하나 도입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한국 사회의 강고한 군사주의라거나, 강한 군대가 평화를 지킨다는 군사 안보의 신화라면 모를까, 병역법을 개정하면 되는 대체복무제도도 우리는 만들지 못했다.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한 것만 같던 와중에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이돈명인권상을 받게 되었다. 인권변호사이자 천주교인권위원회 창립 이사장을 지낸 고 이돈명 변호사를 기리는 이 상은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무지개 농성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같이 우리 사회 인권의 최전선에서 열심히 활동해온 단체들이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더군다나 병역거부 운동 초창기부터 수감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한국에서 감옥 인권 운동을 가장 꾸준히 열심히 해 온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상이기 때문에 전쟁없는세상으로서는 이돈명인권상이 더더욱 영광스러운 상이다. 아직 만족할 만한 가시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 내거나 제도적인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해온 활동들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만 같았다.

이돈명인권상 수상을 계기로 병역거부운동과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을 돌아보게 된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지만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활동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0.2%가 병역거부를 허용하자는 의견을 냈는데, 2016년에는 그 비율이 46.1%로 높아졌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무슨 커다란 이벤트 한 번으로 도깨비 방망이 금 나와라 뚝딱 하듯이 하룻밤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전쟁없는세상이 하나씩 놓는 이 작은 돌멩이들이 언젠가 충분한 양이 쌓이고나면 바뀔 거 같지 않은 이 거센 물결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을 거다.

 2016 병역거부자의 날 자전거 타기 행사
2016 병역거부자의 날 자전거 타기 행사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는 무수한 돌멩이들 가운데 하나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 운동에서 시작되었지만, 활동의 폭을 점차 넓혀왔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전쟁수혜자들에 대한 저항이었다.

전쟁없는세상은 전쟁에 맞서고,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를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쟁 산업으로 이익을 얻는 회사나 집단에 맞서는 활동도 하고 있다. 전쟁은 정신 나간 지도자의 광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쟁으로 이익을 취하는 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기획하고, 부추기고, 전쟁 위협을 과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전쟁없는세상의 무기감시 프로그램은 바로 이 군수산업체들, 전쟁을 만들어 돈을 버는 기업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들이 전쟁으로 돈을 벌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운동이다. 비인도적인 무기의 대표주자 확산탄 반대 캠페인, 한국산 최루탄 수출 저지 캠페인,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 들을 펼쳐왔고 지금은 아시아 지역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 박람회인 서울 ADEX에 맞선 저항행동을 2년마다 이어가고 있다. 아직은 서울 ADEX가 실은 살인무기 전시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여기서 판매하는 것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 말고는 인류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고철덩어리라는 것을 폭로하고 알리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미래의 어느 날에는 서울 ADEX가 우리의 저항으로 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꿈꾼다.


병역거부 운동, 무기 감시 활동과는 사뭇 다른 결의 전쟁없는세상 활동이 하나 더 있다. 비폭력 트레이닝이다. 활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늘 운동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그 노력들이 무색할 만큼 사회 변화에 아무런 기여를 못할 때도 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자 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그러면서도 좀 더 민주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그 방법을 함께 찾아보고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비폭력 트레이닝이다.

이 활동들을 지금껏 전쟁없는세상 혼자서 해온 것은 아니었다. 오태양 이후로 70명에 달하는 병역거부자들과, 병역거부자들의 지지자와 후원자들이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을 함께 해 왔다. 특히 감옥에 다녀온 뒤에도 병역거부 운동과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병역거부자들은 전쟁없는세상의 주춧돌이다. 또한 군사주의와 군사안보가 아주 막강한 한국사회에서 국방의 신화에 맞서는 평화활동가들은 전쟁없는세상의 가장 든든한 동료이자 벗이다. 전쟁없는세상의 여러 활동들이 소위 '또라이'들의 망상이 아니라 이 사회에 던지는 안보와 평화에 대한 논쟁이 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평화활동가들 덕분이다.


애초에 평화라는 길은, 고속도로처럼 뻥 뚤린 길이 아니다. 비포장에 울퉁불퉁한 험난한 길이다. 그것은 평화가 그리 쉽지 않은 길이라는 뜻이다. 또한 고속도로처럼 목적지를 향하는 하나의 길,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이미 걸었던 길이고, 앞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걸어갈 길이다. 지금은 우리가, 전쟁없는세상과 병역거부자들과 평화활동가들이 함께 걷는 길이 바로 평화다. 강한 군사력만이 평화를 지키는 수단이라 여기는 군사안보 이데올로기에, 돈벌이가 된다면 사람 죽이는 무기를 만들고 사고팔아도 상관없다는 생각들에 맞서는 저항이 바로 평화다.
덧붙이는 글 이용석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자 병역거부자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병역거부 #평화 #전쟁반대 #이돈명인권상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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