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얘기 이제 안합니다. 지겹거든요"

낙동정맥 종주와 함께 삶의 즐거운 변화를 꾀하다7

등록 2017.02.14 14:14수정 2017.02.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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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7구간 종주도 지난번 6구간 때처럼 배내고개 고갯마루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다만 산행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6구간 때는 남쪽 신불산 방향으로 올랐지만, 이번에는 북쪽 가지산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첫 번째 봉우리 능동산에 올랐습니다. 해발 983m... 하지만 1천m 넘는 산이 수두룩한 영남알프스에서는 이 높이 가지고는 명함도 내밀지 못합니다. ⓒ 배석근



산행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에 힘든 것은 똑같습니다. 능동산 삼거리까지 1㎞ 남짓한 등로를 그야말로 씩씩거리면서 올라갑니다. "하아~ 하아~" 흰 김과 함께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오리지널 사운드로 귀에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쿵~ 쿵~" 울리는 심장 박동은 큰 북을 살짝 두드리는 것처럼 온몸으로 울림을 전해 갑니다.

♤ 낙동정맥 7구간 종주
날짜 / 2017년 2월 11일 (토)
위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남도 밀양시, 경상북도 청도군, 경주시
날씨 / 구름 한 조각 없이 하늘은 파랗고... 산행 시간대 울산 기온은 3~6도(1천m 산 위는 –3~0도)
산행 거리 / 18.0㎞
소요 시간 / 6시간 15분
산행 코스(북진) / 배내고개 → 능동산 삼거리 → 능동산 → 능동산 삼거리 → 석남재 → 중봉 → 가지산 → 쌀바위 → 상운산 → 석남사 갈림길 → 운문령 → 신원봉 → 불송골봉 삼거리 → 외항재 → 외항재 마을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산 이름 유래 어느 게 맞는지…

능동산 삼거리에서 능동산까지는 200m 거리입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능동산은 낙동정맥 마루금에 있는 산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유명세를 타는 산이라 들러 보기로 합니다. 능동산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왁자지껄합니다. 한 분이 동료들에게 물어 봅니다.

"왜 능동산인지 아세요?"

유래를 알 리 없는 일행은 조용합니다.


"○○ 김씨 시조 묘가 이 산 서쪽에 있대요. 묘 동쪽에 있는 산이라서 능동산이라네요."

하지만 정상석 뒷면은 다른 유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산의 긴 능선이 큰 언덕(陵)처럼 보여 능동산이다."

어떤 얘기가 정확한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사실도 은폐되고 왜곡되는 현실에서 몇 백 년 전 사실이 묻히기도 하고 와전되기도 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양새나 색깔로 보아 녹슨 철조망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애틋하게 봄을 기다리는 덩굴식물입니다. ⓒ 배석근



능동산 삼거리로 다시 돌아와 낙동정맥 마루금을 걸어 가지산으로 향합니다. 가팔랐던 길이 평탄해지면서 오솔길이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길입니다. 다리가 편안해집니다. 마침 뒤에서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분에게 길을 내어 주니 후미가 됩니다. 이제 뒤에서 누가 쫓아올 일도 없으니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제 갈 길을 담담하게 걸어갑니다. 얼마간 걷다 보니 석남재가 나타납니다. 울산에서 밀양으로 넘나들던 고개입니다.

소와 장돌뱅이 함께 넘던 석남재

"암소 한 마리면 골짜기 논 두 마지기를 살 수 있었던 시절만 해도 석남재를 넘어야 밀양 내지로 갈 수 있었다. 요즘에야 터널이 뚫려 단숨에 통과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하늘을 찌르는 태산을 죽기 살기로 올라야 했다. 배내재에서 얼음골로 질러가는 지름길이 있기는 했으나, 칼을 심어 둔 벼랑길을 잘못 타다가는 황천길이 될 수 있는 험로라 대부분 석남재를 넘었다. …… 이들은 소금뿐만 아니라 갯가 물목인 건어물도 함께 내지로 날랐더랬다. 미역, 전복, 젓갈, 고래 고기, 마른 멸치 등을 유통시키고 돌아올 때는 산채, 꿀, 인삼, 버섯, 목기 따위를 가지고 들어왔다. …… 과거 석남재에는 세 곳의 주막집이 있었는데, 잿마루를 넘기 전인 '힌디기'에 한 곳, 재 넘어 '새지미'에 두 곳이 있었다. 소장수, 보부상, 장꾼, 길손들뿐만 아니라 언양에서 소를 팔고 송아지를 몰고 가는 촌로, 혼담을 주선하는 상북 중매쟁이 역시 쉬어 갔다."*

석남재 고갯마루입니다. 언덕만큼 쌓인 돌멩이 하나하나에 고개를 넘던 이들의 애환이 진득하게 배어 있을 것입니다. ⓒ 배석근



고된 품을 팔아 생산한 물목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손에 들고, 혹은 목숨과도 같은 소를 몰고 힘겹게 올랐을 석남재 고갯마루에는 그들이 하나씩 얹은 돌덩이가 바윗덩이만큼 커졌습니다. 돌멩이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무사히 재를 넘었으면 하는 바람, 추위와 배고픔을 면했으면 하는 바람, 자식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

석남재를 지나자 "쏴~" 숲을 가르며 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거셉니다. 오르막길에서 안간힘을 쓰느라 몸은 더운데, 콕콕 찌르는 바람을 그대로 맞는 얼굴에서는 코가 얼고 입에 감각이 없어집니다. 오늘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인데 걱정입니다.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함께하지 못하는 데 대한 미안함도 커집니다.

안중근의 태극기, 박사모의 태극기

지난주에 뮤지컬 <영웅>을 관람했습니다. 조선 침략에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를 그린 뮤지컬입니다. 거사에 앞서 안 의사는 태극기를 펼칩니다. 태극기에는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태극기를 펼쳤고 원흉을 쏘았고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가지산 정상을 앞둔 중봉에 한 커플이 다정하게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큰 산은 중봉을 하나씩 거느립니다. 지리산처럼 말이지요. ⓒ 배석근



국경일에도 보기 힘든 태극기를 요즘 많이 봅니다. 박근혜를 구하자는 박사모의 태극기입니다. 107년 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흔들었던 안 의사의 태극기를 박사모가 박근혜를 위해 흔들고 있습니다. 용도가 바뀌었습니다. 박사모가 태극기 흔들어 대는 풍경을 안 의사가 본다면 어떤 생각에 잠길지 궁금합니다. 그분들은 왜 하필이면 태극기를 들고 나와 태극기의 이미지를 바꿔 버리는 것일까요. 거기에 또 간간이 섞여 있는 성조기는 무슨 뜻일까요.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그분들은 김칫국을 들이켜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며칠 전 jtbc의 손석희 앵커는 '앵커 브리핑'을 진행하며 언론인 김선주 선생이 10년 전에 쓴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라는 칼럼을 인용하면서 한때 빛나던 순간들이 이별할 때 추레해짐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사랑의 순간이 뜨거웠을수록 이별의 고통은 크다. 왜 사람들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의 순간들까지도 훼손하는 것일까?"**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입니다. <대동여지도>에는 "부처님의 지혜"라는 뜻의 '迦智山'으로 나와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지혜를 더한다"는 뜻의 '加智山'으로 씁니다. ⓒ 배석근



예전에 읽으며 무릎을 탁 쳤던 이 글을 뉴스에서 다시 대하며, 이 구절을 요즘 정국에 인용하는 손석희 앵커의 비유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선주 선생이 이 글을 쓴 모티브는 2007년 연초에 결별한 연예인 부부를 보며 사랑했던 만큼 이별할 때도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사랑도 없었는데 이별이 아름다울까

그런데 지금은? 탄핵의 대상이 된 그분이 과연 우리를 사랑했던 것일까, 한 여자와 그 여자의 딸에게만 사랑이 쏠렸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머지 국민은 그저 통치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해도 국정 역사 교과서를 만들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뜬금없는 통일 대박을 믿고, 기업의 돈을 갈취하고, 세월호를 숨기고,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싸움이나 시키고… 그렇게 해 온 분에게 어떻게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함께 살 때도 우리에 대한 예의가 없었는데, 헤어지면서 무슨 예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 할 겁니다. 질리도록 막장 드라마를 끝내지 않을 겁니다.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하나하나 돌탑을 쌓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벼랑 끝에 설 만큼 간절한가 봅니다. ⓒ 배석근



저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란 말을 믿지 않습니다. 사람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잘못했다가 뉘우치고, 또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가 다시 뉘우치고… 그런 일을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하는 동안에 바위가 비바람에 깎이듯 보이지 않는 크기로 조금씩 변해 간다고 봅니다. 그것도 사람의 행동 양식이 바뀌는 것이지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2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던 고 신영복 선생은 교도소 안에서 자신의 변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습니다. 20년 후 교도소를 나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말에 신영복 선생은 놀라게 됩니다. 친구들의 한결같은 말은 "너 조금도 안 변했다"였습니다. 외모도 바뀌었고, 행동이나 습관 같은 건 바뀌었겠지만, 기본적인 신념이나 가치관 따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뜻일 겁니다.

부드러운 육산이었던 가지산이 정상 부근에서 날카로운 악산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 배석근



변화는 바위가 비바람에 깎이는 속도

제가 낙동정맥 한 구간을 종주할 때마다 제 삶을 바꿔 갈 결심을 한 가지씩 하고 있지만, 이것도 행동 양식이나 습관을 고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심도 그 시간 이후 100% 다 지키지는 못합니다. 다만 결심한 항목을 향해서 수학적으로 보면 수렴해 가는 것이고 생물학적으로 보면 진화해 가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분과 이별할 시기가 된 것 같기는 합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납니다. 다가오는 수레바퀴를 사마귀란 놈이 막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막으려다가 어찌될는지는 뻔합니다. 바퀴 아래 깔려 짓이겨지겠지요. 제가 무척 싫어하는 벌레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퀴벌레와 사마귀입니다. 바퀴벌레는 더럽고 징그러워서 싫습니다. 사마귀는 그 모양이 흉측합니다. 그러니 싫다기보다는 무섭습니다.

중봉 너머 능동산,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산줄기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 배석근



어느 날 사마귀가 꽃나무에 앉은 나비를 잡아먹는 모습을 봤습니다. 톱니 달린 두 다리로 나비를 꽉 잡고는 뾰족하게 생긴 잎으로 나비를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사각~ 사각~"

나비 몸뚱이를 갉아먹는 소리가 작지만 소름 끼치도록 무섭게 들려왔습니다. 사마귀가 나비 날개까지 깔끔하게 먹어치우는 동안 저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이놈을 어떻게 할까 생각했습니다. 왠지 그놈을 그대로 놔두고 그냥 가는 게 께름칙했습니다. 툭 쳐서 사마귀를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놈이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가기 전에 발로 지그시 밟았습니다. 호기롭게 나비를 먹어치우던 사마귀는 아주 허망하게 제 발 밑에서 삶을 마쳤습니다. 제 발놀림 하나에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사마귀가 수레를 막겠다고 톱니 달린 앞발을 쳐들고 허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가지산 쌀바위입니다. 쌀이 나오던 구멍을 팠더니 더 이상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나오더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여기서도 배웁니다. ⓒ 배석근



사마귀가 수레를 막을까

어르신들 집회를 찍은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앞장서서 씩씩한 모습으로 서 있는 군복 차림의 남자들을 보곤 합니다. 민간인 집회인데 군인도 아닌 그분들은 왜 군복 차림으로 나타나는 걸까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곰곰 생각해 보곤 하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사병으로 80년대 초 강원도 화천군 민간인 통제선 북쪽에 있는 포병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포병으로서는 최전방이었던 셈입니다. 155㎜ 곡사포 말단 포수였는데, 지금 보는 탱크처럼 생긴 자주포가 아니라 포차 뒤에 매달고 다니는 견인포였습니다. 그동안 이런 저런 모임에서 군대 얘기가 나오면 저도 빠지지 않고 침을 튀겨 가며 군대 얘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군대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군대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군대 얘기를 하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그 얘기에 흥미를 갖지 않습니다. 당연히 귀담아듣지도 않지요. 제가 "155㎜ 곡사포 포탄이 몇 ㎞를 날아가는데 터지면 반경 몇 십m가 쑥대밭이 되고……" 할 때 옆 사람은 제 얘기가 끝나자마자 어떤 군대 얘기를 할지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남자들도 그런데 하물며 여자들은 군대 얘기 들을 때 스스로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둘째,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같은 민족인데 무슨 무용담을 그리 자랑스럽게 할까 싶어서입니다. 이놈 저놈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이란 나라들이 그 사이에 낀 우리나라를 우습게 알고 툭툭 건드려 보곤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라를 온전히 지켜야 하는데, 우리는 총부리를 서로 같은 민족에게 겨누고 있어야 한다는 게 참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제가 복무했던 부대의 모든 포는 군사분계선 너머 북한군 부대를 조준하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북쪽의 포 역시 남쪽으로 우리를 조준하고 있었겠지요.

영남알프스의 깊은 속살...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이곳에 호랑이와 표범, 늑대가 득실거렸답니다. 1930년대까지 눈에 불을 켠 호랑이를 봤다는 노인이 계십니다. ⓒ 배석근



결심 7 : 이제는 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중봉을 지나서 가지산에 오릅니다. 육산으로 부드럽던 산세가 정상에 가까워지며 악산의 날카로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비바람이 산꼭대기에서부터 흙을 씻어 내고 바위는 오래도록 남겨 두니 육산이라도 정상 주위는 암릉 모습을 띠곤 합니다.

가지산 정상에서 360도 둘러보는 훌륭한 조망은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온 데 대한 보상으로 너무 충분합니다. 1천 미터가 넘는 산만 해도 남쪽으로 간월산, 신불산, 재약산, 서쪽으로 운문산, 북쪽으로 문복산, 동쪽으로 고헌산이 호위무사처럼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1240m)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며칠 전 고교 동창이 단톡방에 어느 시인의 한 줄짜리 짧은 시를 올렸기에 복사해서 다른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말로 다할 수 있다면 하늘은 왜 푸르랴." 파란 하늘 아래 참나무 가지가 움 틔울 준비를 끝냈습니다. ⓒ 배석근



서시 / 이정환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그랬더니 그 시를 본 지인이 댓구를 달았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하늘은 왜 또 푸르랴

파란색 물감에 흰 물감을 탄 하늘색이 아니라 그냥 파란 물감을 칠한 것 같은 하늘을 보며 가지산을 지나 외항재로 향합니다.

* 영남알프스 오디세이 / 배성동 / 삶창 / 119~121쪽
** 한겨레신문 / 2007년 2월 8일자
#가지산 #능동산 #영남알프스 #석남재 #낙동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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