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리본을 만들면서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
참여연대
김윤영님은 9년 넘게 중국에서 지내다가 작년에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사회적 활동을 하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싶었고, 참여연대 회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바로 서촌노란리본공작소에 정기적으로 오는 열심 멤버가 됐습니다. 그는 왜 참여연대, 그리고 서촌노란리본공작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일까요?
- 여러 시민단체가 있을 텐데 참여연대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나요?
"활동이 다양한 게 좋았어요. 지나치게 정치적이지 않아서요."
- 참여연대는 매우 정치적인데요? (웃음)"정치적인 이야기만 하는 곳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회원가입하기 전에 참여연대의 카페 통인에서 하는 영화보기 행사가 있길래 친구와 함께 와서 영화도 봤어요."
- 이전에도 단체가입 활동한 적 있었나요?"전혀요.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 컸죠."
- 세월호 참사가 있었을 때 어떠셨나요?
"중국에서 살고 있었을 때라 더 안타까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
요.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뭔가 제가 할 수 있는 일, 참여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 것 같아요. 노란리본 공작소에서 노란리본 만드는 일은 정말 보람 있어요."
-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해외에 있었는데, 지켜보는 마음이 어떠셨나요?"해외에 나가 있으면 더 애국자가 된다고 그러잖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가 일어났을 때 슬프고 힘들었어요.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함께 슬픔을 나눌 사람도 많지 않아서 더 괴로웠죠."
- 한국 교민이 많은 도시라면 뭔가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사람의 생각은 다양하니까. 세월호 참사 와중에 아는 사람이 교회에서 단체문자가 왔다
면서 보여줬어요. 그 문자 내용을 보여주는데 기가 막혔죠. 희생자 엄마들이 지나친 보상을 요구한다, 대학특례를 요구한다는 그런 문자였어요. 어떤 세력들이 교회를 이렇게 이용하는구나 싶어서 화가 났죠. 중국에 있을 때 조그만 미술학원을 했어요. 중국 아이도 있었고 한국 아이도 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원에 조그맣게 세월호 분향소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지금 생각하니."
따뜻한 격려와 힘내자는 말, 노란리본공작소에 오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