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놓인 개 유골함,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서평] 개와 인간의 이야기 <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등록 2017.03.06 08:20수정 2017.03.0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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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와 ‘깜지’라고 부르던 강아지를 화장하여 진공포장으로 담은 유골함 ⓒ 임윤수


집 책장에는 어느 집에도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주머니 두 개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습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게 뭐라는 걸 알면 '미친 게 아니냐?'며 욕을 할 사람도 있고, '무섭지 않느냐?'며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없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식구들을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다 먼저 간 반려견, '쁘띠'와 '깜지'라고 부르던 강아지를 화장하여 진공 포장으로 담은 유골함입니다.


작습니다. 한줌도 되지 않을 만큼 적은 량의 재이니 땅에 묻어도 되고, 어딘가에 산골을 해도 되겠지만 두 마리가 주었던 기쁨이 너무 커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꿍꿍이 같은 계획이지만 시골로 들어가 살 집 양지쪽에 묻어주기로 했습니다. 집지을 터가 마련됐을 때 먼저 묻어 줄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미리 묻어두면 왠지 무서워하고, 목이 쉬도록 멍멍 거리며 기다릴 것 같아 차마 그러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개의 일들이 경험을 해본 것과 경험을 해보지 않은 것과의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개를 키워본 사람과 개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개를 바라보는 마음에 또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필자 역시 개를 키우기 전에는 개와 입을 맞추거나 개를 끌어안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좋지 않은 말을 입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막상 개를 키워보니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기쁨과 행복감이 넘치고 넘쳤습니다.

<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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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 지은이 제임스 헤리엇 /옮긴이 김석희 / 펴낸곳 (주)아시아 / 2017년 2월 13일 / 값 16,000원 ⓒ (주)아시아

<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지은이 제임스 헤리엇, 옮긴이 김석희, 펴낸곳 (주)아시아)은 수의사 헤리엇이 수의사로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과 개, 개와 사람간의 이야기입니다.

1916년, 영국 잉글랜드 선덜랜드에서 출생한 헤리엇은 천성적으로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930년대 영국에서는 수의과대학에 입학지원자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수의과대학 교수가 입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하는 특강을 들은 헤리엇은 그 교수를 찾아가 수의과에 입학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헤리엇은 제법 규모가 되는 수의병원에 취업을 합니다. 그 당시 영국이라는 사회는 물론 헤리엇이 일을 하고 있는 수의병원에서도 말에만 신경을 쓸 뿐 개처럼 작은 동물들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인기도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과 말처럼 값나가는 동물들을 선호하는 수의병원 분위기 덕분에 개와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들은 대부분이 헤리엇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근무환경이 헤리엇에게는 기회가 됐습니다. 좋아하는 개를 실컷 만날 수 있었고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치료하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개에 대한 전문지식이 늘어나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 겁니다.

헤리엇은 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개에 대해 해박한 수의사라는 소문이 더해지며 헤리엇을 찾는 개와 반려견 주인들은 점차 늘어났습니다. 책의 내용은 자·타칭 개 전문 수의사가 된 헤리엇이 인연처럼 만나고 사연처럼 만난 개와 반려견 주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들

잠꼬대, 하품, 방귀, 트림, 삐지기... 마치 사람만 할 것 같지만 개 또한 사람이 하는 건 다 합니다. 헤리엇이 치료하던 개 중에는 간질을 앓고 있는 지프도 있었습니다. 지프는 짖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짖지 않던 지프가 딱 한 번 짖었습니다. 짖지 않던 지프가 짖은 건, 경기장에서 어려서 헤어진 스위프라는 형제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지프는 그 이후에도 짖지 않았습니다.

헤리엇은 결혼도 개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헤리엇이 사는 동네에 있는 '드로버스 암스'라고 하는 술집에서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음료도 마시고, 마음 맞는 남녀가 짝이 돼 춤도 추는 그런 무도회였습니다. 헬렌도 무도회에 참석해 있었습니다. 헤리엇도 헬렌과 춤을 추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헤리엇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홀 부인이 키우고 있던 수지가 난산을 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지의 난산을 돕기 위해 무도회장을 나가던 중 문에서 헬렌을 만나 함께 갑니다. 헤리엇은 따라간 헬렌은 수지로부터 여섯 마리의 새끼를 받아내는 데 함께 합니다. 이 일을 계기도 둘은 결혼을 해 평생을 함께 합니다.

수의사 헤리엇이 만난 31마리의 개들 중에는 애교 만점인 개도 있고,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까칠한 성격을 가진 개도 있습니다. 31번의 사례마다 개를 대하는 헤리엇의 마음은 수의사라는 직업을 넘어서는 진지한 사랑이고, 헤리엇을 대하던 개들의 마음은 인간과 짐승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복종이었습니다.

<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를 읽는 마음을 따뜻해지고, 개 이야기를 읽고 난 소감은 봄 햇살 만큼이나 밝아질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 지은이 제임스 헤리엇 /옮긴이 김석희 / 펴낸곳 (주)아시아 / 2017년 2월 13일 / 값 16,000원

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도서출판 아시아, 2017


#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김석희 #(주(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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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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