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을 하면서 한국말사전을 늘 뒤적이는 한국사람은 뜻밖에 매우 적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는 때는 으레 '낯설거나 어려운 한자말'을 마주할 때'이지 싶어요. 이러다 보니 한국말을 담은 그릇인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슬기롭게 풀어내어 새롭게 쓰도록 북돋우는 책'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에서 지은 한자말을 풀이한 책'이나 '조선 무렵 권력자와 학자가 지은 한자말을 풀이한 책' 테두리에서 좀처럼 못 벗어납니다. 앞으로 한국말이 한국말답게 살아나면서 우리 스스로 한국말을 즐거이 살려서 새롭게 쓰는 길을 밝혀 보고자 <이야기가 있는 작은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낱말 하나를 놓고 어떻게 바라보며 살리면 즐거울까 하는 실마리를 풀어 보려고 합니다. (왜 '이야기가 있는 작은 사전'인가?) -기자말
ㄱ. 꽃밥
한국말사전을 보면 '꽃밥'이나 '색반'이라는 낱말은 안 나옵니다. 그러나 '꽃밥'이라고 하면, 이 낱말은 꽃을 얹거나 꽃을 써서 지은 밥을 가리키는 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는 꽃처럼 곱게 지은 밥을 가리키고, 꽃내음이 나는 밥을 가리킬 만합니다. '쑥밥'이라 하면 쑥을 함께 넣은 밥인 줄 알 수 있어요. '감자밥'이나 '무밥'이라 하면 감자나 무를 함께 넣은 밥인 줄 알 테고요.
한자말 '색반'은 '色飯' 같은 한자를 쓸 테고, 꽃빛이 감도는 밥을 가리킨다고 할 만합니다. '전통향토음식'에 '해당화색반'이 있다고 합니다. 음식용어사전에서는 '해당화색반'처럼 '색반'이라는 낱말만 다루고, '꽃밥'이라는 낱말은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진달래꽃이나 개나리꽃을 얹어서 지진 떡을 두고 '화전(花煎)'이라고들 합니다. 더러 '꽃전'이라고도 하는데, 꽃을 얹어서 지진 떡이라면 '꽃지짐'이나 '꽃떡'이라고 하면 됩니다. 꽃무늬를 넣거나 꽃송이를 얹어 '꽃빵'을 찌거나 구울 수 있어요. '꽃과자'라든지 '꽃달걀말이'를 해 볼 만합니다.
해당화꽃뿐 아니라 동백꽃으로도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함박꽃이나 유채꽃으로도 밥을 지을 수 있지요. 모과꽃이나 감꽃이나 개나리꽃으로도 밥을 지을 수 있어요. 이런 밥은 모두 '꽃밥'입니다. 그리고 '동백꽃밥·유채꽃밥·감꽃밥'처럼 새롭게 이름을 붙일 만해요.
꽃송이로 술을 담그면 '꽃술'이 됩니다. 꽃송이로 물을 들이면 '꽃물'을 들인다고 하고, 꽃송이를 우려서 찻물을 마시면 '꽃차'가 되어요. 이때에도 '유채꽃술'이라든지 '민들레꽃차'처럼 수수하게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찔레꽃밥을 먹을 수 있고, 모과꽃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딸기꽃차를 마실 수 있고, 동백꽃차를 마실 수 있어요.
꽃노래를 부르면서 꽃밥을 먹습니다. 꽃놀이를 즐기면서 꽃지짐을 먹습니다. 꽃밭에서 꽃내음을 맡으면서 꽃차를 마십니다. 떡을 찧거나 빵을 구우면서 꽃떡이랑 꽃빵을 신나게 누립니다.
ㄴ. 늘푸른(늘푸르다)
'늘푸른나무'는 한 낱말이에요. 한자말로는 '상록수'라고 해요.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늘푸른나무'에는 뜻풀이를 안 붙이고 '상록수'에만 뜻풀이를 붙여요.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에요. 이름 그대로 "네 철 늘 푸른 나무"를 가리킨다는 풀이를 붙이면 좋을 텐데요.
네 철 늘 푸른 나무로는 소나무·전나무·잣나무·향나무가 있어요. 이들 나무는 서울을 비롯해서 온나라에서 두루 볼 수 있지요. 남녘 바닷마을에서는 늘푸른나무로 후박나무랑 동백나무가 흔해요. 서울 언저리에도 동백나무는 있을 테지만 바람이나 볕이 따스한 남녘 바닷마을에서는 아주 흔해요. 바닷바람을 쐬는 곳이어야 잘 자라는 후박나무도 동백나무 둘레에서 흔히 보고요. 종가시나무나 참가시나무 같은 가시나무라든지 아왜나무도 남녘 바닷마을에서 흔한 늘푸른나무예요.
늘 푸르기에 '늘푸른나무'라면 한철만 푸른 나무는 '한철푸른나무'처럼 새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한철푸른나무'라는 이름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한 철만 푸른 나무는 가을에 잎을 떨구어요. 이러한 나무를 두고 두 가지 이름이 있어요. 한국말로는 '갈잎나무'요, 한자말로는 '낙엽수'예요. '갈잎'은 '가랑잎'을 줄인 말이에요. 가랑잎은 "마른 잎"을 가리키지요. 잎은 마르면 저절로 떨어지거나 바람에 떨어져요. 한 철만 푸른 나무는 잎이 곧 마르니 '갈잎나무(또는 가랑잎나무)'라는 이름이 잘 어울려요.
'낙엽'이라는 한자말은 한자 풀이처럼 "떨어지는(落) 잎(葉)"이고, "진 잎"으로 고쳐쓸 낱말이에요. 이 대목을 살필 수 있다면 늘푸른나무하고 맞물리는 갈잎나무를 굳이 '낙엽수'로 쓰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우리는 새롭게 다른 낱말을 떠올릴 만합니다. '늘푸른나무'가 '늘푸른 + 나무'이듯 '늘푸른마음·늘푸른사랑·늘푸른길·늘푸른삶·늘푸른이'처럼 새말을 지어 볼 수 있어요. 한결같이 흐르는 기운이나 숨결을 나타내면서 '늘푸른'을 붙일 만해요. '늘푸른글·늘푸른신문·늘푸른학교·늘푸른마을'처럼 써 보아도 될 테지요. 또는 '늘고운님·늘고운꿈'이라든지 '늘빛사랑·늘빛노래'라든지 '늘참배움·늘참삶'이나 '늘맛집·늘멋님' 같은 말을 써 볼 수 있고요.
ㄷ. 풀벌레그림
얼굴을 그리면 어떤 그림이라고 하면 될까요? 숲을 그리면 어떤 그림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할까요? 꿈이나 생각을 그림에 담으면 어떤 이름이 걸맞을까요? 내 얼굴을 내가 스스로 그리면 어떤 이름이 알맞을까요?
얼굴을 그리면 '얼굴그림'일 테지요. 숲을 그리면 '숲그림'일 테고요. 꿈을 그리면 '꿈그림'이요, 생각을 그리면 '생각그림'이에요. 내 얼굴을 스스로 그리면 '내얼굴그림'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을 놓고 '초상화·산수화·상상화·자화상' 같은 한자로 지은 이름이 널리 쓰입니다. 그림이기에 '그림'이라 하면 넉넉할 텐데, 굳이 '畵'라는 한자를 뒷가지로 붙여요. 한국말사전도 '-그림'은 뒷가지로 안 다루고 '-畵'만 뒷가지로 다루어요.
풀이랑 벌레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떤 이름을 붙일 적에 잘 알아보거나 알아들을 만할까요? 바로 '풀벌레그림'일 테지요. '풀'이나 '벌레'를 굳이 한자로 바꾸어 '초충도(草蟲圖)'라고 하지 않아도 되어요. '초충(草蟲)'이란 '풀(草) + 벌레(蟲)'예요.
중국을 섬기면서 중국말로 생각을 나타냈다고 하는 조선 무렵에는 학자도 선비도 양반도 임금도 한자를 따서 '草蟲圖' 같은 이름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삶과 살림을 헤아리면서 한국말로 알맞고 즐겁게 새로운 이름을 지을 수 있어요. 이제는 우리 스스로 나아가야지요.
풀이랑 꽃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풀꽃그림'이거나 '풀그림·꽃그림'입니다. 먹을 쓰기에 '먹그림·먹빛그림'을 그려요. 물빛이 감도는 그림을 그리기에 '물빛그림'이에요. 스스로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 가만히 헤아리면서 새롭게 이름을 붙여 줍니다.
ㄹ. 풀어주기
어릴 적에 '방생'이라는 한자말을 곧잘 들었어요. 어느 종교 때문에 들은 말은 아니에요. 낚시를 가서 물고기를 낚은 뒤에 "자, 이제 방생하자." 같은 말을 들었어요. 시골집에서 덫에 걸린 짐승을 풀어주면서 "방생한다." 같은 말을 들었지요. 어머니가 부엌이나 마루에 놓은 쥐덫에 쥐가 잡혔을 적에는 "죽이자니 안쓰럽고 풀어주자니 또 들어올 텐데." 하는 말을 들었어요.
어릴 적에는 둘레 어른들이 쓰는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생각해 보았어요. '방생'이나 '풀어주기(풀어주다)'는 틀림없이 같은 자리에 쓰는 말 같은데, 어른들은 두 말을 섞어서 써요.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방생'은 올림말로 나오고 '풀어주기(풀어주다)'는 안 나와요. 그래도 '놓아주다'라는 낱말은 있어요. 더 생각해 보니, '풀어주다'라는 말을 쓰던 어른은 '놓아주다'라는 말도 함께 썼어요. 다만 '풀어주다·놓아주다'라는 말을 쓰던 어른은 '방생' 같은 한자말은 안 썼습니다.
이제 나는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요 어른으로 삽니다. 아이들하고 마당에서 함께 놀다가 나비나 잠자리를 잡으면 "얘들아, 이 아이(나비나 잠자리)들은 우리 손에 잡히면 힘들어 해. 가까이에서 찬찬히 들여다본 뒤에는 곧 놓아주렴." 하고 말해요. 마을 빨래터에서 놀거나 물이끼를 걷으면서 미꾸라지나 게아재비를 으레 만나는데, 이 아이(미꾸라지나 게아재비)를 그릇에 담아 한동안 들여다본 뒤에도 '풀어주자'고 말하지요.
아이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말을 쓰자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저절로 나오는 말이에요. 마음껏 노닐거나 다닐 수 있도록 풀거나 놓기에 '풀어주다·놓아주다'라는 말을 써요. 작은 벌레나 짐승이나 물고기가 저희 보금자리에서 마음껏 살아가며 우리 곁에 있기를 바라기에 안 얽매려고 해요.
사람 사이에서도 '풀다·놓다'를 씁니다. 이를테면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마음껏 놀도록 할 적에 "풀어서 키운다"나 "놓아서 키운다"고 해요. 마음껏 뛰놀도록 아이를 가르친다면 '풀어키움·놓아키움'이나 '풀어배움·놓아배움'쯤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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