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생가 앞에 세워진 박 전 대통령 동상은 5m 높이로, 2011년 11월 성금 6억원을 투입해 세워졌다.
장호철
실정과 패착이 신화를 훼손하다부친의 신화에 힘입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박근혜의 실정과 패착이 그 신화의 성채를 허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역설적이다. 지난해 9월, 미르와 케이(K)스포츠 재단 설립에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보도 이후에 전개된 '최순실 게이트'는 철옹성 같았던 박정희 신화를 바래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37주기 추도행사의 참석자가 예년의 3분의 1 수준이었고, 구미에서 열린 추도식의 참석자도 그 전년도의 절반에 그쳤다. 박정희 관련 사업들도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있고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광화문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건립하려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박정희 추모 홈페이지에서는 그의 '탄생 설화'가 삭제되었다. 반신반인 박정희의 '신격'이 또는 '신격화'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전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박근혜 효도 교과서'라 불린 '국정 역사 교과서'는 결국 모든 학교로부터 외면 받아 도태될 지경에 이르렀다.
들끓는 민심은 그예 박근혜의 지지율을 역사상 최저인 4%까지 떨어뜨렸고,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11일 열린 20차 집회까지 전국 기준 누적 참가자수는 1600만 명이 넘었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오른 지 133일 만에 마침내 박근혜는 파면되었다. 18년의 칩거를 끝내고 정치에 입문한 지 다시 18년이 지나서였다.
박근혜의 유고는 스스로 부른 정치행위의 결과라는 점에서 부친의 유고와 동질적이다. 그러나 부친의 유고가 비극적 죽음으로 끝나면서 신화의 단초를 마련한 것과는 달리 그의 유고는 절대 다수 시민들의 조롱과 야유에 묻혀 버렸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한 번도 진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환관들에 둘러싸여 진상을 끝까지 부인하고 모호한 태도로 검찰과 특검의 조사를 회피하는 등의 태도에서만 그는 일관성을 지켰다. 반성은커녕 추종 세력들의 탄핵반대 집회를 즐기는 듯한 그의 태도는 한 번 더 국민들을 환멸에 빠뜨렸다.
탄핵을 반대하며 폭력적 언행을 불사해 온 소수의 지지자들이 탄핵 불복을 공언하고 있는 상황도 그에겐 결코 이롭지 않다. 그들의 지지가 궁극적으로 헌법적 가치와 체제를 부정하는 형식으로 표출되는 한 그는 고립되고 그 고립은 더욱 심화될 뿐이기 때문이다.
"지 애비 얼굴에 똥칠을 한 기라..."그나마 박근혜의 과오를 인정하는 영남 지역의 고령 지지자들이 한결같이 읊조리는 얘기다. 미욱한 딸이 아비의 영광을 훼손했다는 이들의 탄식에서조차 이미 퇴조하고 있는 '신화'의 기미가 읽힌다. 바야흐로 사람들은 딸을 통하여 그 아비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무책임과 무능, 불통으로 얼룩진 집권 4년의 결과는 참담하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위안부 합의와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각종 공약의 파기, 청년 실업 문제,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야기된 탄핵정국을 통하여 온 국민의 정치적 각성을 환기한 것이 유일한 그의 공이다. 그 수업료가 너무 비싸고 아프긴 하지만 말이다.
신화와의 '결별'과 새로운 시민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