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산 자로서의 몫'을 다해내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하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광주학살의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 시대의 광주'인 '세월호 참사' 역시 진상규명의 시작조차 제대로 못 한 상황이 아닙니까. 탄핵 인용과 정권 교체는 첫걸음일 뿐,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부정, 부패, 비리, 독재가 워낙 광범위하고 교묘한 탓에 어느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내란을 선동하는 안하무인격의 친박집회와 박근혜 변호인단의 모습은, 그들의 심성과 타락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오히려 앞으로가 더 험난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단적으로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전 의원의 경우 내란음모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9년 형을 선고(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유죄 판결 - 편집자 말)받았고 통합진보당이 해산됐지만, 아직 저들은 '내란선동죄'의 적용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이라고는 아예 모르는 자들이 살기 위해, 부활하기 위해 막장 수준의 수단과 방법까지 동원할 것인 이상, 낙관은 금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은 우선 '인적 청산'과 '제도 개혁'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각각의 개혁과제를 개별적으로 수행하기보다 정부수립 직후의 '반민특위'처럼 특수 기구를 설치하고, '사건'별로 접근하는 방법이 훨씬 긴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컨대 검찰개혁이라는 개별 과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제도개혁은 어느 정도 달성될지 몰라도 기존의 정치검사들은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구마 줄기 따라 고구마가 나오듯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세월호 참사',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비리' 등 특정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 과정을 통한 관련자 처벌 및 제도개혁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경우 세월호의 침몰 원인, 구조가 늦어진 원인 사건 자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방해·차단·왜곡했거나, 유가족을 공격했거나, 여론조작에 가담한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 지식인, 종교인들이 있다면 조사하고 죄질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1960년 4월혁명 직후의 '혁명 입법' 과정을 참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시 장면 민주당 정부는 3·15부정선거 관련자와 부정축재를 일삼은 재벌을 처벌하기 위해 국회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부 조직법', '부정축재처리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이후 장면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경찰 숙청을 제외한 이승만·자유당 정권 및 재벌 단죄는 미흡한 수준에 그쳤지만, 이때의 법안 마련과 실패의 경험은 차기 정부에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기 정부는 오로지 '개혁'과 '변화'를 향한 촛불 시민들의 열망을 받아 안고, 그것을 제대로 실현하는 데 몰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장면 정권' 평가를 들을 것이 뻔합니다. 아울러 최근 운위되는 '개헌' 역시 '권력분점'이 아닌, 우선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부정한 재벌권력의 처벌·청산을 목표로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청산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를 짓눌러 온 '냉전'과 '식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보는 김수영의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