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엄마 흔든 '가짜뉴스', 대선판 흔들까

"가짜 뉴스 계속 보면 뇌도 속는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등록 2017.03.22 17:12수정 2017.03.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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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뉴스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가짜 뉴스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Pixabay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며 "헌재 재판관들이 200억씩 돈을 받고 탄핵판결을 한 거라는데,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묻는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흥분한 탓인지 저절로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렇지? 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이른바 '가짜뉴스'이다. 가짜뉴스가 이렇게 가까이 와 있었다니. 나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고 있지만, 아직 가짜뉴스를 직접 전달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가짜뉴스를 조롱하는 글만 수차례 봤을 뿐이다.


내용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게 사실이다. 엄마의 전화에 나는 심각해졌다. 칠순을 눈앞에 둔 엄마의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지난 9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이 현상을 설명해주는 글이 올라왔다. 가짜뉴스가 우리의 기억을 어지럽히고 왜곡하는 힘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SNS가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2011년 이스라엘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에서는 지원자 30명에게 영화 한 편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화 내용에 관해 질문지에 답을 하도록 했다. 일주일 뒤, 참가자들은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질문할 때 다른 참가자의 답을 슬쩍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러자 참가자의 70%가 '다른 참가자'의 대답에 동의했다.

사실 그 답안지는 연구진들이 가짜로 만든 것이었다. 연구진들이 참가자에게 "사실 이 답안지는 가짜였다"고 알려주었을 때, 60%는 원래 자신이 생각했던 것으로 답을 정정했다. 나머지 10%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끝까지 정정하지 않았다. 일단 잘못된 정보를 접하면 이를 바로잡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SNS 안에서 정보가 왜곡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실험도 있다. 2016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은 실험참가자 140명을 모집해 열 명씩 나눴다. 그리고 모둠별로 어떤 평화봉사단원에 대한 가상정보를 들려줬다. 연구진은 참가자들과 1대1로 만나 평화봉사단원에 대해 기억하는 것을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 다음, 연구진들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그룹원들과 같은 주제로 몇 분 동안 온라인 채팅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참가자들을 개별적으로 분리해 처음 들었던 정보를 다시 떠올려보도록 했다.

실험 결과, 모둠별로 평화봉사단원에 대해 기억하고 동의하는 내용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내용 중에는 엉터리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그룹 안의 사람들은 엉터리 정보도 사실로 인정했다.


가짜 뉴스에 계속 노출되면 뇌는 사실로 받아들여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유도 망각' 때문이다. 망각을 유도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정보가 있을 때, 뇌는 그중 자주 언급되는 정보만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한다. 중요한 정보임에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쉽게 잊히고, 반대로 중요하지는 않더라도 자주 언급된 정보가 우리 머릿속에 남게 된다.

특히, 그 정보가 외부인이 아닌 자신이 속한 그룹 내의 누군가로부터 자주 언급될 때, 유도 망각현상이 더 잘 일어난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이 바로 이런 경우다. 나와 가까운 이들, 그리고 그 지인들을 통해 만들어진 '약한 연결고리'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별다른 근거 없이 그들이 주는 정보가 다른 그룹의 정보보다 훨씬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짜뉴스인 경우에도 말이다.

가짜뉴스는 평범한 개인들에 의해 퍼져나간다. 한 번 유포되기 시작하면 이를 막기가 어려워진다. 최근 평화학자 정희진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모 노동조합의 팔로어는 300명인데, 노동조합 소속(?)의 '스타 노동자'는 (팔로어가) 5만 명인 경우가 있었다. 그는 노조의 결정 사항을 사리사욕을 위해 번복,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썼다. 진실을 아는 300명과 거짓 정보를 접한 5만 명 사이의 격차! 엄청나다.

연구진들이 내놓은 해답은 한 가지다. 진실을 아는 300명이 움직여야 한다. 가짜뉴스의 거짓된 정보에 대응해, 진짜 뉴스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앞서 잘못된 대답을 정정하지 않은 10%의 응답자들의 뇌 사진을 촬영해보니, 잘못된 대답에 대한 확신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확신 없는 말의 울림은 오래 가지 못한다.

가짜뉴스를 마주했을 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인 거짓인지 분명히, 정확히 밝혀야 한다. 나와 연결되지 않은 다른 집단에 '진짜 뉴스'가 도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맞서야 한다. 그리고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한 이들을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 가짜뉴스의 대상이 된 이들은 고소나 고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선이 50일도 남지 않았다. 어떤 가짜뉴스가 대선판을 뒤흔들지 알 수 없다. 가짜뉴스는 범죄다. 그리고 말하지 않은 정보는 사라진다. 그것이 진실인 경우에도 말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올린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가짜뉴스 #페이스북 #가짜뉴스 대처법 #대선 5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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